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선교지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불편한 것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언어, 문화, 음식, 숙박시설 등 여러가지이다. 멕시코 유카탄의 선교지를 방문할 때마다 통역인이 내 곁에 없으면 곧 불안해진다. 돈이 있어도 음식 하나 제대로 사 먹기가 어렵고, 안내 메시지를 알아들을 수 없어 전화 사용도 매우 힘들다. 소개받는 사람마다 환영한다고 끌어 안으며 뺨을 갖다 대는데 미국 생활을 오래한 나도 적응이 쉽지 않다. 전에 현지인 세미나를 마치고 참석한 100여명의 목회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는데, 다 끝나고 나니 뺨이 뻘겋고 쓰라렸던 경험이 있다. 수염이 거칠은 여러 사람들과 뺨을 비벼댔던 후유증이었다.
이번에도 재미있는 경험을 하였다. 늘 느꼈던 것이지만 유카탄의 메리다시에서 길을 찾아 다니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스패니쉬에 능통한 이 목사님이 운전을 하였기에 언제든지 지나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 가면서 찾아 다녔다. 그런데 모두가 얼마나 친절한지 차를 멈추고 길을 물으면 거의 다 거절하지 않고 길을 가르쳐 주었다. 바삐 걸어가던 사람도 발걸음을 멈추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자신있게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곳을 찾아 가면서도 여러 사람에게 물어서 찾아다녔다. 어떤 경우에는 스패니쉬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봐도 (손짓 고개짓을 보아 짐작하건데) 길을 가르쳐 준 세 사람이 다 틀리게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결국 세 사람 중에 누구 말을 믿을 것이냐 하는 것은 길을 모르고 찾아가는 우리가 알아서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은 가르쳐 주는 사람마다 친절하게 그리고 자신있게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그들의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낯선 사람에게도 최선의 친절을 베푸는 것이 그들의 예의인 것이다. 그래서 잘 알지 못하면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설명해 주는 것이다. 정확히 알려 주느냐 하는 것 이전에 친절을 베푸는 것이 중요하다. 설명을 듣고 제대로 찾아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고,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자신이 아는 범주 내에서 친절히 설명해 주면 그것으로 자신의 몫을 다 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것도 미덕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시간에 쫓기면서 운전하는 우리들로서는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정확히 모르면 잘 모른다고 할 것이지….
문득 우리 크리스천의 삶도 이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우리 주변에 길을 잃고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모양으로 친절은 베풀지만 정작 정확한 방향과 길은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양한 구제, 섬김 및 사회봉사로 이웃과 사회에 많은 친절을 베풀면서도 정작 누구에게나 필요한 구원의 길, 참 생명의 길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면 여전히 주변사람들은 방황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찾아 오신 주님은 병든 자들을 고쳐 주셨고, 굶주린 자들을 먹여 주셨으며, 소외된 자들과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그러나 주님은 바른 길을 가르쳐 주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이웃과의 하루 행사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단지 사랑과 친절을 베풀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이상으로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정확하게 제시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재미있는 경험을 하였다. 늘 느꼈던 것이지만 유카탄의 메리다시에서 길을 찾아 다니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스패니쉬에 능통한 이 목사님이 운전을 하였기에 언제든지 지나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 가면서 찾아 다녔다. 그런데 모두가 얼마나 친절한지 차를 멈추고 길을 물으면 거의 다 거절하지 않고 길을 가르쳐 주었다. 바삐 걸어가던 사람도 발걸음을 멈추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자신있게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곳을 찾아 가면서도 여러 사람에게 물어서 찾아다녔다. 어떤 경우에는 스패니쉬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봐도 (손짓 고개짓을 보아 짐작하건데) 길을 가르쳐 준 세 사람이 다 틀리게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결국 세 사람 중에 누구 말을 믿을 것이냐 하는 것은 길을 모르고 찾아가는 우리가 알아서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은 가르쳐 주는 사람마다 친절하게 그리고 자신있게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그들의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낯선 사람에게도 최선의 친절을 베푸는 것이 그들의 예의인 것이다. 그래서 잘 알지 못하면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설명해 주는 것이다. 정확히 알려 주느냐 하는 것 이전에 친절을 베푸는 것이 중요하다. 설명을 듣고 제대로 찾아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고,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자신이 아는 범주 내에서 친절히 설명해 주면 그것으로 자신의 몫을 다 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것도 미덕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시간에 쫓기면서 운전하는 우리들로서는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정확히 모르면 잘 모른다고 할 것이지….
문득 우리 크리스천의 삶도 이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우리 주변에 길을 잃고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모양으로 친절은 베풀지만 정작 정확한 방향과 길은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양한 구제, 섬김 및 사회봉사로 이웃과 사회에 많은 친절을 베풀면서도 정작 누구에게나 필요한 구원의 길, 참 생명의 길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면 여전히 주변사람들은 방황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찾아 오신 주님은 병든 자들을 고쳐 주셨고, 굶주린 자들을 먹여 주셨으며, 소외된 자들과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그러나 주님은 바른 길을 가르쳐 주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이웃과의 하루 행사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단지 사랑과 친절을 베풀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이상으로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정확하게 제시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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