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태어났을 때, 저는, 여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천벌처럼 여겨지던 과거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축하해 주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던 지요! 제가 자라던 시기에는 여자 됨이 천벌은 아니었어도 많은 불이익을 당연한 듯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하다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아가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딸이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과 억압과 학대를 당한다면, 아비로서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나라에 따라서는 여성이 성적 노리개로 학대당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곳도 있습니다. 선진국이라는 곳에서는 돈으로 혹은 권력으로 여성을 학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여성이 나의 딸이고 어머니고 누나고 동생이라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신의 친딸에게 그런 야만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도 종종 있는가 봅니다만, 속속들이 인간성이 부패하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내 딸, 내 누이가 그렇게 소중하다면, 다른 사람의 딸, 다른 사람의 누이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요즈음 한국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성매매 업을 하다가 적발되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얼마나 부끄러움을 느끼는지요! 돈에 자신의 인권을 팔아먹는 사람도 그렇고, 돈으로 인권을 사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정말 용서받기 힘든 죄라 하겠습니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연방 하원에 상정된 결의안(HR 121)이 이번에 통과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이것이 인권에 대한 인류의 양심을 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싸움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결의안을 상정한 마이클 혼다(Michael Honda) 의원을 놀랍게 생각합니다. 그는 일본인 3세라고 합니다. 아무리 3세라 해도, 조상의 조국을 편 들 법도 한데, 그는 민족의 테두리를 뛰어 넘어 더 본질적인 인권의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결의안은 더욱 무게를 가진다고 하겠습니다.

이번이 결의안 통과에 있어서 가장 적기이며, 또한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지난 화요일(13일) 합동임원회에서는 이 결의안을 지지하는 서명 운동에 교회적으로 참여하기로 의결했습니다. 사실, 정신대 문제가 미국 안에서 공론화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우리 교회였습니다. 1992년 11월, 우리 교회는 정신대 희생자 중 한 사람이었던 황금주 할머니를 초청하여, 당시까지는 소문으로만 떠돌던 정신대에 관한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워싱턴지역 정신대 문제 대책위원회"가 발족되어 지금까지 활동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임 조영진 목사님께서 정신적인 기둥의 역할을 해 주셨고, 우리 교회 교우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해 오셨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복도에 서명하는 양식이 놓여 있을 것입니다. 서명은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해야 유효합니다. 그러므로 혹시 이견이 있는 분은 참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문제를 나의 자매, 누이, 어머니 혹은 할머니의 일로 여기시는 분들은, 그리고 이 결의안으로써 인권에 대한 인류의 양심을 깨우는 데 참여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모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명심할 일이 있습니다. 여기에 서명하면서, 나 자신도 내가 처한 곳에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다짐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다짐이 없는 서명은 위선이 될 수 있습니다. (2007년 3월 18일).

/글 김영봉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