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군대 가더니 좀 철이 들었나 봅니다. 며칠 전에 제게 시계를 사서 보내더니 엄마 선물이라고 하면서 TV를 바꿔 주겠다고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제 처가 아직도 멀쩡한 TV를 왜 바꾸냐고 하면서 돈이나 잘 모으라고 말렸지만 일단 아들의 마음 씀씀이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들이 왜 이런 선물을 보내 왔을까요?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은 이런 희생과 수고로서 표현됩니다.
사랑을 가장 쉽고 가까이 볼 수 있는 것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입니다.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밤에 자다가 아기가 울면 일어나 기저귀를 갈아 주고 젖을 먹입니다. 자기 몸이 피곤하다고 아침까지 아기를 방치하는 법이 없습니다. 또한 아이가 자라가면서 바른 교육을 시키기 위해 수천 수만 번의 손길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녀가 다 커서도 그 사랑의 수고는 끝나지 않습니다. 데일리 시장이나 평범한 촌부이거나 상관없이 자식을 이라크에 보낸 부모의 마음은 모두 공통적으로 자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데일리 시장은 엊그제 부시 정부가 이라크에 2만 5천명의 미군을 증파하려는 계획을 발표하자 정면으로 그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수고든지 마다하지 않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신앙인들도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고난을 감당하며 삽니다. 신사참배를 끝까지 반대하다가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님의 막내아들 주광조 장로님은 이런 간증을 하였습니다.
“선친 주기철 목사님은 교회의 성도들과 조국인 조선을 사랑했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제게는 세 형들에게 붙여 주었던 돌림자도 따르지 않고 ‘조선아 빛나라’는 의미로 ‘광조’라고 이름을 지어줄 만큼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7년간 일본과 투쟁하면서 한번도 ‘조선 독립’ ‘조선 광복’이라는 구호를 사용한 적이 없었고, 일본 천황을 비난한 적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말로써 일본과 투쟁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행했고 죽음까지 이르는 실천으로 믿음을 나타내었습니다.
3.1 운동 당시 독립 선언식에 참여했던 33인 중에 과반수가 기독교인들 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조선의 독립과 해방을 부르짖으며 결사적으로 일본과 싸워 나라의 광복을 되찾자고 목이 터져라 외쳐 많은 사람들로부터 박수와 환호와 존경을 받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변절하고 일본에 아부하면서 자신의 영달을 꾀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조선 독립’을 한 번도 외치지 않았던 아버지를 7번이나 감옥에 가두고 온갖 고문을 가하고 결국 죽였던 것은 말로만 나라를 사랑한 것이 아니고 말없는 실천과 행동이 일본 경찰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말없이 죽음에 이르는 삶을 통하여 아버지는 우리에게, 믿음은 죽기까지 실천하는 것이라는 가장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즉 나라 사랑과 하나님 사랑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과 행동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조국 사랑은 말 뿐이 아닌 실천과 행동이었기에 주목사님은 옥중에서 생명이라는 희생을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행함이 있는 사랑의 의인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얻게 되자 너무 감격하여 그는 곧 바로 사랑의 수고를 실천하였습니다. 그에게 가장 귀한 대상이었던 재산을 기꺼이 내어 놓았습니다.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납했고, 사기 쳐서 빼앗은 물건에 대하여서는 네배로 갚기로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파산할 수도 있을 만큼 엄청난 희생과 수고였지만 이웃 사랑을 위하여 베풀었습니다.
사랑의 수고는 하나님께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지옥갈 인간들이 불쌍하여 하나님께서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않고 우리의 죄값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도록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수고였고,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신이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은 마땅히 이웃에게 말로만의 사랑이 아닌 실천적인 사랑을 해야 합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일서 3장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