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청년들을 이끌고 수련회를 갔었다. 수련회에서 청년들이 많은 은혜를 받고 결단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곳은 비록 화려한 장소는 아니지만 거룩한 부르심이 이루어지는 장소로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떤 장소든지 거룩한 부르심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시는 장소는 특별한 곳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부르심을 받기 위해서는 좀 더 괜찮은 직장과 좀 더 높은 위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눈으로 볼 때 별로 뛰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일하는 곳이 유명한 사람들이 없는 곳일 때 사람들은 이러한 곳에서는 하나님으로 부터 귀중한 사명을 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는 다르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를 불러내어 자신의 위대한 일을 맡기시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를 보수신앙의 길로 부르신 것을 말할 수 있다. 나는 원래 보수신앙이나 자유주의를 모르고 신앙생활을 했었다. 그러는 중에 목사로서의 소명을 받아 신학을 하고자 했다. 그런데도 나는 어떤 학교를 가야할지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나를 참으로 특별한 곳에서 부르신 것이다. 그 곳은 다름 아닌 내가 일하던 봉제 공장이었다. 나는 정말 나의 앞길을 그런 곳에서 인도하실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저 나는 그런 곳을 빨리 빠져 나가야 한다고만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내가 무시한 그러한 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이루어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봉제공장에 나가니 내 앞에 새로 오신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 일을 하고 계셨다. 나는 그분께 인사를 하고는 5줄짜리 메로를 가지고 바느질 일을 하였다. 점심쯤 되었을 때 그 아주머니는 나를 보고 “예수를 믿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나는 “예!”라고 대답을 했고 그 분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앞으로 신학을 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 분의 눈이 크게 떠지면서 어떤 신학교를 가려고 하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무심코 아직 잘 모른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분은 내 남편이 목사인데 지금 어느 신학교에서 가르치는데 그리로 가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를 통해 나는 보수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또한 보수 신앙을 고수하는 교단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때를 생각만하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 날과 같이 신학사조가 혼탁한 시대에 성경을 일점일획이라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신앙을 전수 받게 됨을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어려운 경우에서도 성경을 살피면서 힘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정말 만 입이 있어도 다 말할 수 없다. 이러한 경우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느 곳에서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봉제공장은 신학과는 아주 무관한 곳인 것 같았으나 하나님이 나의 신학의 길을 인도하신 곳은 바로 그 봉제공장이었던 것이다.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의 거룩하고 위대한 부르심을 받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곳을 선호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 부르심을 위하여 어떤 특별한 직장이 필요 없고 어떤 특별한 모임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쓸 사람을 어느 곳에서든지 어떤 방식으로든지 이루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일하는 곳이나 내가 속해 있는 단체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특히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를 초라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런 조그마한 교회나 일터에서 이루어진 예가 성경이나 역사 속에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모세는 미디안의 호렙산에서 양치기 일을 하다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또한 다윗도 양을 치는 초장에서 하나님으로 부터 왕이 되는 부르심을 받았다. 또한 사무엘 선지자는 아무도 찾지 않는 성전에서 사사로 부름을 받았다. 사사 기드온은 타작마당에서 포도를 짜다가 이스라엘의 사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아모스는 드고아 목자로 일하던 중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 엘리사는 농사를 짓는 곳에서 선지자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런 것들을 보면 그 어떤 장소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장소에서 일을 하든지 하나님에 의하여 귀한 일에 부름을 받을 수 있음을 믿고 최선을 다해야 할 줄로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그의 거룩한 일에 부르실 때에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보시지 않는다. 또한 얼마만큼 능력이 있는가도 보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단지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지를 보실 뿐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모든 일을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요셉이 종으로 전락했을 때 자기 일에 충실하고 보디발 장군의 부인의 유혹에 넘어 가지 아니함으로 감옥행을 한 것은 하나님이 보시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그의 일에 부르신다. 그러므로 거룩한 부름심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어떠한 일을 맡아도 하나님이 보시고 있다고 생각하며 행하여야 한다.
