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인기 있던 시절 예배도 못 드리고 공연을 다녔고 자아도취에 빠졌었다. 그리고 독불장군처럼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나만 떠들게 변하게 됐다. 이기주의적인 말만 하고 남에게 상처만 주다가 신앙을 갖게 됐을 때 이래선 안 된다고 깨닫고 복음송을 만들게 됐다. 혹시 여러분 중에 교만한 마음 이기적인 마음이 있다면 이 찬송을 들려주고 싶다”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 내밀기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주기 원했네 난 어찌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옹졸한 나의 마음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둘 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고 서 있네. 어찌할 수 없는 이 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
하청일 장로는 26일 뉴욕초원교회(담임 박시훈 목사)를 찾아 간증집회를 가졌다. 하청일 장로는 60년대 가수 서수남과 콤비를 이루며 ‘동물농장’ 등 경쾌한 음악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가수다. 그는 10여 년 전 한국에서의 모든 사업을 접고 미국으로 이민한 이후 미주 전역과 한국에서 복음과 노래를 전하는 일을 위해 전심을 쏟고 있다.
이날 고어헤드선교회(대표 이상조 목사) 주최로 열린 간증 집회에서 하청일 장로는 무엇보다 성도들 안에 겸손한 마음을 가질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비울 때 임하는 평안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힘주어 강조했다. 하청일 장로는 이날 집회 내내 은혜로운 찬양과 함께 데뷔곡 ‘동물농장’부터 시작해 ‘겨울바람’, ‘팔도유람’ 등 히트곡들과 동요를 부르며 참석한 이들을 추억 속으로 이끌었다.
하청일 장로는 “우리 크리스천 중에서도 자존심을 내세우고 서로 다투고 관계가 안 좋은 사람들이 있다”며 “믿음의 식구들은 하나님을 알기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화해할 수 있는 것이 크리스천”이라고 강조했다.
하청일 장로는 데뷔초의 한국 가요계의 분위기도 전했다. 69년도에 데뷔할 때 중창단이 많았는데 팀이 아닌 개인의 이름으로 활동하자고 해서 서수남 하청일로 나갔다. 최장신 가수 서수남과 보통 키인 저는 키다리와 꺼꾸리로 활동하면서 어린이에서부터 노인들까지 전 연령에 걸쳐 큰 인기를 얻었다. 윤복희 씨, 윤항기 씨 등 연예인들이 미8군에서 나와 방송으로 히트 칠 때 데뷔했다. 세시봉은 하청일 장로 이후 세대다. 그 때 전도활동을 많이 했고 이후 연예인들 중에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다른 가수와 달리 동요로 많은 인기를 얻었던 하청일 장로는 요즘 어린이들이 동요를 부르지 않는 것에 대해 크게 안타까워했다. 하청일 장로는 “복음송과 동요들을 아이들이 많이 불러야 한다”며 “동요는 마음을 맑게 하고 복음송은 어린이들을 신앙의 길로 이끌게 된다”고 말했다.
하청일 장로는 80년대 동요 가요대상에서 있었던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당시 이 상은 전국 초등학교 교사들의 투표로 선정됐는데 98%가 서수남 하청일을 대상으로 추천을 대상을 타게 됐다. 당시 동요대상의 상금이 컸는데 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주일날 교회에 가서 모두 십일조와 감사헌금으로 냈다. 처음에는 갈등도 많았지만 그 이후 그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헌금 후 일주일 뒤 한 광고회사로부터 그에게 연락이 왔고 그가 유명 펌프회사의 전속모델임에도 펌프회사 사장은 흔쾌히 다른 광고를 허락했다. 하청일 장로는 ‘과수원길’로 헌금을 냈더니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광고회사 문을 열었더니 그 시대 내노라는 이주일, 곽영일, 신성일 씨가 모여 있었다. 다 이름이 일자 돌림이었다. 그 광고는 바로 ‘국제전화 001’이었다. 대한민국 동요대상 상금의 7배를 얻게 됐다. 하청일 장로는 “그 다음에도 계속해서 일이 들어왔다. 그런 기적이 많이 일어났다”고 회상했다.
