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가 박영숙 선생이 지난 17일 오전 5시(한국시간) 별세했다. 향년 81세.
'민중신학의 대부'였던 故 안병무 선생의 아내이기도 한 박영숙 선생은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전남여고를 졸업한 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이후 한국YMCA 총무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을 지내는 등 평생을 여성운동에 힘써 여성운동계의 거목이라 불렸다.
1967년 진보신학자인 안병무 목사로부터 청혼을 받아 결혼했고, 안 목사와의 사이에 아들(번역가 안재권 씨)을 두었다.
여성운동으로 시작된 그의 사회적 행보는 1976년 남편이 '3·1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투옥된 것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으로 치달았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인이 된 안병무 목사를 회상하면서 "남편은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에도 갔고, 고생을 많이 했다"면서 "그 사람 덕에 민주화운동에도 참여했고 사명의식을 터득하게 됐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생각하면서 넓은 의미의 시민운동을 하게 됐고, 정치활동도 그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때 여성단체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이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1987년에는 평민당 부총재로 정계에 입문해 1988년 1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99년에는 한국 시민 사회 최초의 공익재단인 한국여성재단을 만들어 '100인 기부릴레이'를 주도하는 등 기부문화의 전도사로 활동했다.
환경운동에도 힘써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을 거쳤으며, 말년에는 미래포럼, 여성평화외교포럼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2월부터는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설립한 '안철수재단(現 동그라미 재단)'의 이사장직을 맡기도 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20일 7시 30분,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