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 뿐만 아니라 교회와 대학에서 설교와 특강, 간증 요청이 많아 1년에 116번까지 강연을 한 적도 있습니다. 기업 운영과 같이 하다 보니 아플 사이도 없습니다. 늘 분초를 다투고요."
대의그룹 채의숭 회장(화양감리교회 장로)은 고등학교 2학년때 꿈이 "박사와 교수가 되는 것, 대한민국 제일 큰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 100개의 교회를 헌당하는 것"이었다. 그는 "1984년 경영학 박사가 되고, 2001년 대학 강의를 하고, 사장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더니 41살에 대우에서 사장이 됐다. 남은 건 100개 교회 헌당인데, 이 또한 거의 다 돼 간다"고 했다.
그래서 채 회장은 항상 새벽에 일어나서 "하나님 아시잖아요. 제 세 가지 꿈,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이다. 그를 이끌어가는 꿈이다.
또한 4대째 내려온 신앙 때문인지 그에게는 감사가 배어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하나님, 아침에 눈을 떠서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고 예수님을 예수님이라 부를 수 있어서 기쁘고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한다. 그게 하루의 첫번째 기도다.
저녁에 잘 때는 "하나님, 기쁘고 감사한 하루였습니다"라고 기도한다. 그는 "하루 동안 때로는 어려운 일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두려워할 일이 없다"며 "나는 별명이 '스마일'이다"라고 했다. 학교 다닐 때나 회의할 때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얼굴을 찡그린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철저한 신앙교육은 신앙의 기초가 됐다. 그의 어머니는 "첫째, 주일을 성수해라. 가능하면 본 교회에서 주일을 지내야 한다. 예배를 드릴 때는 가능하면 맨 앞자리에 앉아라. 둘째, 십일조를 철저히 해라. 십일조를 하면 분명히 물질의 복을 받는다. 셋째, 목사님께 순종해라. 주의 종과 대적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고 했다.
십일조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자신의 책 <주께 하듯 하라>의 한 대목을 소개했다. "장학금을 받아가며 학교에 다녔지만 학생이니 돈이 없어서 십일조를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죄송해서, 설교 끝나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하나님, 저는 돈이 없잖아요. 졸업하고 좋은 직장 취직해서 장로님보다 헌금 더 많이 하게 해주세요'였다"는 것.
그 기도를 4년 했지만 그는 "젊었을 때니까 제 기도를 반드시 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군대에 다녀온 후 그는 삼성 입사 시험과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동시에 합격했다.
"삼성에 들어가서 첫 월급을 받으니 그렇게 기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십일조를 담아 보니 장로님보다 헌금 더 많이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더 담고 더 담고 해서 십의3조가 됐습니다. 적당히 교회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고 예수를 영접하고 믿는다면, 십자가의 흔적을 가져야 해요.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십일조도 피하고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은혜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주의 종을 섬기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은 그의 집안 전통이 되기도 했다. 채 회장의 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한 가지 전통은, 섬기는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으면 부흥회 전날 부흥사, 담임목사, 장로 내외에게 저녁 접대를 하는 것이다.
2007년 10월, 감리교신학대학 학장이었던 윤성범 학장의 딸 윤남옥 목사가 부흥회를 한다고 해서, 그날도 제일 맛있는 식사로 극진히 대접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튿날 오전 10시쯤, 윤남옥 목사에게서 "부흥회 전에 날 만날 수 있겠느냐?"는 전화가 왔다. 영문도 모른 채 그는 담임목사 내외와 아내와 아들과 함께 윤 목사의 숙소로 찾아갔다.
