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동부국제기아대책기구(회장 황영진 목사) 해외아동결연 후원의 밤이 홍보대사 탤런트 김정화 씨를 초청한 가운데 3일 오후7시30분 베이사이드 새천년교회(낙원장로교회)에서 개최, 아동결연을 약정하는 사랑의 손길들이 쏟아졌다.

“우리들의 부모가 되어 주세요-행복한 한끼 나눔”을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회장인 정정섭 장로를 비롯한 스탭들도 함께 참여했으며, 탤런트 김정화 씨가 우간다 어린이 아그네스와의 결연을 통해 받은 은혜와 우간다 현지에서 직접 체험하고 목격한 우간다 어린이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생생한 증언은 이날 참석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이날 행사는 전희수 목사의 인도로 찬양인도 김봉규 목사, 대표기도 임병남 목사, 기아대책보고 정정섭 회장, 특송 정세라 홍보대사, 현장방문간증 김정화 홍보대사, 필그림선교무용단 공연, 광고 박진하 목사, 축도 황영진 목사 순서로 진행됐다.

김정화 씨는 현재 어머니가 암투병 중에 있음에도 고통을 받고 있는 해외 아동들의 현실을 전하고 아동결연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자비량으로 소속사 관계자들과 함께 뉴욕을 방문했다. 김정화 씨는 에이즈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대부분의 우간다 어린이들의 현실의 전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 아동결연을 통해 딸을 삼은 아그네스와의 소소한 추억들에 활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날 후원 행사에는 미동부기아대책 회원 목회자들과 새천년교회, 낙원장로교회 성도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회장 정정섭 장로

하루에 5만명이 굶어죽어가고 있다. 이 사람들에게 떡과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 기아대책은 전 세계 82개국에 520여 명의 봉사단을 파송해서 사역하고 있고 협동 봉사단까지 합하면 1400여명이 같은 비전으로 나가고 있다. 50년전 우리나라 83달러의 1인당 국민소득이 지금은 2만 불을 훨씬 넘었다.

세계에서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7번째 나라가 한국이다. 23년 전 한국에서 기아대책이 이 사역을 시작할 때 한국은 원조를 주는 NGO가 없었다. 원조를 받은 NGO만도 셀 수 없었는데 지금은 원조 받는 곳이 없다. 해외 원조단체협의회에 가입돼 있는 곳이 88개가 있다.

1989년 한국 기아대책이 시작할 때만 해도 서울 시내에 트래픽이라는 용어가 없었다. 이 일을 시작하고 2~3년 출퇴근 트래픽이라는 현상이 생겼는데 지금 서울은 시도때도 없이 막히고 있다. 성경에는 주라 그러면 줄 것이니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23년동안 저는 이 사역을 섬기면서 확인한 것은 주는 성도를 하나님은 축복하신다는 것이다. 주는 교회를 축복하시고 주는 기업체가 엄청나게 성장하도록 하신다.

저는 저를 이렇게 부른다. 나귀 끌고 온 예수님의 제자다. 주가 쓰시겠다고 하는 말은 제가 할 수 있다. 그러나 나귀를 사용하게 하는지 여부는 여러분에게 있다. 여러분이 오늘 김정화 홍보대사를 통해 주가 쓰시겠다는 메시지를 들을 것이다. 오늘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통해 일어나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홍보대사 탤런트 김정화 씨가 간증하고 있다.
아프리카 우간다에 갔을 때 한 아이에 엄마가 된다는 것에 설레고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에이즈 보균자에 대한 주변의 우려가 있었다. 같이 생활하는 것이 위험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그네스를 통해서 에이즈라는 병에 대해서 조금 지식을 갖게 되고 아이랑 함께 지내면서 전혀 전염이 되는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다만 아이가 피부색도 다른 저를 엄마로 받아들여줄지 걱정을 했다. 걱정과 두려움을 갖고 우간다 땅을 밟았을 때 누더기 옷을 입은 아이가 맨발로 저를 향해 막 뛰어왔다. 그 순간 당황했다. 아그네스인 것 같은데 안아주어도 되는지 고민했는데 아그네스가 먼저 달려와 확 안겼다. 그 때 눈물이 저도 모르게 핑 돌았다. 아이가 너무 그리웠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가 먼저 제 마음을 열어 준 것 같아서 아이에게 너무도 고마웠다. 아이의 엄마가 돼 주기 위해서 아프리카에 갔으니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주자는 마음으로 가서 빨래도 해주고 식사도 차려주고 학교 선생님도 찾아 뵈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에이즈 환자이다 보니 사소한 병도 위험하기 때문에 병원에도 자주 가야 했다.