큰 인기를 얻고 한국에서도 큰 사업을 일으켜 승승장구 하던 하청일 장로에게 90년대 말 인생의 큰 좌절을 맛보게 된다. 바로 IMF로 인해 그가 일으킨 스포츠 관련 사업이 하루 아침에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신앙심이 강하지 않던 그에게 닥친 IMF라는 청천벽력 같은 재앙은 그를 좌절하게 하고 절망하게 했다.
그 충격으로 하청일 장로는 한국을 떠나 미국에 머물게 되지만 충격의 여파로 고혈압과 당뇨와 심장병을 얻어 병원에서도 생명에 지장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청일 장로는 그 당시 원망이 많았다고 했다. 그나마 예배에 참석하려 노렸했고 십일조를 잘 했던 연예인인데 이런 고통을 당하게 된 것에 대해 이해를 못했다고 했다. 죄가 없는데 IMF로 인해 2~30년 쌓아올린 비즈니스를 왜 무너뜨리시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청일 장로는 성경에서 해답을 얻었다고 한다. 바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구절이었다. 이 구절이 마음 속으로 들어온 이후 번민하고 갈등하던 마음은 평온해지고 지난 날의 은혜를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는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임했다고 간증했다. 하청일 장로는 “역시 사람은 마음이 편해야 한다. 이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었고 또 체험했고 나를 힘들게 했던 병들이 약 한번 먹지 않고 깨끗이 낫게 됐다”고 말했다.
하청일 장로는 “신앙을 알고 찬양간증을 해 주시게 하신 하나님께 빚이 많다. 구원해 주시고 이렇게 은혜를 나눌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며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활동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함께 하신다”고 강조했다. 하청일 장로는 찬양을 참석한 이들과 함께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고어헤드선교회 이상조 목사는 “한국이 잘 사는 것 같지만 여전히 외로움 속에서 사랑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이 있다. 진짜 엄마에게 한 번만 엄마라고 불러 봤으면 좋겠다는 이들”이라며 “한 달 10불이 비록 그 어린이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주는 것은 아니지만 희망을 주고 힘을 주는 놀라운 힘이 숨어있다”며 어린이 돕기 사업에 관심을 가져 줄 것을 호소했다.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 내밀기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주기 원했네 난 어찌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옹졸한 나의 마음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둘 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고 서 있네. 어찌할 수 없는 이 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
하청일 장로는 26일 뉴욕초원교회(담임 박시훈 목사)를 찾아 간증집회를 가졌다. 하청일 장로는 60년대 가수 서수남과 콤비를 이루며 ‘동물농장’ 등 경쾌한 음악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가수다. 그는 10여 년 전 한국에서의 모든 사업을 접고 미국으로 이민한 이후 미주 전역과 한국에서 복음과 노래를 전하는 일을 위해 전심을 쏟고 있다.
이날 고어헤드선교회(대표 이상조 목사) 주최로 열린 간증 집회에서 하청일 장로는 무엇보다 성도들 안에 겸손한 마음을 가질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비울 때 임하는 평안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힘주어 강조했다. 하청일 장로는 이날 집회 내내 은혜로운 찬양과 함께 데뷔곡 ‘동물농장’부터 시작해 ‘겨울바람’, ‘팔도유람’ 등 히트곡들과 동요를 부르며 참석한 이들을 추억 속으로 이끌었다.
하청일 장로는 “우리 크리스천 중에서도 자존심을 내세우고 서로 다투고 관계가 안 좋은 사람들이 있다”며 “믿음의 식구들은 하나님을 알기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화해할 수 있는 것이 크리스천”이라고 강조했다.
