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이 왔다. 현대 사회에서 봄이 오는 신호는 녹아 내리는 눈을 보는 것도 아니고, 기지개 켜는 개구리를 보는 것도 아니다. 일광절약 시간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게으른 곰처럼 겨우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달력을 보니,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일광절약 시간제가 시작되고 봄이 강제로 떠밀려 왔다.

일광절약 시간제가 시작되면서 제일 먼저 비상등이 켜지는 곳은 교회다. 주일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 주전에 미리 광고를 하고 주중에 전화를 돌리는 등 바뀐 시간제에 예배에 늦지 않도록 열심히 안내를 한다.

빨라진 예배 시간에 온 성도들을 보면 참 힘들어 보인다. 겨우 한 시간 밖에 빨라지지 않은 시간인데 보이는 모습은 거의 새벽 세시 반에 억지로 끌려 나온 사람들 같다. 말 수는 적어지고 예배 끝나면 서둘러 집으로 가서 부족함 잠을 채우기에 바쁘다. 생활의 편안함을 송두리째 휘저어져 버린 것 같은 불쾌감과 분노는 월요일에 그대로 회사로 가져갈 것이다. 누적된 피로감과 함께.

뭐, 그렇게 새로운 것도 아니고 매년 3월이면 시작되는 일광절약 시간제이지만, 시간이 바뀐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새해가 벌써 3개월을 지나고 있는 상황에서 신년, 설날 다 지나고 작심삼일도 이미 끝난 지 오래인 우리에게 한번 더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고 늘 말한다. 조금만 앉아 있어도 휴대폰의 시계를 자꾸 쳐다보게 되고 얼마나 바쁜지 가족들과 함께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 때도 많다. 걷는 것 보다는 뛰는 때가 더 많고 늘 늦어서 호흡이 거칠어지고, 그러다 보면 중요한 것은 꼭 빠뜨린다.

그런 우리에게 한 시간 빨리 일을 시작하고 한 시간의 여유가 더 생긴다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고 여유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한 시간 빠른 시간에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해서 저녁시간에 아이들과 놀아 줄 수 있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 처음에는 그 한 시간의 달콤함에 생기가 돌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간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시간의 관리란 비싼 시계, 정확한 시계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하는 것이다.

일광절약 시간제가 남들보다 한 시간 빠른 삶은 아니지만, 게으른 우리 삶을 한 시간 빠르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마음도 좀 당겨 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늘 조급해 하고, 중요한 일과 중요한 사람에게는 얼마나 여유를 부렸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언제나 나를 챙겨주던 아내, 아빠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들,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던 부모님에게는 늘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아껴왔던 시간들은 저축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이다.

이제는 돌아보아야지 하고 생각할 때는 이미 중요한 사람들은 우리 곁에 없다. 그리고 그 때 주지 못했던 사랑을 오늘 열 배로 준다고 해서 채워지는 것도 아니다. 그 때 그 중요한 시간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이해할 것’이라며 세월의 강에 그냥 흘려 보낸 것이다. 되돌릴 수도 없이. 그러기에 시간은 냉정하다.

우리는 강제로 빼앗겨 버린 한 시간을 11월이 되면 마치 만기가 된 예금을 찾는 것처럼 어김없이 돌려 받는다. 원금으로 되돌려 받는 시간은 늘 그렇듯이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시간의 이자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올해는 밥 벌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 시간 더 바쁘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