당시에 아프리카에 가뭄이 너무 심했다.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우물이 있었다. 가서 봤더니 그 우물이 탁한 것 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오물이 그 안에 섞여 있었다. 이것을 사람이 먹는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원래 그 우물에 몇백원하는 알약 하나를 넣고 정화해서 사용하는데 이 약조차 돈이 없어서 사용하지 못하고 그냥 그 식수를 하용하게 된다. 아이들이 배가 볼록한 것을 보는데 그 오염된 물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리고 기생충이 물 안에 있는데 아이들 몸 밖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고 뇌를 건드리는 경우도 있다. 아그네스가 아직도 오염된 물을 먹어야 한다는 그 상황이 너무도 안타깝다. 제가 아이에게 선물이 되어준다는 생각이었지만 며칠 지나고 제가 돌아오면서 보니까 제가 준 선물만큼 아이도 저에게 너무도 많은 선물을 줬다. 마음을 열어주고 나를 엄마로 받아들여주고 사랑의 마음을 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눔이라는 것이 주는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새벽5시부터 일어나서 밤10시까지 촬영을 했다. 고단했지만 아그네스의 사랑으로 인해 오히려 그 기억을 떠올리면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마지막날 아그네스에게 모기장을 선물해줬다. 가서 보니 모기장도 다 뜯어져있고 얇은 천을 깔고 잤다. 그런데 매트리스와 모기장을 선물로 주니까 너무도 좋아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여기서 엄마랑 같이 자고 싶다고 했다. 아프리카의 아이들 대부분이 생일을 모른다. 자기 부모님이 너무도 빨리 에이즈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이를 모르고 살아간다. 아그네스 출생정보를 봤을 때 1월 1일이 출생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그 때 태어난 것이 아니라 태어난 정보가 없어서 그렇게 기록된 것이었다. 그래서 생일을 정해주고 왔다. 저를 엄마로 받아들인 날을 생일로 정했다. 그리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불러줬다. 그 노래를 부르는데 너무도 눈물이 났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모르고 살았겠지만 앞으로는 많은 사랑을 받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를 때 눈물이 너무도 났다.

단 5일의 시간을 함께 하고 헤어지는데 너무도 슬프로 눈물이 났다. 아이보다 제가 더 슬퍼하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 가야한다고 했을 때 그렇게 매트리스를 받고 기뻐하고 뛰던 아이가 제 품에 안겨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결국 아무 이야기도 못 듣고 저는 돌아왔는데

자기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나중에 엄마가 저를 보러 왔을 때 죽고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데 너무 속상했다. 아이들은 피부색이 다르던지 아프던지 건강하던지 너무도 아름다운 눈망울을 갖고 있는데 그 여섯 살짜리 아이가 예쁜 입으로 자기의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한국에 와서 아그네스를 위해 정말 열심히 기도했다. 엄마의 소원으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간절히 기도했다. 우간다에는 에이즈 환자가 정말 많은데 에이즈에 걸린 아빠와 에이즈에 걸린 엄마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도 다 에이즈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반 정도만이 에이즈에 걸리는데 거의 모든 아이들이 에이즈에 걸려 있어서 의아했다. 왜 그러는지 물었더니 아이의 엄마가 모유를 먹일 때 수직감염이 된다고 했다. 엄마가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면 아이가 에이즈에 걸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이는 이유는 단돈 몇 백원 분유를 살 돈이 없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에이즈에 걸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유를 먹이는 것이다. 병원에서 에이즈 약을 타러 온 엄마들이 모유수유를 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에이즈에 걸린 아이는 미래의 꿈도 없이 살아간다. 학교에서도 무시를 당하고 차별을 당한다. 꿈을 가진다해도 살 수 있는 보장이 안되기에 작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이 우간다에 살고 있다. 아그네스를 위해 기도하고 아프리카에 직접 다녀와 보니까 그런 현실들이 와 닿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우울하고 지킬 때 아그네스를 생각하면서 힘을 냈고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힘을 주셔서 아그네스를 위해 기도하던 중에 제 마음이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또 아그네스가 저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3년 동안 아그네스와 헤어져서 아이를 위해 기도하며 지내다가 이번에 만나게 됐을 때 아이가 정말 키고 커지고 살도 쪘다. 그리고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소원을 말했다. 그 전에는 소원을 물으면 망설였는데 그렇게 예쁜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도 기뻤다.

제가 이번에 가서 다른 많은 아이들을 만났는데 병원에 가서 화가 날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내전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저기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에이즈에 걸려야 하고 저렇게 굶어야 한다. 하루에 하나씩 계란만 챙겨 먹기만 해도 병이 나을 아이들이 정말 많다. 그런게 그것 조차 챙겨줄 사람, 또 계란 하나 먹을 돈이 없어서 병이 악화됐다. 아그네스를 만일 만나지 않았다면 아그네스도 저 병원에 있는 아이들과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아그네스와 같은 많은 아이의 엄마가 여러분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계란은 얼마 하지 않는다. 작은 마음만 있다면 이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몇 만원이 부담이 된다면 이 아이에게 모기장을 보내주는 캠페인도 하고 있다. 결연이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저는 몇 만원을 보내주는 것이지만 아이에게는 자기가 관심을 받고 있고 자기를 사랑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존재로 인해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그 몇 만원이 몇만원이 아닌 아이에게는 가치로 따질 수 없는 귀한 선물이 된다. 제가 느꼈던 뜨거운 마음을 여러분이 공감하셨으면 좋겠다.

<국제기아대책기구>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1971년에 설립된 국제 민간단체로서 지구촌의 기아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고, 굶주린 이들에게 식량을 지원함으로써 생존과 자립을 돕고 있으며, 아울러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선교 사역에 힘쓰고 있다. 기아대책기구는 유엔경제사회이사회(UN-ESCOSOC)에 협의 지위 자격으로 등록돼 있으며 현재 세계 60여개 국가에서 2600여 명 이상의 스텝과 521명 이상의 기아봉사단이 각종 개발사업과 긴급구호 활동을 위해 일하고 있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1989년에 설립돼 한국 내에 97개 지역회와 204개의 운영실에서 결손가정, 독거노인, 장애인을 위해 여러 가지 복지사업을 해오고 있으며, 북한 지원사업도 하고 있다.

<미동부국제기아대책기구>
2007년에 설립되었고 일차적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중점사업은 ‘해외아동결연사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