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이 몇몇 생물들을 가지고 이색 실험을 하였습니다. 첫번째로 추어로 불리는 미꾸라지를 어항에 넣은 뒤 그 상태를 관찰하였습니다. 미꾸라지는 비록 제한되어 있지만 어항의 이곳저곳을 아무런 장애없이 유형을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어항 중앙에 유리벽을 설치한 뒤 일정 기간동안 그 상태를 관찰하였는데, 미꾸라지는 투명한 유리벽을 인식하지 못하고 한동한 계속 그 벽에 부딪히다가 이윽고 그 유리벽의 존재를 깨닫고 더이상 유리벽에 부딪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리벽이 있어 부딪힘을 알고 더이상 그 근처에는 접근하지 않은 것입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어항 중앙에 있던 유리벽을 제거하였지만 어항 이곳저곳을 유형하던 미꾸라지는 더이상 그 벽이 있던 부근까지 접근하지 않으며 반으로 줄어든 공간에서 유형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두번째로 벼룩에 대하여 비슷한 실험을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3 밀리미터의 벼룩의 자기 몸의 100배나 되는 약 30 센티미터까지 높이 뛰어 오른다고 합니다. 이 벼룩을 약 20 센티미터 가량의 병에 넣은 뒤 그 상태를 관찰하였습니다. 당연히 벼룩은 그 병을 가볍게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병 구멍을 뚜껑으로 막은 뒤 일정기간 벼룩을 그속에 넣어 두었다가 뚜껑을 개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병을 가볍게 탈출하던 벼룩은 더이상 병 밖으로 나오지 않은채 병 높이정도까지만 뛰어 오릅니다. 그 이상 뛰어야 병 뚜껑에 부딪히게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신의 능력을 그 한계에 맞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처럼 스스로의 능력을 차폐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 중 오직 인간만은 하나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세 즉, 권능을 받았지만 올무에 갇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스스로 단정지으며 도전하지 않는 삶으로 전락해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란과 고통, 불안과 초조 속에 현실을 극복하기 보다는 쉽게 좌절하고 죄악된 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년된 권세를 소유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아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무한 능력을 지닌 믿음의 자녀임을 깨달을 때 그 능력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는 확신(빌3:14)을 가지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 세상 이상의 것을 바라 보며 끝까지 믿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해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믿는자에게 불가능 없는(막9.23) 참 진리의 능력과 축복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차원 영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지금 혹시 내 능력을 보이지 않는 스스로의 유리벽에 가두어 둔채 현실에 안주하고 계시지는 않은지요? 창조 주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마음을 품게 하십니다. 오묘막측(奧妙莫測)한 하나님의 뜻을 나약한 인간이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는가 하는 자결(自結)함 보다 우리가 원하는 바를 늘 바라보고 기도로 간구함에 구하는 바를 이미 받은 줄로 확신(막11:24)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모든것을 알고 계시는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맘을 품으므로서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 사차원 영성을 소유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