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셀폰 벨소리, 아무데서나 고함치듯 큰 소리로 통화하는 막무가내 이용자들, 회의나 식사, 심지어는 예배시간에도 터지는 셀폰 소리로 인하여 그야말로 셀폰 공해시대가 초래했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셀폰이 울려 주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면 누구나 당황하게 된다. 그런데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당황하는 모습을 본다. 남자들은 보통 주머니에 넣고 다니지만 여자들은 주로 손가방에 넣고 다니기 때문에 셀폰을 찾는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여자 분이 울리는 셀폰을 빨리 끄기 위해 아무리 뒤져도 찾지 못하자, 손가방의 내용물을 다 쏟아 놓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당황하니까 찾아 끄는데 더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그 분의 손가방에서는 이런 저런 다양한 물건이 가득 들어 있었다.

셀폰 사용에 있어서 남녀차별을 하자고 꺼낸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또 다른 가방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몇 해 전 우리 교회에서 자녀들과 함께 신앙생활 하시다가 소천하신 고 박순철 장로님의 가방 이야기이다. 뉴저지로 오셔서 잠깐 우리교회에 나오시다가 요양원에 들어가 계셨고, 그 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그러기에 90평생을 살다 가신 고인에 대해 나 자신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고인의 자녀들이 장례식에서 들려준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장로님의 소천 후 아버님께서 생전에 쓰시던 유물들을 자녀들이 정리하게 되었다. 그 중에 하나가 늘 들고 다니시던 손가방인데, 그 안에서 장로님께서 친필로 써서 복사해 가지고 다니시던 전도지 여러 장이 나왔다. 바깥출입이 가능했던 마지막 날까지 자신이 친히 정리하여 기록한 즉, 자신의 산 고백이 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살으셨던 고인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 주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늘 옆에 끼고 살아가는 가방 속에는 무엇이 담겨져 있는지 살펴보자. 대부분 자신의 생활필수품들일 것이다. 내 손가방 속에는 늘 노트북 컴퓨터와 그와 관련된 악세사리들, 책 두세 권과 펜, 그리고 처리되어야 할 서류파일과 영수증들, 교회주보와 기독잡지 및 이런 저런 광고브로셔들이 들어있다. 책 중에 한 권은 성경/찬송 합본이다. 이런 것들이 목회자인 나의 생활필수품이기 때문이다.

늘 가지고 다니는 손가방 속에 들어있는 내용물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 준다. 고 박순철 장로님의 손가방에 들어있던 전도지는 그가 살고 간 인생의 한 면을 보여주었다. 그는 전도지를 자신의 생활필수품으로 여겼던 분이셨다. 즉,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살리는 일이 매일매일 삶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 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했던 삶이었다.

내가 세상을 떠난 후, 내 자녀들이 내가 쓰던 물건들을 정리할 때, 그들의 눈에 나는 어떤 삶을 살다간 아버지로 비춰질 것인가를 생각하며 내 손가방을 다시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