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떤 일에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큰소리치고, 그걸 못하는 사람이 우습게 보였던 것이 결국은 내가 그 상황이 되어 보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부목사 시절에는 담임목사님들을 보면서 “저렇게 밖에 못하시나” 했는데, 요즘은 그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처녀총각들은 자기는 남들처럼 얽매이는 결혼생활 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막상 결혼해서 책임이 커지고 삶이 구속되는 변수가 많아지면 인생은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됩니다. 부부가 둘이서만 그림처럼 살면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산다고 장담하다가도, 자식을 낳아보니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식 때문에 남들 앞에서 죄인이 되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 비로소 교만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보면 세상을 살아 갈수록 내가 과연 뭐에 자신만만해 할 수 있을까 싶고, 결국 어떤 것에 대한 자신만만은 아직 세상을 모르는 미성숙의 표징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남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보면서 한심한 생각이 들고 “어쩌면 저럴 수가 있는가?” 하고 흥분이 된다면 그건 아직 내가 미성숙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셔서 그런 상황에 접하지 않도록 보호하셨으니 망정이지 나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충분히 그랬겠다, 하는 생각에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천은 반사체가 되지 말고 흡수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소문이 돌 때 그것을 가십거리로 삼고 부풀려서 남에게 전하지 않고 잠잠할 수 있는 것은 누구도 그 일에 대해서 자신만만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성숙함이 있을 때 가능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7:1-5),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받는 판단의 대상은 바깥으로 드러나 있는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속생각과 동기일 것이고, 그렇게 본다면 하나님 앞에서 무결점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앙의 연륜이 더 해 갈수록 느끼는 것은, 우리가 자신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우리의 악한 생각과 동기를 가려주시고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 은혜를 구하고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 그것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