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새벽예배. 한국교회 부흥의 첫 번째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척교회부터 대형교회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의 신앙성숙과 더불어 부흥을 소망하는 곳에는 새벽예배의 열기가 더욱 뜨겁다.

이에 기독일보는 남가주 한인교회들의 새벽 설교를 집중 조명하여 새벽제단에서만 내리는 특별한 은혜를 나누고 개교회를 넘어 지역과 미주 전역의 부흥을 함께 소망하고자 한다.

에스겔 20:23 또 내가 내 손을 들어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을 이방인 중에 흩으며 여러 민족 가운데에 헤치리라 하였나니
20:24 이는 그들이 나의 규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율례를 멸시하며 내 안식일을 더럽히고 눈으로 그들의 조상들의 우상들을 사모함이며
20:25 또 내가 그들에게 선하지 못한 율례와 능히 지키지 못할 규례를 주었고
20:26 그들이 장자를 다 화제로 드리는 그 예물로 내가 그들을 더럽혔음은 그들을 멸망하게 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였음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멸망시키면 끝입니다. 그러나 멸망하게 해서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려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우리를 쳐서 멸망하게 해서라도”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2011년도 한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항상 축구에 시작 5분, 끝나기 5분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때 많은 일들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체험적으로도, 성경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끝까지 잘했더라도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포기하지 말고 비록 상황은 역전의 가능성이 없어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역전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열매가 있고 없음이 아니라, 듣던지 아니 듣던지 패역한 백성에게 전하는 일입니다. 당연히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린 나를 보내신 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능히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 의지해야 합니다. 우린 전능자 앞에 서 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나를 봐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우리를 쓰십니다.

우리는 수치와 억울함과 분노 가운데서 처음엔 거부하고 발악합니다. 나는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강권적인 성령의 역사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신앙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 방법으로 절대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항상 망원경적인 방법과 현미경적인 방법을 양면으로 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공의의,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매맞고 혼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멸망시켜서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려고 하시는 그런 안타까운 하나님의 심령을 봐야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이스라엘 역사 뿐 아니라 성경의 역사 가운데서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인간 편에서, 이스라엘 편에서 보면 하나님에 대한 패역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성경의 사건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은 참 정당하시고 은혜로우심을 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참 불의합니다. 배은망덕하고 죄송한 것입니다. 에스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창피해서 얼굴을 가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민 가운데 하나님의 선민으로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공로가 많아서가 아니요, 다른 민족보다 탁월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심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선택할만한 조건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안에 그런 조건이 있습니까? 이런 원리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상황과 조건에 관계없이 신실하고 변함없고 상처를 주지도 않고 상처를 받지 않는 자리까지 우리 신앙이 자라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수많은 영적인 병자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핵심된 리더십이 건강하고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들을 인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와서 일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돌들로도 소리 지르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없다고 일이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없으면 일이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하고 성숙하고 품위있는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냐가 중요합니다. 일을 많이 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기까지, 그리스도의 신부를 닮게 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인 동시에 패역의 역사입니다. 심판을 말씀하시면서도 은혜를 말씀하십니다. 자식이 장성하면 이제 부모의 일을 해야 합니다. 이만큼 키워 놓았으면 할만한데 여전히 하나님이 나서셔야 합니다. 말이 됩니까? 하나님께서 마치 우리 때문에 증인을 서시는 것입니다.

20장에 보면 하나님이 맹세를 하십니다.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리라라고 하십니다. 누가 지금 누구에게 맹세하는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다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랬다 저랬다 하십니까? 그렇게 만든 범인은 누구입니까? 누구 때문에 그렇게 말을 바꾸시는 것입니까?

전 피조물 앞에 창조자가 수모를 당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들이 나의 규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율례를 멸시하며”라고 했습니다. 1세들은 실패했습니다. 패역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패역한 그들을 때리는 것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판은 하루 아침에 된 것이 아님을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심판의 역사 가운데 회복의 예언도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악인들에 대한 심판은 심판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은 징계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오는 심판 병과 아픔 질병은 심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입니다. 다시 정화시키고 성화시켜서 하나님의 거룩한 구속 사역의 주역으로 쓰시기 위함입니다. 진노 중에서도 하나님의 풍성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 중에 절망하거나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징계하기 위한 도구로 누구를 사용하십니까? 바벨론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우상숭배하는 자들입니다. 매를 맞을 때, 갈데아 군대가 쳐들어 와서 잔인하게 도륙합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 어찜입니까? 하나님의 매를 맞는 건 맞겠는데 왜 어찌 우리보다 악한 자를 쓰십니까?”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징계하시고 훈계하시는데 악인들을 사용하십니다.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 입장에서는 참으로 힘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민인데 지옥의 불소시개 정도로 여기는 이방인에게 환란과 수치를 당하니 기가 막힙니다. 그러니 선민이라 칭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자존심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론 그러십니다. 차라리 나보다 의로운 사람에게 혼나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 마음조차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정금처럼 만드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악인을 통해 나를 심판하실 때 이것이 하나님의 징계에서 나를 더 단련시키기 위해서 오는 칼이면 인내해야 합니다. 주님을 생각하고 믿음으로 견뎌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면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진노의 몽둥이를 드십니다. 여러분을 수술하시기 위해서 악인들을 통해서 칼을 드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칼날입니다. 징계입니다. 징계의 목적이 끝나는 순간 진노의 몽둥이는 불살라 버리십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진노의 칼이 되어선 안됩니다. 징계의 몽둥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성화시키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의로운 자가 악인의 칼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의 거울입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바로 하면 얼마든지 과거를 역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 성탄 사건입니다. 말씀이 육신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제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너희의 과거를 내가 담당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린 주님을 닮아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심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자아가 부패하고 완악합니다. 그분의 역사를 한마디로 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지금까지 패역했다고 해도 그것은 과거였습니다. 그것은 사라졌습니다.

그 백성을 멸망시켜서라도 여호와로 알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