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을 하지 않은 순수한 얼굴을 “쌩얼”이라고 부릅니다. 원래는 “민낯”이라는 말인데, 요즘 젊은이들이 부르기 쉽게 만들어낸 신조어(新造語)입니다. 쌩얼이 예뻐야 진짜 미인이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가공할 만한 “화장술”의 힘(?)과 뼈를 깎고 이물질을 피부 속에 삽입하는 고도의 “성형술” 덕분에 쌩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기형적인 얼굴이나 불의의 사고로 불구가 된 분들만 이 성형 수술을 받았는데, 이제는 좀 더 예뻐지려는 욕구를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 주저없이 감행하는 의료상품이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많은 병원에서 “휴가철 특별 세일”같은 성형수술 패키지를 판매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쌍커풀 수술을 하거나 코를 조금 높이고 낮추 것은 “성형수술”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턱을 잘라 붙이거나 얼굴과 가슴 전체를 손댈 때에야 비로서 그런 거창한 말을 사용합니다.

“화장”의 힘도 대단해서 “송장”같이 못생긴 사람에게 화장 전문가가 달라 들어 잠깐동안 “치장”을 해주면 “환장”하게 예쁜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덕분에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원래의 얼굴이 어떠 했는지 모를 정도로 “변장”을 하고 삽니다. 몇 달 전 어떤 여성 인기 배우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자신이 양악수술(턱수술)을 받고 전신 지방 흡입수술을 받았다고 시청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평소 청순가련형의 이미지로 “국민 여배우”라는 찬사를 받았던 그녀의 외모가 실제로는 “칼과 끌”로 만들어진 성형인간이었다는 사실이 국민들에게 묘한 배신감을 낳았던 것 같습니다. “무서워서 병원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감쪽같이 내숭을 떤 것입니다. 순수함과 솔직함이 메마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옛날 로마 시대에는 배우들이 연극이나 드라마를 할 때 “가면”(Mask)을 썼습니다. 이 가면을 “페르소나”(Persona)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나라의 판소리처럼 탈을 쓰고 연기를 했던 것입니다. 일단 이 페르소나를 쓰게 되면 그 사람의 모든 모습은 철저하게 뒤로 숨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가면이 상징하는 인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아마도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모습이 그렇게도 매력적이었나 봅니다. 이 페르소나(Persona)에서 “사람”을 뜻하는 “Person”과 인격을 뜻하는 “Personality”가 나왔습니다. 가면을 두 개 가지고 있으면 이중 인격자가 되고, 여러 개 가지고 있으면 다중 인격자가 됩니다. 그리고 병든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으면 “인격 장애자”가 됩니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어떤 가면을 쓰느냐?”가 나를 결정합니다. 그러니 잘 골라 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 많은 페르소나를 바꿔씁니다. 조금 전까지 화가 나서 주먹으로 책상을 치다가도 중요한 사람이 지나가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방긋” 웃습니다. “접대용 얼굴”과 “생활 속의 얼굴”이 다르고, 사람들과 있을 때의 얼굴과 혼자 있을 때의 얼굴이 천양지판으로 다릅니다. 얼굴이 일곱 가지로 변한다는 “칠면조”(七面鳥)도 우리를 보면 단번에 “형님!”하면서 고개를 숙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더 쌩얼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릅니다. 얼굴은 “얼”이 담겨 있는 “굴”이라고 합니다. 얼굴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보여주는 인생 성적표라고 합니다. 오늘 거울 앞에서 가식으로 점철된 화장을 지우고 숨어 있는 “쌩얼과의 만남”을 가져 보십시오.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