하청일 장로는 데뷔초의 한국 가요계의 분위기도 전했다. 69년도에 데뷔할 때 중창단이 많았는데 팀이 아닌 개인의 이름으로 활동하자고 해서 서수남 하청일로 나갔다. 최장신 가수 서수남과 보통 키인 저는 키다리와 꺼꾸리로 활동하면서 어린이에서부터 노인들까지 전 연령에 걸쳐 큰 인기를 얻었다. 윤복희 씨, 윤항기 씨 등 연예인들이 미8군에서 나와 방송으로 히트 칠 때 데뷔했다. 세시봉은 하청일 장로 이후 세대다. 그 때 전도활동을 많이 했고 이후 연예인들 중에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하청일 장로는 80년대 동요 가요대상에서 있었던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당시 이 상은 전국 초등학교 교사들의 투표로 선정됐는데 98%가 서수남 하청일을 대상으로 추천을 대상을 타게 됐다. 당시 동요대상의 상금이 컸는데 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주일날 교회에 가서 모두 십일조와 감사헌금으로 냈다. 처음에는 갈등도 많았지만 그 이후 그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헌금 후 일주일 뒤 한 광고회사로부터 그에게 연락이 왔고 그가 유명 펌프회사의 전속모델임에도 펌프회사 사장은 흔쾌히 다른 광고를 허락했다. 하청일 장로는 ‘과수원길’로 헌금을 냈더니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광고회사 문을 열었더니 그 시대 내노라는 이주일, 곽영일, 신성일 씨가 모여 있었다. 다 이름이 일자 돌림이었다. 그 광고는 바로 ‘국제전화 001’이었다. 대한민국 동요대상 상금의 7배를 얻게 됐다. 하청일 장로는 “그 다음에도 계속해서 일이 들어왔다. 그런 기적이 많이 일어났다”고 회상했다.
큰 인기를 얻고 한국에서도 큰 사업을 일으켜 승승장구 하던 하청일 장로에게 90년대 말 인생의 큰 좌절을 맛보게 된다. 바로 IMF로 인해 그가 일으킨 스포츠 관련 사업이 하루 아침에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신앙심이 강하지 않던 그에게 닥친 IMF라는 청천벽력 같은 재앙은 그를 좌절하게 하고 절망하게 했다.
그 충격으로 하청일 장로는 한국을 떠나 미국에 머물게 되지만 충격의 여파로 고혈압과 당뇨와 심장병을 얻어 병원에서도 생명에 지장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청일 장로는 그 당시 원망이 많았다고 했다. 그나마 예배에 참석하려 노렸했고 십일조를 잘 했던 연예인인데 이런 고통을 당하게 된 것에 대해 이해를 못했다고 했다. 죄가 없는데 IMF로 인해 2~30년 쌓아올린 비즈니스를 왜 무너뜨리시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청일 장로는 성경에서 해답을 얻었다고 한다. 바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구절이었다. 이 구절이 마음 속으로 들어온 이후 번민하고 갈등하던 마음은 평온해지고 지난 날의 은혜를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는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임했다고 간증했다. 하청일 장로는 “역시 사람은 마음이 편해야 한다. 이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었고 또 체험했고 나를 힘들게 했던 병들이 약 한번 먹지 않고 깨끗이 낫게 됐다”고 말했다.
하청일 장로는 “신앙을 알고 찬양간증을 해 주시게 하신 하나님께 빚이 많다. 구원해 주시고 이렇게 은혜를 나눌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며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활동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함께 하신다”고 강조했다. 하청일 장로는 찬양을 참석한 이들과 함께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고어헤드선교회 이상조 목사는 “한국이 잘 사는 것 같지만 여전히 외로움 속에서 사랑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이 있다. 진짜 엄마에게 한 번만 엄마라고 불러 봤으면 좋겠다는 이들”이라며 “한 달 10불이 비록 그 어린이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주는 것은 아니지만 희망을 주고 힘을 주는 놀라운 힘이 숨어있다”며 어린이 돕기 사업에 관심을 가져 줄 것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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