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떤 목사님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양치질을 하는데 갑자기 이 하나가 뚝 떨어지더랍니다. 깜짝 놀라 급하게 치과를 찾아가 봤더니, 이 자체는 건강한데 잇몸에 문제가 생겨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더랍니다. 그 목사님은 잇몸 치료를 하고, 결국 임플란트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그동안 이와 잇몸 치료에 들어간 돈이면 벤츠 하나 정도는 구입했을 거라고 우스개소리를 합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치아 건강과 치아 미용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만큼 건강에 중요한 것이 치아의 상태입니다. 치통이 사람이 겪는 고통 중에 다섯번째 안에 든다니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짐작이 갑니다. 치아를 잘만 관리하면 평생 틀니가 필요없이 자신의 이로 살아갈 수 있다는데, 사실 치아를 잘 관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예로부터 건강한 치아를 갖고 태어나는 것이 오복 중의 하나라고 했나 봅니다.
어느 성도 한 분은 입을 크게 벌리고 호탕하게 웃는데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이유인 즉슨, 앞니 하나가 빠져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니가 없으니 입을 크게 벌리고 말하거나 웃는데 자신감이 없어지더랍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분의 인상이 달라졌습니다. 밝고 호탕해진 것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이 분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전에는 빠진 앞니 사이로 복이 나간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그 사이로 복이 들어온다고 생각됩니다.” 이전에는 분명히 앞니가 없는게 창피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당당해지고 오히려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주변에서 이를 해 주겠다는 의사분도 계신데 오히려 제가 거절하고 있습니다. 빠진 앞니 사이가 복이 들어오는 길이에요”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맞아 얼마나 열심히 새벽기도까지 나오는지 그저 그 변화에 감사할 뿐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축복을 원합니다. 사람들은 환경이 좋아야 복을 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은 사실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복을 얻고 누리기 위해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마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그 마음이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그 곳은 결코 복된 곳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마음이 될 때 그 곳에 복이 충만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을 좇아 다닙니다. 복이 많아 보이는 곳을 기웃거립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을 좇아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이 많아 보이는 곳을 찾아가 그 곳에서 그 복을 얻고 누려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곳에서 복의 근원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래 전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함께 고향 땅을 떠나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조카 롯은 먼저 복이 많아 보이는 곳을 찾았습니다. 그때 소돔과 고모라는 분명 복이 많은 곳처럼 보였고, 그 곳에 정착하면 그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문제는 복을 좇아 다니며 얻고자 하는 그 욕망이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마음을 가로막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가 선 곳이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스스로가 복의 근원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신 곳에서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부르십니다. 마음부터 바뀌면 됩니다. 빠진 앞니를 부끄러워하기보다 그 자리가 복이 들어 오는 길로 감사하면 됩니다. 우리의 처한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기에 나 자신이 복의 근원이 되기를 다시금 소망해 봅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치아 건강과 치아 미용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만큼 건강에 중요한 것이 치아의 상태입니다. 치통이 사람이 겪는 고통 중에 다섯번째 안에 든다니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짐작이 갑니다. 치아를 잘만 관리하면 평생 틀니가 필요없이 자신의 이로 살아갈 수 있다는데, 사실 치아를 잘 관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예로부터 건강한 치아를 갖고 태어나는 것이 오복 중의 하나라고 했나 봅니다.
어느 성도 한 분은 입을 크게 벌리고 호탕하게 웃는데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이유인 즉슨, 앞니 하나가 빠져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니가 없으니 입을 크게 벌리고 말하거나 웃는데 자신감이 없어지더랍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분의 인상이 달라졌습니다. 밝고 호탕해진 것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이 분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전에는 빠진 앞니 사이로 복이 나간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그 사이로 복이 들어온다고 생각됩니다.” 이전에는 분명히 앞니가 없는게 창피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당당해지고 오히려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주변에서 이를 해 주겠다는 의사분도 계신데 오히려 제가 거절하고 있습니다. 빠진 앞니 사이가 복이 들어오는 길이에요”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맞아 얼마나 열심히 새벽기도까지 나오는지 그저 그 변화에 감사할 뿐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축복을 원합니다. 사람들은 환경이 좋아야 복을 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은 사실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복을 얻고 누리기 위해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마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그 마음이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그 곳은 결코 복된 곳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마음이 될 때 그 곳에 복이 충만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을 좇아 다닙니다. 복이 많아 보이는 곳을 기웃거립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을 좇아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이 많아 보이는 곳을 찾아가 그 곳에서 그 복을 얻고 누려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곳에서 복의 근원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래 전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함께 고향 땅을 떠나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조카 롯은 먼저 복이 많아 보이는 곳을 찾았습니다. 그때 소돔과 고모라는 분명 복이 많은 곳처럼 보였고, 그 곳에 정착하면 그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문제는 복을 좇아 다니며 얻고자 하는 그 욕망이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마음을 가로막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가 선 곳이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스스로가 복의 근원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신 곳에서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부르십니다. 마음부터 바뀌면 됩니다. 빠진 앞니를 부끄러워하기보다 그 자리가 복이 들어 오는 길로 감사하면 됩니다. 우리의 처한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기에 나 자신이 복의 근원이 되기를 다시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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