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은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이것으로부터 지금의 ‘개신교’(Protestant)가 탄생했고,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종교개혁이 가져온 수많은 변화들 중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아마 ‘만인제사장’(萬人祭司長) 혹은 ‘만인사제’ 정신일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한 그 누구도 ‘특권’을 누릴 수 없다는 이론. 이것으로 인해 모든 성도들이 지금처럼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리며, 눈물로 기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담임목사’는 누구인가. 왜 우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담임목사에게 ‘안수’받기를 원하는 걸까.
종교개혁가들은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특별할 수 없다고 역설했는데, 오늘날 교회에서 담임목사는 매우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보수적 성향이 강한 한국교회 특성과, 유교적 전통에 익숙한 한국인들의 관습 때문이라는 게 대다수 목회자 혹은 신학자들의 분석이다. 늘 ‘위 아래’를 엄격히 구분한 문화에 익숙하기에, 교회에서도 담임목사를 그와 같이 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종교개혁이 부르짖은 ‘만인제사장’ 정신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신현수 교수(평택대 조직신학)는 “중세 로마 가톨릭의 부패한 성직자들에 맞서 그들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고 한 것이 만인제사장론의 의미”라며 “그렇기에 성직에 계급이 있을 수 없고,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없다. 담임목사를 포함해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 따라서 목회자에게 잘못이 발견될 경우 평신도들이 이를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바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정도가 지나쳐 담임목사의 권위를 아예 무시하거나, 주어진 자격 및 직분을 넘어선 것까지 요구하는 경향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양상은 분쟁을 겪는 교회에서 주로 목격되는데, 담임목사의 반대편에 선 교인들이 단순히 잘못을 지적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이나 행위를 일삼고, 전통적으로 담임목사나 장로 등 교회 내 일부 직분자에게 허락된 권한들을 무리하게 침범하는 경우가 바로 그 예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담임목사와 평신도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평등하지만, 담임목사에겐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칠 수 있는 은사가 주어졌다”며 “우리는 이것을 존중하고 그 권위를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갑종 교수(백석대 총장, 신약학)는 “만인제사장론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므로, 성직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라며 “그렇기에 담임목사라 할지라도 그것은 군림하는 직분이 아닌 섬김의 자리다. 하지만 동시에 말씀을 전하고 가르칠 수 있는 직분이기도 하다. 담임목사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다. 교인들은 담임목사라는 직분 자체가 아닌,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의 그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규 교수(고신대 역사신학)도 “담임목사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위치에 있으므로,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은 담임목사의 권위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신학자는 만인제사장론을 무리하게 교회에 적용할 경우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모두가 동등한 제사장이라면 극단적으로 강단에서의 설교까지도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그는 “만일 우리가 만인제사장론을 일반적인 ‘민주주의’ 개념과 혼동할 경우, 교회가 개개인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좌우될 수 있고, 이는 교회의 ‘인본주의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정성욱 교수(덴버신학교)는 “만인제사장 정신은 민주주의와는 다르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신주주의, 곧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믿는다”며 “다만 그런 하나님 앞에 직분의 구별 없이 모든 이들이 동등하다는 것이 것이 바로 만인제사장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주장을 내세우기에 앞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