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생업으로 하고 있는 일을 당장 그만 두더라도 월급이나 혹은 수입이 줄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그래도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는 이유가 단지 돈때문만은 아니더라도 돈이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소위 먹고 살 걱정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려고 할까? 하지만 은퇴를 한 이후에도 자원봉사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에 일하는 즐거움이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 일 자체가 벌이나 저주만은 아니라는 반증이 된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낙원에서 쫒겨난 이후에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서 자신과 식구를 부양해야했다. 에덴동산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짐승들이 살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을 다스리고 모두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만하더라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얼마전에 태어난 조카가 있는데 그 부모가 이름을 짓는데 한달이 꼬박 걸렸다. 그것도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서 법이 정한 시한이 한달이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돌림자가 정해져 있어서 한 글자만 고르면 되는 상황이었는데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아담은 아마도 그 ‘일’을 하면서 기쁨이 넘쳤을 것이다. 힘든 일이지만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사용했고 하나님과 함께 의논하며 ‘작명’을 했다. 아담이 그 일을 원하고 자청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담이 스스로 그 일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타락한 후에 감당해야 하는 일은 정말 힘들고 무의미해 보였을 것이다. 벌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하기 싫었을 것이다. 하와도 마찬가지였다. 인간말고는 이렇게 큰 출산의 고통을 겪는 동물은 없다.
일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는 사실 일자체가 힘든 경우도 있지만 일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의미라는 것은 일과 함께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애써서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삶의 정점에서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힘든 줄 모르고 일한다고 말하면서 혹독한 현실을 견디어 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냉난방이 잘되는 사무실에서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하는 일은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하지만 일이 얼마나 힘들게 느끼는 지는 아주 개인적인 문제이다.
중세나 아직도 신분제도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내가 할 일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졌다. 농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농부이고, 귀족은 처음부터 끝까지 귀족이다. 그리고 신분에 맞는 일이 정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 일(직업)을 소명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이땅에 온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고 출신이나 배경과는 상관없이 다양한 직업의 선택이 가능해지면서 소명과 직업이 분리 되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하고 있는 일과는 상관없이 나의 소명을 따로 찾아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예를 들어 전도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선교사나 목사라는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어졌다. 반대로 목사를 직업으로만 여기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직업을 바꾸는 사람도 있고, 현재의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고 그 안에서 나름 소명을 이루려는 사람도 있다. 모양은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직업과 소명간에 괴리가 생긴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은 아마도 소명도 없고 직업에 만족하지도 못하는 경우일 것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직업을 소명과 착각해서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들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얻었다고 저절로 훌륭한 교육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저절로 하나님앞에 전적으로 헌신한 목회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소명을 좀더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직업과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상황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도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목수일을 했었고,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려는 소명을 가졌지만 생업을 위해서 장막을 만드는 직업을 계속 유지했던 이유를 기억해야한다. 직업은 바꿀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지만 소명을 발견하고 이루려는 노력은 포기할 수 없다.
칼럼리스트 하인혁 교수는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Western Carolina University에서 경제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Lifeway Church에서 안수집사로 섬기는 신앙인이기도 하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991년도에 미국에 건너와 미네소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앞으로 하인혁 교수는 기독일보에 연재하는 <신앙과경제> 칼럼을 통해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인으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올바른 경제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해 나가야 하는지를 풀어보려고 한다. 그의 주요연구 분야는 지역경제발전과 공간계량경제학이다. 칼럼에 문의나 신앙과 관련된 경제에 대한 궁금증은 iha@wcu.edu로 문의할 수 있다"-편집자 주-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낙원에서 쫒겨난 이후에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서 자신과 식구를 부양해야했다. 에덴동산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짐승들이 살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을 다스리고 모두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만하더라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얼마전에 태어난 조카가 있는데 그 부모가 이름을 짓는데 한달이 꼬박 걸렸다. 그것도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서 법이 정한 시한이 한달이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돌림자가 정해져 있어서 한 글자만 고르면 되는 상황이었는데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아담은 아마도 그 ‘일’을 하면서 기쁨이 넘쳤을 것이다. 힘든 일이지만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사용했고 하나님과 함께 의논하며 ‘작명’을 했다. 아담이 그 일을 원하고 자청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담이 스스로 그 일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타락한 후에 감당해야 하는 일은 정말 힘들고 무의미해 보였을 것이다. 벌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하기 싫었을 것이다. 하와도 마찬가지였다. 인간말고는 이렇게 큰 출산의 고통을 겪는 동물은 없다.
일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는 사실 일자체가 힘든 경우도 있지만 일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의미라는 것은 일과 함께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애써서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삶의 정점에서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힘든 줄 모르고 일한다고 말하면서 혹독한 현실을 견디어 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냉난방이 잘되는 사무실에서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하는 일은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하지만 일이 얼마나 힘들게 느끼는 지는 아주 개인적인 문제이다.
중세나 아직도 신분제도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내가 할 일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졌다. 농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농부이고, 귀족은 처음부터 끝까지 귀족이다. 그리고 신분에 맞는 일이 정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 일(직업)을 소명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이땅에 온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고 출신이나 배경과는 상관없이 다양한 직업의 선택이 가능해지면서 소명과 직업이 분리 되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하고 있는 일과는 상관없이 나의 소명을 따로 찾아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예를 들어 전도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선교사나 목사라는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어졌다. 반대로 목사를 직업으로만 여기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직업을 바꾸는 사람도 있고, 현재의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고 그 안에서 나름 소명을 이루려는 사람도 있다. 모양은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직업과 소명간에 괴리가 생긴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은 아마도 소명도 없고 직업에 만족하지도 못하는 경우일 것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직업을 소명과 착각해서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들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얻었다고 저절로 훌륭한 교육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저절로 하나님앞에 전적으로 헌신한 목회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소명을 좀더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직업과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상황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도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목수일을 했었고,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려는 소명을 가졌지만 생업을 위해서 장막을 만드는 직업을 계속 유지했던 이유를 기억해야한다. 직업은 바꿀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지만 소명을 발견하고 이루려는 노력은 포기할 수 없다.
칼럼리스트 하인혁 교수는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Western Carolina University에서 경제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Lifeway Church에서 안수집사로 섬기는 신앙인이기도 하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991년도에 미국에 건너와 미네소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앞으로 하인혁 교수는 기독일보에 연재하는 <신앙과경제> 칼럼을 통해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인으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올바른 경제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해 나가야 하는지를 풀어보려고 한다. 그의 주요연구 분야는 지역경제발전과 공간계량경제학이다. 칼럼에 문의나 신앙과 관련된 경제에 대한 궁금증은 iha@wcu.edu로 문의할 수 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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