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미국에서 흑인대통령이 탄생했고 지난 달에 재선이 되었다. 흑인이어서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지만 흑인으로 대통령이 된 것은 사회적으로 분명히 큰 변화를 뜻한다. 흑인인권운동의 시발점으로 여겨지는 사건인 로사 파크스가 버스안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서 체포된 일은 1955년에 있었다.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마틴 루터킹 주니어 목사의 활동으로 이어진 이 사건은 불과 반세기 남짓 전의 일이었다. 노예해방은 있었지만 진정한 인권은 회복되지 못했었고 인종차별은 지금도 시급한 현안이다. 1967년에 대법원이 위헌판결을 내리기 전까지 미국에서는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무려 17개주에서 인종간의 결혼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불과 45년전의 이야기이다.1870년에 공식적으로 흑인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지기는 했지만, 거의 100년의 시간이 지난 1965년이 되어서야 실질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여자들에게는 1920년에 참정권이 주어졌다. 물론 거저 주어진 것은 아니다. 백악관앞에서 벌인 쇠사슬시위와 40만명이 넘는 서명을 받고서 얻은 쾌거였다. 여자들보다 흑인들에게 먼저 참정권이 주어진 것도 기억할 만한 일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여자대통령보다 흑인대통령이 먼저 나올 것이란 예측을 하기도 했다.

멀리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서 최초로 여자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아직 미국에서도 하지 못한 일이다. 한국에서 여성의 지위는 전세계에서 100위권도 들지 못한다. 아랍권국가들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미성년인 여자를 강간하고도 반성의 기미가 보이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나라가 한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대통령이 나온 것은 분명히 ‘사건’이다. 물론 이번 한국의 대선은 성대결이 아니었다. 오히려 보수와 진보의 한판 승부였다. 그런데 보수의 수장이 여자였다. 스스로 저격수를 자처하고 나온 한 후보가 저격에 실패했다. 저격을 시도했는데 목숨을 뺏지 못하면 오히려 저격당한 사람을 도와주게 된다는 간단한 원리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저격을 받고도 살아난 사람은 영웅이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대통령 당선자는 자신이 여성임을 강조하지 않았다. 가끔씩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라는 표현을 하면서 국민적인 화합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나타냈을 뿐이다. 오히려 반대쪽에서 박후보가 여성성이 약하다는 공격을 한 적도 있다. 참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오히려 상대편을 돕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한국에서 여자임을 강조해서 국가수반에 오르기는 어렵다.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을 비롯한 몇몇 여성지도자를 배출한 국가들을 보면 대부분 여자이지만 여성보다는 강인한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남자보다 더 강한 여자가 지도자로 필요했던 것이다.

여자 대통령이 당선이 되자 당연히 여성단체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당선자는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아닌 것보다는 낫겠지. 기대감이 만발한다. 많은 어린 여학생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주게 될 것이다. 여자 대통령 한사람이 수만명의 여자를 고용하는 것보다 효과가 크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오히려 그 이상일 것이다.

후보자들 모두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과연 어떤 세상일까? 일자리가 더 많은 세상이란다. 그런데 그 일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지는 묻지 않았다. 어린이와 과부를 돌보는 세상. 즉, 경제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초등학생의 인권도 검사의 인권처럼 똑같이 취급되는 사회가 좋은 세상이다. 여자의 인권이나 불법이민자의 인권도 똑같이 존중받는 사회가 좋은 세상이다. 그런 면에서 세상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조금은 더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닭이 운다고 새벽이 온 것은 아니다. 신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은 결코 포기할 수없는 모두의 희망이지만 권리는 절대로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토머스 제퍼슨이 말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칼럼리스트 하인혁 교수는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Western Carolina University에서 경제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Lifeway Church에서 안수집사로 섬기는 신앙인이기도 하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991년도에 미국에 건너와 미네소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앞으로 하인혁 교수는 기독일보에 연재하는 <신앙과경제> 칼럼을 통해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인으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올바른 경제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해 나가야 하는지를 풀어보려고 한다. 그의 주요연구 분야는 지역경제발전과 공간계량경제학이다. 칼럼에 문의나 신앙과 관련된 경제에 대한 궁금증은 iha@wcu.edu로 문의할 수 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