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그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2장과 3장 1절과는 시간상 30년이라는 간격이 있다. 주님의 유아기부터 나와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사역하실 때까지는 30년 가량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한 기록은 누가복음 2장에 오직 한 번, 12살 때에 성전에 올라가셨던 사건의 기록밖에는 없다. 그리고 이제 주님이 공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실 때부터의 기록이 있다. 30년이란 시간 동안 주님은 오직 이 때를 위해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출생하시고 자라나셨다. 하나님과 사람의 눈에 사랑스럽게 자라나셨다(눅 2:52).

그분의 인생 30년 동안 그 분은 다른 사람과 똑같이 그렇게 가정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성실하게 살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주님의 30세 때까지의 인생은 하나의 준비였다. 우리는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삶 안에 오셔서 정상적인 인간으로 자라시고 육신의 부모를 섬기시며 가난한 집 안에서의 인간의 삶의 비애와 간고를 다 겪으신 것이다. 이제 30세가 되었을 때 비로소 주님은 나오셔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그 30년 동안 예수님은 가정에서 목수인 아버지 요셉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또 많은 가정사를 돌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한 번도 죄나 불순종이나 악한 말을 하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분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라고 성경은 기록한다(고후 5:21).

그런데 이제 그 분이 30세가 되었을 때 그 분보다 6개월 먼저 출생한 세례 요한이 선주자(a forerunner)로서 광야에서 전파를 시작했다. 구약에서 그리스도가 오실 때 선주자의 일을 하는 선지자가 있을 것이라는 말도 이미 예언이 되어 있다. 구약 성경의 맨 마지막 말라기의 마지막 구절은 이 선주자의 예언으로 끝이 난다. 그러니 구약 성경의 끝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문제로 결론을 맺는다(말 4:5-6). 신약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을 맺는다(계 20:20). 이는 신약에 사는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중심이 맞추어져 있어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어쨌든 구약에서 예언된 바 있는 선주자(엘리야의 영과 능력으로 온 선지자)로서 요한이 보내심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와서 엘리야와 같은 복장을 입고 엘리야가 있었던 것과 같은 광야에서 사역을 시작한 것이다(왕하 1:7-8). 교회 역사에서도 어떠한 새로운 시작이 일어나는 곳은 광야 같은 곳이다.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기에 역사가 일어날 만한 그런 곳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역사는 일어난다.

요한 웨슬레가 일어났을 때 그들은 노방에서 전도를 했고 또 산골짜기에서도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 당시 그들은 그로 말미암아 영국 성공회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룩한 장소(소위 예배당과 같은 곳) 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야말로 광야에서 전파를 시작했던 것이다.

2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여기서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전파를 시작했는데 그 전파의 주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이다. 통상적으로 회개란 말은 곡해되고 있다. 그저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한 잘못을 통회한다든지, 죄를 고백하는 행위라든지 하는 말로 이해를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나온 단어인 회개는 그런 뜻이 아니다. 첫째 이 회개라는 말은 ‘생각을 바꾼다’는 뜻을 갖고 있다(메타노이아, 헬). 영어로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repent’로서 다시 생각한다는 뜻이다. 다만 애통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애통하고 슬퍼하지만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하나도 회개가 아니다.