2007년 기도 받는 중 강한 성령 역사 임해
"100개 교회 연연 말라"... 23가지 예언 받아
채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윤 목사님이 기도를 해주셨다. 따지고 보면 이름만 아는 사이였는데 그 순간 강한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며 "그러면서 윤 목사님께서 저에 대한 예언을 하기 시작하셨다"고 전했다. 그는 "예언하는 것을 처음 봤는데 갑작스러웠지만 수첩을 꺼내서 적었다. 그런데 끝나고 보니 23가지를 예언을 하셨더라"고 말했다. 채 회장은 "아무도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분은 저와 43년간 같이 산 제 아내보다도 더 정확하게 저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채 회장은 "(23가지 예언 중) 21가지는 제가 동의를 했다. 근데 2가지는 동의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제가 아니라고 하니, 윤남옥 목사님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첫번째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은, 제 평생 꿈이 100개 교회를 세우는 것인데 윤남옥 목사님은 예언을 하시면서 '너는 100개 교회에 대해서 연연하지 마라. 77개가 될 수도 있고 100개보다 더 할 수도 있다. 계획한 건 너지만 이루는 건 나'라고 하셨어요. 저는 100개 교회를 목표로 왔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라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두번째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은 '해외 선교를 하러 갈 때 지금까지는 비행기를 타고 갔지만 앞으로는 배를 타고 가서도 할 것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그럴 것 같지도 않아서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고 감리교 선교국에 소속된 한 목회자가 채 회장에게 "필리핀 다바오 섬에서 더 들어가면 사바 섬이 있다. 그런데 이 섬을 그냥 두면 이슬람이 다 전파될 것"이라면서 "그곳에 교회를 세우면 사바 섬이 다 크리스천 섬이 될텐데, 그 섬이 그렇게 중요한데 선교사들이 아무도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교육기관도 없고 이슬람이 득세하고 있어서 선교사들이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 선교사를 추천했다. 그 선교사는 아프리카에서 7년 선교하다가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데, 그곳에 순교할 각오로 들어가겠다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 말에 감동이 된 채 회장은 그곳에 교회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곳에 가려면 마닐라까지 비행기로 4시간, 마닐라에서 다바오까지 차로 2시간, 다바오 섬에서 사바 섬까지 배로 1시간 가야 했다. 그 전까지 배를 타고 선교를 하러 들어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채 회장이었다.
채 회장은 그곳에 배를 타고 들어가서 몇 년에 걸쳐 교회 3개를 세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이다. 다 예정하고 계셨다가 이루신다"고 했다. 또한 말레이시아 추하우 섬에 세운 교회도 비행기에서 내려서 차로 9시간 배로 2시간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지금까지 채 회장은 36개국에 94개 교회를 헌당하고 올 연말까지 총 99개 교회를 헌당하게 된다. 현재 러시아, 카자흐스탄, 인도, 멕시코, 파푸아뉴기니에서 교회 개척이 진행 중이다.
채 회장은 1990년부터 23년간 여름휴가, 추석, 음력 설, 연말연시 등에 하루이틀 짬을 내어 헌당예배에 참석해왔다. 그는 올 여름 휴가 때는 베트남에, 추석에는 인도의 두 군데에, 연말연시에는 멕시코에 헌당예배를 드리러 간다. 채 회장은 "지금 교회 개척을 하고 있는 곳 중 선교하기 좋거나 편리한 곳이 하나도 없다. 가난하고 힘든 곳, 오지 등에 교회를 세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오지가 아닌 '미국'에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은 선교하기에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그런데 미국 정부에서 애리조나에 인디언들을 위한 마을을 만들어 줬는데, 그곳의 백인들이 교회를 세우면서 인디언들을 죽이고 쫓아내서 교회가 폐허가 됐다. 그래서 후에는 한 한국 선교사님이 선교를 하러 들어갔는데 순교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교단 감독님에게 들었다. 그분이 저에게 교회를 증축하고 리모델링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해서 그 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127년 전인 1885년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해, 지금 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저도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지 127년 만에 미국 애리조나에 가서 교회를 건립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헌당예배 때 그 감회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또한 사도 바울의 고향인 터키의 동쪽 지역부터 선교를 시작했다. 채 회장은 "원래는 바울이 동쪽으로 선교를 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마게도냐의 환상을 보여주셔서 유럽 쪽으로 가게 된 것이다. 저를 사도 바울과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바울의 고향이면서도 그가 선교하지 않았던 터키 등 동쪽 지역부터 시작해야겠다 생각해서 쓰리랑카에서부터 선교했다"고 전했다.
한편 채 장로와 그의 아내 김효신 장로는 80개 교회까지 세운 뒤였던 2011년, 해외 선교사로서 더 넓은 사역을 감당하겠다는 취지로 예장 성경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기도 했다. 또한 작년에는 대의선교센터를 서울 성북동 주택가에 개관해, 선교 현장 사진과 현지에서 받은 기독교 서적 및 기념품 등 100여 점을 전시해 놓았다. 그리고 그 내부에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 선교사들의 재충전을 돕고 있다.
채 장로는 "시작은 100개 교회였지만 자녀와 그 다음 세대에게 1000개 교회까지 헌당하겠는 확답을 받았다"며 "아직 100번째 교회가 어디가 될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100개 교회를 다 세운 후에는 1000개 교회를 하는 데 디딤돌이 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