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탈북자를 도와준 사실이 발각되면서 중국 공안의 추적을 피해 어선을 타고 한국으로 탈출한 조선족(재중동포)이 천신만고 끝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법원이 정치적 박해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난민 불인정 처분을 취소한 것이다.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이유로 조선족 난민 신청이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고려하면 무척 이례적인 판결이다. 특히 중국 정부의 탈북 지원자 처벌이 우리 입장에서는 다소 지나쳐 탄압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어서 향후 비슷한 판결이 속출하면 외교적 마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족 이모(38.여)씨는 평소 친분이 두터운 A씨의 부탁으로 2010년 10월부터 직접 압록강을 건너가 탈북자를 데려온 다음 자신의 집에서 2∼3일씩 머물도록 해주는 등 20여명의 탈북을 도왔다. 이씨는 자발적으로 지원했을 뿐 따로 대가를 받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중국 공안은 A씨 주변을 뒤져 `탈북 루트'를 파악한 뒤 작년 3월 A씨를 체포하고 가담자 색출에 나섰다. 이윽고 공안이 이씨 집도 급습해 혼자 있던 남편에게 아내의 행방을 캐물었다.
다행히 초등학생 딸과 함께 다른 거처에 머물고 있던 이씨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한국행을 감행했다. 이씨는 지난해 3월24일 어선을 타고 밀항하다 서해안에서 우리 해경에 발견됐다.
중국에 남아있던 이씨 남편은 결국 체포돼 장기 징역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씨는 `중국 정부에 의한 박해'를 이유로 난민신청을 했지만, 당국은 "이씨 주장의 신빙성이 떨어지고 설사 사실이라도 중국에서 중형을 받을 정도의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며 난민 인정을 거부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진창수 부장판사)는 이씨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의 행위 자체가 중국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점을 고려하면 비록 소극적 표현일지라도 박해의 이유가 `정치적 의견'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지원한 탈북자 수가 많아 중국으로 돌아가면 무거운 형사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큰 만큼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한다"며 "이씨의 입국 경위에 대한 설명도 일관된 점 등을 고려하면 거부 처분이 위법하다"고 강조했다.
법원 관계자는 "탈북 지원 조선족에 대한 중국 정부의 `합법적' 처벌이 대한민국 시각에서는 좀 지나쳐서 탄압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