그런데 왜 요한은 회개를 해야 한다고 선포하는가? 천국이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천국이 왔다고 하지 않고 천국이 가까웠다(has drawn near)고 했다. 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아직 천국은 오지 않았다. 다만 가까이 왔다. 이 천국에 대해서(Kingdom of Heavens), 오늘날까지 많은 학자들 사이에 생각이 달랐고 해석이 달랐다. 그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천국 하면 죽으면 가는 천당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여기서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는 말이 곧 오시는 예수님을 믿고 천당 가라고 외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학자들은 여기서 말하는 천국이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데는 대부분 공감을 한다. 천국은 주님의 초림으로 이루어지는 정신적인 천국과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영원한 천국을 구분하여, 대부분 여기서 요한이 말하는 천국을 정신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스코필드(C.I. Scofield)같은 학자는 주 예수님이 천국을 가지고 오셨지만, 이 땅에 주님이 왕국을 세우러 오셨지만, 유대인들이 배척했기 때문에 왕국은 재림 시까지 보류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런 관점은 일리 있는 면이 있지만 성경적으로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다고 판단된다. 우리가 성경을 주의깊게 읽어보고 주님으로부터 빛을 얻는다면 이 천국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우선 천국(Kingdom of Heavens)이란 용어부터 그 뜻을 보겠다. 성경을 자세히 공부하면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는 동의어로 쓰이기도 하고 분별이 있게도 쓰여 졌다. 그러므로 천국을 무조건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마태 21장 43절에 의하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되어 있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갖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갖고 있었다가 주 예수님을 배척함으로 빼앗겼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세례 요한이 한 말은 이미 그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 나라를 가까이 왔다고 말하는 것이 된다. 물론 마가복음에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한다(막 1:15). 그렇다고 해서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한 동의어는 아니다. 더욱 정확하게 가까이 온 실체는 마태복음에서 자주 씌여진 용어인 ‘천국’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마가복음은 천국을 하나님의 나라로 보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말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서울특별시를 대한민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서울특별시가 곧 대한민국인 것은 아니다. 때로 서울특별시를 대한민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대한민국과 같이 범위가 더 크고 천국은 서울특별시처럼 범위가 작다.

마태 16장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고 하였으며, 천국은 비로소 세례 요한의 때부터 침노를 당한다고 기록되어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는 이미 열조시대에도 이미 거기에 있었으며, 광야의 이스라엘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러나 그들이 메시야를 배척하였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고 열매 맺는 백성인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게 된 것이다.

비로소 주님이 오셨을 때 주님의 입에서 천국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오고(마 5-7장, 13장, 24장 등), 천국의 비밀을 아는 문제, 천국을 상급으로 받는 문제 등을 중점적으로 가르침 받게 된 것이다. 이는 천국이라는 것이 전에는 없었던 어떤 특별한 영역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천국이란 무엇인가? 문자적으로 천국은 하늘들의 다스림을 뜻한다. ‘Kingdom of Heavens’에서 왕국(kingdom)은 왕의 다스리는 영역을 뜻한다. 왕의 통치를 받는 영역을 뜻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나라는 외적인 부분 안에서 이루어졌었지만 천국을 말할 때는 이보다 내적인 생명으로 인한 다스림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의 비유의 첫 번째가 씨 뿌리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주 예수님이 사람의 마음 속에 생명의 씨를 뿌리심으로 비로소 이 땅에는 속에서부터 하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그분은 이 땅에 이렇게 이루실 천국을 가지고 오신 왕이다. 마태복음 5장부터 주 예수님은 이 땅에 있게 될 천국 백성들의 본질을 다루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천국 백성들의 특징인가? 그들은 오리(五里)를 가자하면 십리(十里)를 가고, 원수를 사랑하며, 송사하여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도 내어주는 사람들이다.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는 사람들이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온유한 사람들이다. 모두가 다 내적인 심령의 변화를 통한 천국이다. 다만 외적인 형식이나 법령이나 규례를 지킴으로 인한 통치가 아니다. 내적인 생명의 다스림과 순종에 의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니 오늘 천국의 백성들은 이 땅에 먼저 존재하게 된다.

자, 그렇다면 요한의 때에는 천국이 가까이 왔지 거기에 없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비로소 베드로가 열쇠로 천국을 열 때 이 땅에 천국이 시작된다. 그에게 천국 열쇠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 천국이 언제 시작되었는가? 바로 성령이 강림하여 성령 충만을 얻은 오순절 때이며 교회와 함께 시작된 것이다. 그날 베드로가 일어나서 말씀을 선포할 때 성령이 강림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이 시대는 천국의 내적인 실제(reality)가 있을 뿐 나타남과 실현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영광 가운데 임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의 천국의 실제와 그날의 나타남은 관계가 있고 그 성분과 본질은 동일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천국이란 하늘의 왕, 하늘의 주권이 이 땅을 다스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땅에 하늘의 통치가 임하는 그것을 천국(天國)이라고 한다. 이것을 주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전까지 선주자인 세례 요한이 전파하고 있었다. 세례 요한이 전파했고 이제 4장에 가면 주 예수님이 똑같은 것을 전파하신다. 당시 이 땅에는 아직 하늘의 다스림이 통행되는 영역이 없었다. 4장 16절에서는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라고 말한다. 주님이 빛으로 오셨고, 그분은 이 땅에 천국의 씨앗을 뿌리고 계셨다.

