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목적이 있습니다. 교회안에 세움받은 모든 직분들은 하나님을 예배로 영화롭게 하는 일을 위해서 선택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교회가 부여한 직임의 따라 맡겨진 역할은 다를지 몰라도 모든 직분은 하나님의 교회 예배 목적을 위해서 부여되었다는 바른 신앙의 기초 위에 서 있을 때 바른 헌신의 사명을 다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위해서 세워진 성전이지 인간을 위한것이 아니라는것도 (역대상29:1) 성경이 주는 교훈의 말씀을 바로 깨달아 알고 믿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에 의하면 이교회는 어느 장로님, 어느 집사님이 전 재산을 다바쳐 세운 교회입니다. 이렇게 안내 하시는 말을 자주 들으면서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세운 하나님의 교회라는 교회관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사람들을 줄줄이 소개하는 일보다는 하나님이 이렇게 큰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라고 전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으로의 교회를 위치를 바르게 선포하는 신앙적인 고백은 절실히 요구 되는것 같습니다.

다윗왕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것을 내가 주께 드릴뿐이라고 하면서 모든것이 주께로 부터 왔다고 성전건축을 위해 드린 자신이 드리는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것이라는 신앙적인 고백을 하고 주님의것을 주님께로 드린다고 하는 신앙관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역대상29:14)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거룩한 교회안에 임재하신다는 교회관을 모든 백성들에게 바로 알리고 믿게 하는 선택받은자의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을 예배로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 중심 신앙을 지켰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부활신앙의 기초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들로 모여 기도하기를 힘쓴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예배를 드린 예배중심의 사람들이 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유일신 하나님을 예배 드리는것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예배를 등한히 하던 이스라엘 역사속에는 역경과 시련의 세월은 물론 이국의 나그네와 포로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배없는 세월속에 보낸 이스라엘의 긴 역사는 삶의 모든것을 잃어버린 죽엄이전에 삶이였습니다.

거룩한 교회가 교회로의 사명을 다한다는것은 예배중심의 교회로의 위치를 바로 하는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안에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르는 말씀을 인도하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때에만 하나님의 교회로의 위치를 바로 하고 있는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쳐지지 않을때에는 교회예배는 세속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는것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강단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선포 되여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가르쳐 지지 않고 세속의 흥미로움 말이 강단에 물들여 지게 되면 사람들의 마음은 즐거울지 몰라도 영혼은 병들고 교회는 분열과 갈등의 아픔을 격계 될것입니다.

예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교회를 이루고자 하는 신앙적인 성도들의 기도소리가 모아질때 하나님의 교회는 초대 교회와 같이 성령이 역사하는 부활신앙의 기초한 하나님의 교회의 사명을 다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변화의 시대를 열어 가게 될것입니다.

바로 큰 교회안에 작은교회에 대한 생각을 해 보신적이 있으신지요. 초대 교회는 대형교회안에 적은 무리들이 부활신앙으로 하나되여 모여 기도하던 큰 교회안에 작은 교회였읍니다. 이들이 당시 관원들에 의해 잡히고 감옥으로 혹은 죽엄으로 가는 수많은 고난을 당하였지만 (행2:22-24)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길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하는 신앙의 길을 걸어 갔습니다.

세속에 물든 큰 교회안에는 하나님 중심 신앙을 가진 적은 무리들이 모이는 작은 교회가 있었읍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세대의 관원의 위협이나 형식에 물든 것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신앙의 지조를 빼앗기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 신령한 눈을 뜨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한 주님이 중심이 된 교회 예배를 드리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행7:55)

주님의 부활후 사도 베드로는 지나는 길에 그 의 그림자만 덮여도 다 나음을 얻었다고 했읍니다. (행5:15-16) 각색 병든자들이 일어나는 기적을 이루어 영향력있는 지도자의 길을 가게 한것은 베드로를 다시 만나 주신 부활의 주님의 은혜였읍니다. 많은 사람들은 일생동안 교회안에 머믈면서도 고통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않고 주려고도 하지 않을뿐 아니라 자신의 길만 열심히 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자신을 위해 남김 업적은 많은데 주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하는 신앙적인 삶을 향한 길을 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것 같습니다. (시편 84:11)

주를 바라보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의 실천해가는 신앙적인 사람들입니다.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나와서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을 하였읍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기록된 말씀을 어떻게 읽느냐 라고 하시면서 율법사의 대답을 따라 그렇게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말씀 하시자 자기를옳게 보이려고 그러면 내이웃이 누구오니이까 라고 질문한 율법사에게는 이웃도 모르는자로서 율법사라는 당시 종교 지도로 존재하고 있었다는것입니다.

