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꽃이 흩날리던 봄의 끝자락 아침, 경기도의 한 기도원을 찾았다. 나지막한 산 초입에 위치한 이 기도원은 약 30년 전 지어졌지만 여전히 기도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임없다. 예배와 기도회가 하루종일 이어진다.
오전 11시 예배를 1시간 30분 가량 남겨둔 시점. 그래도 예배당은 기도하는 이들로 제법 웅성거린다. 저마다 방석을 가져와 무릎을 꿇고 앉거나 아예 엎드린 이도 있었다. 장의자가 없는 온돌은 교회와 다른, '기도원만의 스타일'이다. 밤이 새도록 기도를 하다 그 자리에서 잠이 드는.... 온돌이 없는 기도원은 앙꼬 없는 찐빵이랄까.
평일 오전이라 남자들은 찾기 힘들고 대부분이 50~60대의 아주머니들이었다. 개중엔 세월이 스쳐가 머리칼이 다 새버린 할머니도 있다. 이 기도원에만 25년째 다니고 있다고. "한 달에 두어 번은 와. 한 동안은 금식을 곧잘 했는데 지금은 힘들어. 나중에 하늘나라 갈 때 기도하다가 가고 싶어(웃음)."
예배당 한켠에 자리를 잡은,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최근 이 기도원에 오기 시작했단다. 집이 일산인 그는 원래 근처 한 기도원에 오래 다녔는데, 갈수록 사람도 줄고 크기만 컸지 자연과 멀어, 아담하지만 산과 잇닿아 있는 이 기도원을 찾았다고. 무얼 위해 기도하느냐 물었더니, 한국교회를 위해서란다. 그 다음이 섬기는 교회, 그 다음이 가정, 그리고 마지막이 그 자신이었다.
예배 시간이 가까워 오자 사람들도 점점 더 많아진다. 그래도 예배당이 꽉 찰 정도는 아니었는데, 평일 예배라 그렇지 저녁예배나 철야기도회 땐 미처 예배당 안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이 현관 밖에 자리를 깔고 기도할 정도라는 게 한 성도의 설명이다.
이 기도원은 당일 이곳을 왔다 가는 사람들에겐 돈을 받지 않지만, 하루 이상 머무는 이들에겐 숙박료를 받는다. 만약 며칠씩 기도는 하고 싶은데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다면, 예배당에 담요를 깔고 그냥 자면 된다. 이렇게 하면 단돈 1천원에 하룻밤을 뜨뜻한 온돌 위에서 보낼 수 있다.
문득 우리나라에 이런 기도원이 몇 개나 될까 궁금해 인터넷을 검색했다. 서울에만 2,400여곳이 있다는 결과가 뜬다. 단순히 검색창에 '기도원'이라고만 쳤으니, 이 중에는 기독교 계통이 아닌 기도원들도 상당수 포함됐으리라. 다소 옛날 자료이긴 하나, 지난 1994년에 발간된 <월간목회>에서는 당시 국내 기독교 기도원 수를 약 500개로 추산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흘렀으니 그 수는 훨씬 더 많아지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기도원은 언제부터 있었고 그 중흥기는 또 언제였을까. 다수의 자료들이 그 시기를 8.15 광복 전후로 보고 있다. 두산백과는 "광복 후 목사 유재헌이 강원도 철원에 대한기독교수도원이라는 산중 기도원을 세운 것이 한국교회 기도원의 효시라고 전한다"고 밝히고 있다.
감신대 신대원을 나온 김동덕은 기도원 운동을 고찰한 석사학위 논문에서 "한국 기도원의 태동이 수도원의 초기 발생과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며 "즉 수도원의 초기 발생이 정치적으로 교회를 향한 모진 박해로 인해 생긴 것인데, 한국 기도원도 일본 식민지 정책으로 기독교가 심한 박해를 받자 기독교인들이 산 속 은밀한 곳으로 피하게 됨으로써 수도원 형태를 지닌 초기 기도원들이 나타났던 것"이라고 했다.
이후 기도원은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자리를 잡기까지 상당한 시행착오가 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60년대 급속하게 증가한 기도원은 지나친 신비적 열광주의 때문에 사회 및 교계에 물의를 빚기도 했다"며 "사이비 의료행위나 정신병자수용소 구실을 하고 전국 유명산을 훼손시키는 등 일부는 탈선의 온상으로 지목되기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기도원들은 차츰 정리되기 시작해 80년대 전후 개별 교회들이 직영으로 운영하는 건전한 기도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게 김동덕의 설명이다. 그는 "이 때부터 개신교 기도원 운동은 그 정착단계에 접어들어 교회와 신앙생활에 활력을 줬다"며 "한국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는 데 기도원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기도원은 일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또 앞으로도 줄 수밖에 없다"며 "그러므로 기도원에 대한 바른 이해와 관심이 한국교회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이 기도원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교회들이 많다는 소리를 요즘 종종 듣는다. 취재 중에 만난 한 목회자는 "갈수록 교인들 숫자가 줄다 보니 기도원을 찾는 수도 줄어드는 게 당연할 것"이라며 "교회들이 본당 건물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니 기도원 사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고 했다. 또 다른 한 목회자는 "한때 그래도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찾았는데, 그분들이 세상을 떠난 뒤 그 만큼 발길이 줄었다"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기도원을 잘 찾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취재를 마치고 기도원을 떠나려는데, 대학생으로 짐작되는 한 젊은 여성이 성경을 손에 꼭 쥐고 기도원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의외였고 신선했고, 다행스러웠으며 또 희망을 보았다. 그렇게 만감이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