앞으로 우리는 마태복음 13장에서 천국의 일곱 가지 비유를 보게 된다. 그것은 씨 뿌리는 것으로 비유가 된다. 주 예수님은 씨를 뿌리는 분이시다. 또한 그 씨 자체도 주 예수님 자신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씨를 뿌리는 분도 되고 씨 자체도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분이 씨 뿌리는 자로서 그분 자신을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신다. 이와 같이 천국은 주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셔서 믿는 자에게 생명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때 믿는 자들 속에 천국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이 땅에 있는 그분의 백성들을 다스리는가? 그분 자신을 생명으로 믿는 자들 속에 넣어주셔서, 즉 사람들 속에 그분의 생명의 씨를 뿌리셔서 바깥에서부터 다스리는 게 아니라 속에서부터 다스리신다. 이렇게 천국은 이 땅에서 시작이 된다.

하나님은 이 땅을 매우 관심하신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며”, 왕국이 ‘이 땅에’ 임하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하늘 왕국이 이 땅에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그 천국이 이 땅에 임하는가?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계시를 보았을 때 주님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시고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라고 하셨다.

그래서 여기에서 교회라고 하는 말과 천국이라는 말은 서로 바꿔 쓸 수 있는 말처럼 쓰였다.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질 때 천국이 있게 된다. 그래서 정당한 정상적인 교회는 이 땅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교회이다. 그렇다고 천국과 교회가 완전 동의어라는 뜻이 아니다.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처럼 바꾸어 쓸 수 있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이렇게 하늘에 속한 다스림이 행사되는 무리를 원하신다. 그것이 이 시대에 하나님이 건축하시는 교회인 것이다. 물론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왕국의 참된 실현이 있게 된다. 그러나 그 왕국은 그때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이 땅에 산출된 때부터 본질적인 왕국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마태복음에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이 천국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믿어서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왕권의 다스림을 받도록 이 복음을 영접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나는 이제 멸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영생을 얻었다’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마태복음 3장을 읽을 때 왜 회개를 해야 하는가? 그것은 참된 하늘들의 다스림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회개와 주님을 영접함은 왕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분께 완전히 순종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래야 참된 회개이다.

우리는 우리가 주 예수를 믿었을 때 천국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해 주 예수님을 받아들인 것이다. 과거에는 우리가 하늘 왕께 순종하지 않았다. 우리 마음대로 살았다. 우리 육체의 원하는대로 행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부터 내 뜻대로 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왕으로 오신 그분의 통치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천국이 오늘 교회와 함께 시작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 생활 안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의 통치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 분의 다스림이 이 땅에서, 적어도 교회 안에서 만큼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 때 교회는 본질적으로 천국의 범위에 포함된다.

-유동근 목사는...

유 목사는 대전고와 충남대학교·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美 퍼시픽 신학대학원(Th.M., D.D), 워싱턴 신학대학원(Th.D) 등에서 학위를 받았다.

그는 온누리선교교회 담임목사, 美 퍼시픽 신학교 교수, 국제선교 신학, 신학연구원(IMC) 학장, 예장 국제선교연합총회 총회장, 글로벌부흥협의회 총재 등을 맡고 있다.

현재까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 요한복음,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등 신약 전권을 강해해 책으로 펴냈고 창세기, 모세5경, 여호수아·룻기, 사무엘상하, 전도서·아가서, 이사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등도 출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