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뉴욕기념사업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상모 목사가 정동제일교회의 최초의 담임목사였던 최병헌 목사의 신학사항과 목회활동을 본받기 위해 ‘탁사 최병헌 목양선교회’를 발족하고 소책자(12페이지)를 제작했다.

다음은 소책자에 실린 김상모 목사의 발족사와 김병섭 장로(세계기독교 신도연합회 회장, 한국기독교 평신도 연합회 회장)의 글이다.

탁사 목양선교회를 발족하면서-김상모 목사

2004년 6월 미연합 감리교회 뉴욕연회에서 정년(70세) 은퇴한 후 다시 감독 파송을 받고 2년을 더 목회사역(선교감리사 및 담임목회)을 했습니다. 2006년 6월 완전 목회현장에서 떠나고 보니, 한국 목회 15년 미국 이민목회 34년 도합 49년의 목회사역 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여러 선배님과 성도 및 동역자 여러분의 기도 덕분인 줄 믿고 지면을 통해 인사를 드립니다.

60년대부터 토착화 신학(Indigenization)이 거론되면서 한국기독교의 기초를 다진 한국교회의 스승 탁사 최병헌(1859-1927) 목사에 대한 연구와 강좌가 시작되었고 심포지움, 세미나 및 탁사 기념사업회가 생겼습니다. 그 후 연구도서, 역서, 논문 및 해외 박사논문(Princeton, Oxford 등)등, 탁사연구가 활발해졌으며 한편 탁사의 고향 충북 제천시는 시 주관으로 하루를 탁사의 날로 정하고 탁사의 생애와 사상 심포지움(2003. 11. 18)을 갖고 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제 미주에서도 탁사를 기리는 기념 사업회를 갖고 연구와 선교 사업을 펼치고자 합니다.

은퇴 전부터 외조부 탁사 최병헌 목사님의 신학사상을 연구하고 목양정신을 기리는 선교 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바쁜 목회로 엄두를 못냈습니다. 이제 은퇴하고 본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신 줄 믿고 탁사 기념 사업회를 설립하여 비영리단체로 주정부에 등록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예년에 못지않은 사랑과 편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이의 세상을 위하여” 성심껏 일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애국가 작사자 탁사 최병현 목사-김병섭 장로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의 작곡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나 윤치호 선생으로 추정하게 되는 것이 두 분 모두 우리나라 근대사의 빛나는 지도자이심으로 두 분 중에 한 분이실 것으로 짐작되는 것도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 또 실제로 애국가 후렴만은 윤치호 선생의 황실가를 인용한 연유도 있는 것이다.

근래 나타난 여러 사료에 의하면 작사자는 서울 정동교회 최병헌 목사님으로 밝혀졌다.(생략) 최목사님은 독실한 신앙과 심원한 사상가이시고 열렬한 애국자로써 우리나라 고전과 한학 한시에 통달하셨고 특히 시문과 창가 창작에 능통하셨던 분이시다.(생략) 또 윤치호 선생과는 의형제를 맺고 우리나라 황실에 기독교문화를 소개하는데도 지대한 공헌을 하셨다.(생략)

애국가는 1905년경에 작사하셨는데 당시 정동교회 목사관이 남산을 정면으로 바라보이는데 위치하였으므로 애국가 2절에 “남산 위에 저 송백은 철갑을 두른듯”이라고 우리 민족의 송죽과 같은 절개를 표현하셨고, 4절에는 “이 기상과 이 마음으로 님군을 섬기며”라고 우리 겨레의 충성심을 나타내신 것으로 그 당시 불변가로 불려졌다. 애국가는 신앙심을 바탕으로 애국 애족의 얼이 담겨 있다. 최병헌 목사님은 구한말 국운이 기울어질 때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악랄한 침략 야욕과 책동에 감연히 항거하고 타오르는 애국심으로 ‘독립가’와 그 외에도 많은 시문을 창작하셨다.

1954년에 미국대백과사전(Encyclopedia)사에서 애국가 작사자를 문의해 옴으로서 국사 편찬위원회 2회와 11회 때에 사학자 김도태선생과 편찬 위원들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제자 작곡가 김인식 선생의 손자와 최병헌 목사의 손자 최중일박사 등의 증인을 청취하고 치밀하게 심사한 결과 최병헌 목사로 결론이 내려졌다.

[주 : 당시 최병헌 목사(1858-1927)는 북감리교회 대표격이며, 윤치호(1865-1946) 선생은 남감리교회 대표격이었다. 두 분은 애국애족의 정신과 신앙인으로서 의기 화합하여 의형제를 맺었다. 후에 불행히도 윤치호 선생은 “1945년 일본제국의회의 친선 귀족원 의원에 선임되다”(브리타니카 백과17-p.403). “해방후 일본에 협력한 것을 자탄하다가 결국 자결하였슴(1865-1946)”(이희승 편저:국어대사전 p.2833). 역사편찬위원회의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미국백과사전 Encyclopedia에 “작자미상”으로 발표한 이유는, 합작자 윤선생이 친일협력자라는 점으로 봐서, 친일파가 애국가 작사자라고 발표한다면 해방직후 1950년대의 국민정서의 대 혼란을 우려하여, 작자미상으로 발표한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광복 한 세기를 바라보는 지금, 본 절은 최병헌, 후렴은 윤치호 작사로 발표함이 정당한 역사다.]

문의 : 201-568-2509, 201-568-1973(Fax), 201-255-5601(Cp.)
Email : ksm61853@aol.com(회장 김상모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