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현 목사는 한국감리교단에서 미국 내 한국 이민자들을 위해 사역하도록 파송한 최초의 한국인 선교사인 이재은 목사의 아들이다.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 3학년 때 미국 동부로 건너온 그는 한국어와 영어구사가 자유로운 1.5세 목회자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양한 양떼의 목자로 세우시고자 치밀하게 계획하시고 인도하신 것이다.
한참 사춘기를 지날 무렵 자유의 나라 미국에 건너온 이 목사는 고등학교 시절 방황의 시기를 겪고, ‘잘살고 싶어서’ 대학교에서 어카운팅을 공부하기도 했다.
“목사님 아들이지만 목회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그저 돈 많이 벌어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죠. 그러다 대학교 2학년에 예수님을 진심으로 영접하고 3학년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신학대학원에 입학해 목회의 길을 준비했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 갈등과 고민이 있었죠”
하나님께선 그런 이성현 목사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결국 하나님께서 쓰시는 귀한 종으로 다듬어 가셨다.
“제 멘토는 저의 아버지와 미국인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길 때 담임목회자이셨던 로버트 던칸 목사님이세요. 아버지는 굉장히 조직적이고 행정적인 분이셔서 그 부분을 배웠고, 던칸 목사님은 ‘People Oriented’ 즉 ‘사람이 중심이 되는 관계성’ 중심의 사역을 하셨어요. 또 스토리 텔링(이야기식) 설교를 하셨는데 그런 부분을 배울 수 있었죠”
이성현 목사의 인생여정을 담고 있는 듯, 이 목사는 이사야서 43장을 늘 가슴에 품고 산다. 힘들고 어려울 때도 ‘지명하여 부르신’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면 힘이 난다고 한다.
또 이 목사는 감리교단의 캄보디아선교 후원회 회장을 맡아, 선교사역에도 힘쓰고 있다.
한참 사춘기를 지날 무렵 자유의 나라 미국에 건너온 이 목사는 고등학교 시절 방황의 시기를 겪고, ‘잘살고 싶어서’ 대학교에서 어카운팅을 공부하기도 했다.
“목사님 아들이지만 목회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그저 돈 많이 벌어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죠. 그러다 대학교 2학년에 예수님을 진심으로 영접하고 3학년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신학대학원에 입학해 목회의 길을 준비했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 갈등과 고민이 있었죠”
하나님께선 그런 이성현 목사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결국 하나님께서 쓰시는 귀한 종으로 다듬어 가셨다.
“제 멘토는 저의 아버지와 미국인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길 때 담임목회자이셨던 로버트 던칸 목사님이세요. 아버지는 굉장히 조직적이고 행정적인 분이셔서 그 부분을 배웠고, 던칸 목사님은 ‘People Oriented’ 즉 ‘사람이 중심이 되는 관계성’ 중심의 사역을 하셨어요. 또 스토리 텔링(이야기식) 설교를 하셨는데 그런 부분을 배울 수 있었죠”
이성현 목사의 인생여정을 담고 있는 듯, 이 목사는 이사야서 43장을 늘 가슴에 품고 산다. 힘들고 어려울 때도 ‘지명하여 부르신’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면 힘이 난다고 한다.
또 이 목사는 감리교단의 캄보디아선교 후원회 회장을 맡아, 선교사역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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