이웃이 누구인지 모르는 지도자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간 길은 모두 자기 길을 열심히 갔읍니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자기길을 향해 열심히 걸어 갔읍니다. 큰 교회에는 이웃교회가 눈에 보이지 않는것 같습니다. 자기 길을 가기에 바쁘니까요 작은교회와 이웃교회를 바라보면서도 그대로 자기길을 가노라 돌아볼 마음이 없는것이지요.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이라면 또 다른 교회를 바라보는 자비의 눈을 뜨고 이웃도 있고 예수님의자비의 모습으로 자신을 다스려 가는것이 생명의 말씀을 밝혀 가는 지도자의 모습일것 같습니다.(빌2:16)

교회안에 작은교회 모습은 초대 교회 역사에는 부활 신앙의 체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은사의 역사를 이루어간 교회 신앙으로 하나된 예배공동체의 역활을 하여 교회 예배를 바르게 하고자 하는 주역들이었습니다. 교권주의 에 맡서지 않고 기도로 또한 강한 사회 권력에 저항하는것보다는 인내로 자신의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의 말씀인 성경이 읽혀지는 예배를 드리면서하나님의 교회로의 사명과 의무를 다하는 기도 공동체였읍니다. 기도하기를 힘쓰고 구제와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교회안에 존재하는 작은교회였습니다.

기독교 역사의 초기 청교도 운동도 보면 영국 국교가 하나님의 교회를 국가 교회로 만들고 영국의 국왕이 교권을 임의로 주관하는 그런 시대를 거치게 됩니다.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국가가 지급하는 급료를 받아 생활함으로 교회는 종교단체의 일부로 침체에 빠지게 되였읍니다. 이때에 청교도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영국 국교가 하나님의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교회안에서 성결운동을 시작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국의 국교는 성경에 위배되는 일은 묵인하고 국왕이 교회머리라는것과 성경을 읽는 자는 모두 죽이는 살인적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이 낭독되는 교회 예배와 하나님의 말씀이 신앙의 중심이 되는 교회운동을 위해 큰 교회안에 작은 교회 역활을 하면서 성결운동을 위해 박해와 고난을 감수 하면서 청교도인들이 영국국교안에 머믈면서 청교도 신앙운동을 전개 하였습니다.

이들은 권력에 눌린 교회와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교회가 전락해 가는 모습을 다시 찾고자 하는 신앙운동을 교회안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상고 하면서 기도운동을 일으켜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는데 전력하였읍니다. 작은 교회 이면서 큰 교회안에서 거룩한 교회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일에 생명 바쳐 헌신하였습니다.

초대교회와 기독교 개혁운동을 일으킨 영국의 청교도 인들이 활동한 교회안에 작은교회들 이였습니다. 기존의 교회를 떠나지 않고 교회안에 머믈면서 성결운동을 하면서 박해를 받았고 감옥에 투옥도 되고 온갖 수모를 겪었지만 이들은 기존의 교회를 성결하게 한다는 신앙심으로 교회안에작은 교회를 이루어 큰교회를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 모습으로 돌이키려고 하였습니다.

기독교 역사속에 모든 과정은 기독교인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거울과 같은것입니다. 하나님앞에 자기를 발견하는것은 그리스도인으로의 삶을 부요하게 하고 강한 신앙심을 가지게 합니다. 가뭄이 들면 논바닥이 갈라져 버립니다. 물이 흐르면 바로 하나의 큰 논으로의 모습을 다시 찾게 합니다. 큰 논을 소유한 주인이 물을 흐르게 하지 않으면 논은 갈라진채로 아무것도 수확할수 없는 불모지와 같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교회강단에서강해된다면강물같이 흐르는 기쁨을 누리는 교회로 은혜와 사랑의 열매를 수확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것입니다.

큰 교회안에는 모임의 작은 그릅들이 너무 많이 있읍니다. 그 그릅의 리더들이 모두 담임 목사님의 신앙 의지와 같다고 하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읍니까 그렇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구역예배로 모이는 지도자가 목사일때는 신학적인 일치가 담이목사와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런데 신학의 사상도 서로 다르고 그러다보니 신앙관 마저 서로 다른 경우를 생각 하면 결국 큰 교회안에 다른 작은 교회역활을 하고 있는것과 다를바 없읍니다. 그럼에도 담임 목회자는 작은교회들은 하나된 교회라는 울타리안에 가두고 크게 하는 목회 신념이 무엇인지는 궁금합니다.

큰 교회안에는 기도회 그릅도 많이 있읍니다. 그런데 기도를 인도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교회안에 화합의 역활을 할수도 있고 아니면 분열의 뿌리를 내릴수도 있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린다는 대의적인 의미는 있지만 실제로 신앙활동이 서로 다르게 움직여 집니다. 각기 다른 은사와 달란트라는 범위안에서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의 교회의 지체로의 사명을 수행해 나간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을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교회가 서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인지를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교회라고 확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성경이 신앙의 중심을 이루는 교회를 세워 살아계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중심의 거룩한 교회를 세워가는 기회를 이루어야 할것입니다. 큰 교회안에 작은교회가 큰 교회의 신앙적인 활력을 함께 이루는 작은교회로의 역활을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 목적에 하나 되였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