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K씨는 수 년 간 남모를 병을 앓아왔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일종의 우울증. K씨는 자신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 뒤로 꽤 오랜 기간, 속된 말로 ‘용하다는’ 기도 집회란 집회는 다 다녀봤다. 하지만 그 때 뿐, 좋아지는 듯했던 증세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지쳐가던 K씨가 ‘속는 셈 치고’ 찾은 곳은 다름 아닌 정신병원. 평소 자신의 문제를 ‘영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K씨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병원에서 지어준 약을 몇 주간 복용하고 상담을 받은 후,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정신병’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에게 ‘정신병’이란 무엇일까. 정신, 혹은 마음에 생긴 문제는 물리적인 육체의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몸’에 병이 생기면, 신앙이 있다 할지라도 대부분은 병원을 찾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물론 그것조차 ‘믿음’과 결부시켜 병원에 가지 않고 기도 등 신앙의 힘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있지만, 극히 드물다. 그런데 ‘정신적’ 질병은, 병원에서 ‘약물’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 불분명할 때가 많다.
요즘처럼 우울증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선 이런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한 목회자는 “각종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교인들이 부쩍 늘었다”며 “그런데 이것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서 오는 영적 문제인지, 아니면 병원을 찾아 약물 등 의학적 도움을 받아야 할 문제인지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단순히 ‘기도하라’고만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정신분열증’적 증상을 보이는 경우, 그 구분이 더욱 어렵다. 정신분열증을 앓는 사람들은 말이나 행동 등이 정상적이지 못하고 마치 바보나 광인과 같은 모습을 보여, 교회에선 이들을 흔히 “귀신 들렸다”고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이들에게 ‘축귀사역’을 행하거나 기타 여러 방법으로 ‘영적치유’를 시도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영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이 약물 등 의학에만 매달리는 상황이다.
그래서 목회자 등 전문가들은 정신적 문제도 일반 육체의 병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독교 심리치료 전문가인 강선영 목사는 “정신적 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십 년 간 약물을 복용했지만 결국 회복되지 못한 이도 있었다”며 “반대로 병원은 생각하지 않고 신앙의 근본적인 면에서만 해결책을 찾으려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하지만 정신이나 심리적 문제는 매우 복합적”이라며 “기도와 상담, 약물의 도움이 모두 필요한 경우도 있다. 어느 한 가지만을 고집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신병’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과, 이로 인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데 있다. 또 다른 한 심리치료사는 “신앙인들은 자신에게 정신적 문제가 발견되면 이를 무조건 영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신앙을 가진 내가 ‘정신병’에 걸릴 리 없다는 생각 때문인데, 이로 인해 병이 악화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선영 목사 역시 “정신분열증도 약물과 심리치료를 병행하면 치료가 가능하지만, 적절한 시기를 놓치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성령론 등 영적 사역을 깊이 연구해 온 배본철 교수(성결대 역사신학)는 정신적인 병의 치유를 위해 의학의 도움을 빌리는 것도 하나의 ‘신앙적 행동’임을 강조했다. 그는 “정신병의 치유에 있어 영적인 방법과 의학적 방법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선 안 될 것”이라며 “하나님의 치유 영역은 반드시 기도 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의학 역시 하나님이 열어놓으신 가능성 중 하나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경우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는 신앙적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하지만 아주 예외적인 것을 제외하고 정신병이든 귀신 들림이든 모두 의학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은 굉장히 비성경적인 주장”이라며 “현대 의학으로 고치지 못한 것들을 기도와 상담 등으로 치료한 예들이 굉장히 많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데는 교회의 책임 역시 크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 목회자는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극심한 우울증 등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그리스도인들이었다”며 “이는 과연 교회가 ‘영적 병원’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느냐 하는 물음을 갖게 만든다. 정신병 중에는 물론 약물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영성이 건강한 이라면 그런 병에 걸릴 확률 또한 낮을 것이다. 지금의 교회가 그런 영성을 심어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