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기라고 하는 것은 어떤 큰 집의 재산과 살림을 맡아서 그 주인의 뜻대로 잘 관리해 가는 사람을 청지기라 합니다. 복된 청지기라 하는 것은 그 주인의 마음이 흡족하고 감읍할 정도로 주인이 생각했던 그 이상의 넘치는 성과로 인해 청지기의 지혜롭고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수고에 대하여 모든 것을 다 넘겨주고 싶을 정도의 모습을 갖춘 자를 복된 청지기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그 당시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는 수만 명에게, 또 우리에게 지금 이 말씀을 일러 주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애타고 안타까운 간절한 소원의 심정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는 이 세상이 죄악이 차고 넘쳤고 불의와 거짓이 판치면서 모든 영혼들이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서 분별력도 없고 스스로 자신을 가눌 대책도 없어서 이성 없는 짐승처럼 마귀가 사로잡아 끌어 가는대로 지옥 길에 끌리고 있었습니다. 목자 없는 양떼와 같이 유리방황하는 자기 백성들을 보시고 탄식하시며 우시는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시기 위하여 이적과 기사를 많이 베푸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고, 귀머거리를 잘 듣게 하며 벙어리가 말하게 하고 장님도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뛰어다니게 하셨습니다. 마귀가 만들어 놓은 너무나 열악한 절망과 비극적 상황에서 생기와 소망이 넘치는 무한한 가능성의 복음을 예수님 자신이 체험시켜 주시면서 하늘소망의 믿음으로 결실하도록 애타게 그들을 기대하시며 가꾸시던 중이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왜 자신이 불행히 살 수 밖에 없었던가를 깨달아서 서둘러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용서받으면서 성령을 선물로 받았을 때 소망에 의한 안도의 숨을 쉬고 이제는 믿음으로 무조건 순종하고 충성, 봉사하며 섬기는 목적으로 살겠다고 할 때 그 사람을 은혜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은혜 받은 사람의 영적 소원대로 살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가 되어 예수님도 이것을 상당히 염려하시면서 애타는 마음으로 말씀하신 것이 누가복음12:1~59까지의 교훈으로 대목대목 이제 우리가 짚어가야 할 것입니다.
먼저 누가복음12:1에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왔습니다. 예수님은 이 수만 명 중 한 사람도 실족하거나 낙오자 되어 지옥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하늘나라 알곡되어 들어갈 수 있기를 소원하셔서 조목조목 땅에 사는 날 동안의 생활신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셨습니다. 어떻게 믿음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위해 힘써야 하고 왜 기도생활이 필요하며, 전도 훈련이 필요하며, 하늘나라에 영원한 자기의 몫을 저축하는 지혜로 살아가는 것이 영적 소망임을 애타게 깨우쳐 주십니다.
1. 바리새인의 누룩
말씀을 듣고 그 맘 속에 다짐하고 돌아가서 세상 속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의 삶이 어떠한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잘 믿어야 하고 매일 기도하고 말씀 읽고 나아가 전도하고 목자와 교회, 선교를 위하여 교회적 사명에 열심히 기도해야 하고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들을 받들어 그리스도인이 되어지도록 봉사해야 된다는 생각과 말은 간절히 하는데 손발이 움직여지는 행동은 그와 반대로 나타나곤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외식(外飾)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겉으로만 잘 믿는 척 꾸미기를 힘쓰고 그의 중심의 소원과 행동반경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세상허욕을 쫓고 자기명분을 챙기고 이속에 집념하다 보니 신앙양심이 마비되고 신앙인격이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기에 하나님과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의 본체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신앙인들에게 “참 믿는 자를 보겠느냐”하시는 말씀은 진짜 인격적인 신앙, 영적으로 사는 신앙,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하늘소망을 목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그런 신자를 볼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제일 잘 믿고 섬기는 것처럼 했지만 실상은 자기들의 명분과 이속 챙기기에 이성을 잃었던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삼가라 하신 것입니다. 누룩이라는 것은 빵을 만들 때 부풀리게 하는 효소입니다. 이 누룩과 같이 그 바리새인들의 죽은 신앙의 행실을 바로 믿겠다는 사람들에게 쉽게 오염되고 전염될까봐 걱정하신 것입니다.
