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해 에큐메니칼 포럼'이 18일 오후 서울 경동교회(담임 박종화 목사)에서 열렸다. 이날 포럼에선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강원용 목사와 에큐메니칼 운동-여해의 에큐메니칼 사상과 활동, 그리고 한국에서의 실천'을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강원용 목사는 시대를 앞서간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며 "그는 세계 현실과 기독교 복음과의 상호 관계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뇌했다. 또한 WCC의 에큐메니칼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사회 윤리와 목회 실천, 종교사회학적 비전을 확립하고 심화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강원용은 성서신학자나 조직신학자가 아니었다. 그의 전공은 기독교 사회윤리였지만, 그는 서재의 학자로 머물지 않고 현장의 목회자로 활동했다"며 "그가 추구했던 기독교 신앙과 사상은 과거지향적이지 않고 미래지향적이었으며, 그가 관심을 가졌던 종교 주제는 사후 세계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오늘의 구원'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는 여해가 사후 세계를 부정했다거나, 또는 기독교 복음이 현실적 사회윤리 이론을 실천함으로써 그 책임을 다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흔히 한국의 보수 기독교계가 비판하듯이 '인본주의적 자유주의 신학'을 추종하는 단순한 사회윤리학자가 아니었다"면서 "왜냐하면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장공 김재준, 라인홀드 니버, 폴 틸리히 같은 학자는 소위 말하는 유럽과 미국의 '인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신학'을 비판·극복했으며, 동시에 '신본주의적이고 보수 정통주의 신학'을 극복한 대사상가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강원용 목사가 세운 '한국 크리스챤아카데미'에 대해서도 그는 언급했다. 김 교수는 "강원용 목사는 1962년 '한국 크리스챤아카데미'를 창설하고 원장직에 취임했다. 한국 크리스챤아카데미는 유럽, 특히 독일 아카데미 운동의 철학과 목적, 방법론을 공유했다"며 "그리고 WCC 무대에서 강력하게 대두된 책임사회론을 이념적으로 극한 대결 상황에 놓인 한국적 상황에서, 한국적 '삶의 자리'에서 논의하고 토론해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책임사회론은 한국 크리스챤아카데미의 모든 프로그램에 녹아든 핵심 주제였고, 구체적으로 실천해 보려고 했던 최초의 창조적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며 "강원용 목사가 평생 실천해온 모토인 '사이·너머'(between and beyond)와 '제3의 길' '인간화' 그리고 '중간집단 양성'의 밑바탕에는 WCC의 비전인 책임사회론이 보이지 않게 놓여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특히 그가 WCC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고 활동했던 시기는, 한국사회가 남북 분단이라는 상황에 놓인 채로 공업화와 산업화를 최첨단 속도로 강행해가던 시대였다"며 "그가 에큐메니칼 무대에서 보고 듣고 참여하고 확신했던, 교회 및 열린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그대로 소개하고 실천하기란 불가능한 시대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가장 첨예한 냉전 구도의 잔재가 남아서 정치 이념적으로 경직된 사회요, 신학적으로는 보수적 기독교계요, 닫힌 종교 사회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그러나 그는 그러한 현실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적응하면서, 사회와 기독교계와 종교계를 보다 인간화된 사회로 변혁해가고자 하는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불태웠던 인물이라 평가하고 싶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그는 "적어도 WCC 에큐메니칼 운동이라는 20세기의 매우 중요한 세계적 운동과 비전을 한국사회와 교계에 소개하고 펼쳐보려고 노력했던 인물로서, 강원용 목사보다 더 많이 공헌을 한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강원용 목사의 사회윤리적 관점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영원한 복음과 인간 상황을 상관관계 속에서 파악하되, 라인홀드 니버의 '크리스천 리얼리즘'의 사회윤리적 입장에서 '사이·너머'(Between and Beyond)를 추구하려고 했던,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능한 가능성'을 개척하는 모험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