2. 인생의 근심걱정에 대한 교훈
너희가 무엇을 먹고 입으며 어느 곳에 살 것인가에 너무 집념하고 몸부림 치느라고 영적인 소망을 제쳐놓는 폐단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것은 하늘소망의 주인공 되는 자격을 얻었다는 보증과도 같은 것인데 왜 땅에서 집을 짓고 만년 터를 닦으려는 일들에 너무 집중하고 골몰하느라고 영적인 소망을 흐리거나 놓치는 일들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6절에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바 되지 아니하는도다”하십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은 그 생명을 책임지시고 보장하시기 위하여 먹을 것과 살아갈 수 있는 여건까지 다 해결해 주신다는 말씀이십니다. 7절에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하십니다. 영이 없는 참새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여건으로 살아가게 하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령 받은 사람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겠냐는 말씀입니다. 머리털까지 세실 정도로 세밀하게 우리를 보살피시는 하나님이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8-9절에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하셨습니다. 이에 우리는 사람들 앞에 전도해야 하는 사명을 깨달아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3. 물질에 대한 기대와 영적인 실패
13절에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하며 간청함을 들으시고 14-15절에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 하니라”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형이 혼자 차지했다고 불만에 찬 동생이 예수님보고 예수님의 권위로 자신의 형을 꾸짖어서 그 재산을 내게도 좀 나누어 주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을 때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시며 16-21절에 비유로 말씀해 주십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여기서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한 것은 영적인 생리와 육적인 생리에 대한 혼돈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질은 육적인 해결을 해 줄 수 있는 것이지 영적인 것에는 어떠한 해결도 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하십니다. 물질을 위하여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며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다고 하십니다.
24절에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하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분의 자녀가 되어 그분의 맘에 들도록 그분이 기대거실 만하고 사랑하실 만하고 그분에게 요긴한 존재로 쓰임받기를 소원하는 성숙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믿음생활을 잘 해 나가도록 합시다. 그러면 절대 여러분들에게 부족한 것이 없도록 하나님은 채워주실 분이십니다. 이 말씀이 확실히 믿어지는 사람은 이제부터라도 믿어지는 믿음으로 새 출발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것에서도 능치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26절). 27-28절에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십니다. 이 말씀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너희 사는 목적, 영적 소망을 하늘에 고정시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게 하시기 위해 31절에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하시며 수만 명이 모여 있는 무리를 보시며 32절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하십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모두 하나님 나라에 다 올라가기를 소원한다는 말씀이십니다. 그런즉 너희도 하늘나라 들어갈 그 소망을 목적으로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33-34)”하십니다.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그곳에 내 생각이 항상 머물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35절에 허리에 띠를 띠라는 것은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정신 차리고 일의 성과를 위한 준비 자세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4. 청지기로서의 사명감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는 말씀은 기름과 등불을 예비해서 진리의 빛을 밝히면서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예수님 재림을 맞이할 기다림의 자세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예수님을 금방 맞이할 수 있도록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름이 꽉 찬 등불을 준비해서 등불을 밝혀 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왔을 때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밝혀 문 앞에 서 있을 때 그 주인이 얼마나 기특(奇特)해 하실 것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밤 9시와 12시, 새벽 4시, 시간에 따라 그 주인의 감동은 다를 것입니다. 이렇듯 주인이 왔을 때 깨어있는 종들은 복이 있을 것이라고 43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35-40절까지는 모든 믿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은 이후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영적각성의 교훈으로 일러주신 말씀입니다.
41-48절까지는 하나님의 교회에 세워진 목자와 봉사하는 파수꾼들에게 일러주신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이같은 말씀을 들으면서 궁금증이 생겨 “선생님,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하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집 재산을 모두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는 그 주인의 원하는 대로 잘 관리하는 것이 선한 청지기이며 결국 복된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1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곧 지혜입니다.
예수님이 그 당시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는 수만 명에게, 또 우리에게 지금 이 말씀을 일러 주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애타고 안타까운 간절한 소원의 심정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는 이 세상이 죄악이 차고 넘쳤고 불의와 거짓이 판치면서 모든 영혼들이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서 분별력도 없고 스스로 자신을 가눌 대책도 없어서 이성 없는 짐승처럼 마귀가 사로잡아 끌어 가는대로 지옥 길에 끌리고 있었습니다. 목자 없는 양떼와 같이 유리방황하는 자기 백성들을 보시고 탄식하시며 우시는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시기 위하여 이적과 기사를 많이 베푸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고, 귀머거리를 잘 듣게 하며 벙어리가 말하게 하고 장님도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뛰어다니게 하셨습니다. 마귀가 만들어 놓은 너무나 열악한 절망과 비극적 상황에서 생기와 소망이 넘치는 무한한 가능성의 복음을 예수님 자신이 체험시켜 주시면서 하늘소망의 믿음으로 결실하도록 애타게 그들을 기대하시며 가꾸시던 중이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왜 자신이 불행히 살 수 밖에 없었던가를 깨달아서 서둘러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용서받으면서 성령을 선물로 받았을 때 소망에 의한 안도의 숨을 쉬고 이제는 믿음으로 무조건 순종하고 충성, 봉사하며 섬기는 목적으로 살겠다고 할 때 그 사람을 은혜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은혜 받은 사람의 영적 소원대로 살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가 되어 예수님도 이것을 상당히 염려하시면서 애타는 마음으로 말씀하신 것이 누가복음12:1~59까지의 교훈으로 대목대목 이제 우리가 짚어가야 할 것입니다.
먼저 누가복음12:1에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왔습니다. 예수님은 이 수만 명 중 한 사람도 실족하거나 낙오자 되어 지옥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하늘나라 알곡되어 들어갈 수 있기를 소원하셔서 조목조목 땅에 사는 날 동안의 생활신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셨습니다. 어떻게 믿음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위해 힘써야 하고 왜 기도생활이 필요하며, 전도 훈련이 필요하며, 하늘나라에 영원한 자기의 몫을 저축하는 지혜로 살아가는 것이 영적 소망임을 애타게 깨우쳐 주십니다.
1. 바리새인의 누룩
말씀을 듣고 그 맘 속에 다짐하고 돌아가서 세상 속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의 삶이 어떠한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잘 믿어야 하고 매일 기도하고 말씀 읽고 나아가 전도하고 목자와 교회, 선교를 위하여 교회적 사명에 열심히 기도해야 하고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들을 받들어 그리스도인이 되어지도록 봉사해야 된다는 생각과 말은 간절히 하는데 손발이 움직여지는 행동은 그와 반대로 나타나곤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외식(外飾)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겉으로만 잘 믿는 척 꾸미기를 힘쓰고 그의 중심의 소원과 행동반경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세상허욕을 쫓고 자기명분을 챙기고 이속에 집념하다 보니 신앙양심이 마비되고 신앙인격이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기에 하나님과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의 본체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신앙인들에게 “참 믿는 자를 보겠느냐”하시는 말씀은 진짜 인격적인 신앙, 영적으로 사는 신앙,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하늘소망을 목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그런 신자를 볼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제일 잘 믿고 섬기는 것처럼 했지만 실상은 자기들의 명분과 이속 챙기기에 이성을 잃었던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삼가라 하신 것입니다. 누룩이라는 것은 빵을 만들 때 부풀리게 하는 효소입니다. 이 누룩과 같이 그 바리새인들의 죽은 신앙의 행실을 바로 믿겠다는 사람들에게 쉽게 오염되고 전염될까봐 걱정하신 것입니다.
2. 인생의 근심걱정에 대한 교훈
너희가 무엇을 먹고 입으며 어느 곳에 살 것인가에 너무 집념하고 몸부림 치느라고 영적인 소망을 제쳐놓는 폐단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것은 하늘소망의 주인공 되는 자격을 얻었다는 보증과도 같은 것인데 왜 땅에서 집을 짓고 만년 터를 닦으려는 일들에 너무 집중하고 골몰하느라고 영적인 소망을 흐리거나 놓치는 일들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6절에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바 되지 아니하는도다”하십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은 그 생명을 책임지시고 보장하시기 위하여 먹을 것과 살아갈 수 있는 여건까지 다 해결해 주신다는 말씀이십니다. 7절에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하십니다. 영이 없는 참새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여건으로 살아가게 하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령 받은 사람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겠냐는 말씀입니다. 머리털까지 세실 정도로 세밀하게 우리를 보살피시는 하나님이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8-9절에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하셨습니다. 이에 우리는 사람들 앞에 전도해야 하는 사명을 깨달아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3. 물질에 대한 기대와 영적인 실패
13절에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하며 간청함을 들으시고 14-15절에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 하니라”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형이 혼자 차지했다고 불만에 찬 동생이 예수님보고 예수님의 권위로 자신의 형을 꾸짖어서 그 재산을 내게도 좀 나누어 주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을 때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시며 16-21절에 비유로 말씀해 주십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여기서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한 것은 영적인 생리와 육적인 생리에 대한 혼돈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질은 육적인 해결을 해 줄 수 있는 것이지 영적인 것에는 어떠한 해결도 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하십니다. 물질을 위하여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며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다고 하십니다.
24절에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하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분의 자녀가 되어 그분의 맘에 들도록 그분이 기대거실 만하고 사랑하실 만하고 그분에게 요긴한 존재로 쓰임받기를 소원하는 성숙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믿음생활을 잘 해 나가도록 합시다. 그러면 절대 여러분들에게 부족한 것이 없도록 하나님은 채워주실 분이십니다. 이 말씀이 확실히 믿어지는 사람은 이제부터라도 믿어지는 믿음으로 새 출발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것에서도 능치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26절). 27-28절에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십니다. 이 말씀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너희 사는 목적, 영적 소망을 하늘에 고정시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게 하시기 위해 31절에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하시며 수만 명이 모여 있는 무리를 보시며 32절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하십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모두 하나님 나라에 다 올라가기를 소원한다는 말씀이십니다. 그런즉 너희도 하늘나라 들어갈 그 소망을 목적으로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33-34)”하십니다.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그곳에 내 생각이 항상 머물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35절에 허리에 띠를 띠라는 것은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정신 차리고 일의 성과를 위한 준비 자세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4. 청지기로서의 사명감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는 말씀은 기름과 등불을 예비해서 진리의 빛을 밝히면서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예수님 재림을 맞이할 기다림의 자세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예수님을 금방 맞이할 수 있도록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름이 꽉 찬 등불을 준비해서 등불을 밝혀 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왔을 때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밝혀 문 앞에 서 있을 때 그 주인이 얼마나 기특(奇特)해 하실 것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밤 9시와 12시, 새벽 4시, 시간에 따라 그 주인의 감동은 다를 것입니다. 이렇듯 주인이 왔을 때 깨어있는 종들은 복이 있을 것이라고 43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35-40절까지는 모든 믿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은 이후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영적각성의 교훈으로 일러주신 말씀입니다.
41-48절까지는 하나님의 교회에 세워진 목자와 봉사하는 파수꾼들에게 일러주신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이같은 말씀을 들으면서 궁금증이 생겨 “선생님,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하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집 재산을 모두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는 그 주인의 원하는 대로 잘 관리하는 것이 선한 청지기이며 결국 복된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1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곧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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