나는 성경에서 기생 라합의 이야기를 보며 기생집도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성경은 그녀를 기생이라고 불렀다. 그것을 볼 때 그녀가 사는 집은 기생집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하루는 그녀가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힘으로 홍해를 건너서 자기 나라를 향하여 달려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녀는 두려움을 갖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던 것 같다. 그 결과 하나님은 라합을 살리기 위하여 스파이를 그녀의 집으로 보내셨고 라합은 구원을 받게 되었다. 내가 믿기로는 그때부터 그녀는 하나님에 의하여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라합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삶을 살므로 다윗왕의 조상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조상이 되었다. 몸을 팔던 여인이 왕족이 되었고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이 되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보며 기생집에서도 거룩하고 귀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루어질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누구든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기회를 구하고 믿음으로 살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그를 들어 써주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준 사실이다. 그러므로 청년들은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 돌아와서 믿음으로 사는 일을 할 때 기회가 주어짐을 믿고 살아야 할 것을 권하는 바이다.
베이사이드 장로교회 이종식 목사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시는 장소는 특별한 곳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부르심을 받기 위해서는 좀 더 괜찮은 직장과 좀 더 높은 위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눈으로 볼 때 별로 뛰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일하는 곳이 유명한 사람들이 없는 곳일 때 사람들은 이러한 곳에서는 하나님으로 부터 귀중한 사명을 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는 다르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를 불러내어 자신의 위대한 일을 맡기시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를 보수신앙의 길로 부르신 것을 말할 수 있다. 나는 원래 보수신앙이나 자유주의를 모르고 신앙생활을 했었다. 그러는 중에 목사로서의 소명을 받아 신학을 하고자 했다. 그런데도 나는 어떤 학교를 가야할지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나를 참으로 특별한 곳에서 부르신 것이다. 그 곳은 다름 아닌 내가 일하던 봉제 공장이었다. 나는 정말 나의 앞길을 그런 곳에서 인도하실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저 나는 그런 곳을 빨리 빠져 나가야 한다고만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내가 무시한 그러한 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이루어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봉제공장에 나가니 내 앞에 새로 오신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 일을 하고 계셨다. 나는 그분께 인사를 하고는 5줄짜리 메로를 가지고 바느질 일을 하였다. 점심쯤 되었을 때 그 아주머니는 나를 보고 “예수를 믿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나는 “예!”라고 대답을 했고 그 분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앞으로 신학을 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 분의 눈이 크게 떠지면서 어떤 신학교를 가려고 하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무심코 아직 잘 모른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분은 내 남편이 목사인데 지금 어느 신학교에서 가르치는데 그리로 가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를 통해 나는 보수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또한 보수 신앙을 고수하는 교단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때를 생각만하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 날과 같이 신학사조가 혼탁한 시대에 성경을 일점일획이라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신앙을 전수 받게 됨을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어려운 경우에서도 성경을 살피면서 힘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정말 만 입이 있어도 다 말할 수 없다. 이러한 경우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느 곳에서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봉제공장은 신학과는 아주 무관한 곳인 것 같았으나 하나님이 나의 신학의 길을 인도하신 곳은 바로 그 봉제공장이었던 것이다.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의 거룩하고 위대한 부르심을 받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곳을 선호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 부르심을 위하여 어떤 특별한 직장이 필요 없고 어떤 특별한 모임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쓸 사람을 어느 곳에서든지 어떤 방식으로든지 이루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일하는 곳이나 내가 속해 있는 단체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특히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를 초라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런 조그마한 교회나 일터에서 이루어진 예가 성경이나 역사 속에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모세는 미디안의 호렙산에서 양치기 일을 하다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또한 다윗도 양을 치는 초장에서 하나님으로 부터 왕이 되는 부르심을 받았다. 또한 사무엘 선지자는 아무도 찾지 않는 성전에서 사사로 부름을 받았다. 사사 기드온은 타작마당에서 포도를 짜다가 이스라엘의 사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아모스는 드고아 목자로 일하던 중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 엘리사는 농사를 짓는 곳에서 선지자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런 것들을 보면 그 어떤 장소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장소에서 일을 하든지 하나님에 의하여 귀한 일에 부름을 받을 수 있음을 믿고 최선을 다해야 할 줄로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그의 거룩한 일에 부르실 때에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보시지 않는다. 또한 얼마만큼 능력이 있는가도 보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단지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지를 보실 뿐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모든 일을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요셉이 종으로 전락했을 때 자기 일에 충실하고 보디발 장군의 부인의 유혹에 넘어 가지 아니함으로 감옥행을 한 것은 하나님이 보시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그의 일에 부르신다. 그러므로 거룩한 부름심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어떠한 일을 맡아도 하나님이 보시고 있다고 생각하며 행하여야 한다.
나는 성경에서 기생 라합의 이야기를 보며 기생집도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성경은 그녀를 기생이라고 불렀다. 그것을 볼 때 그녀가 사는 집은 기생집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하루는 그녀가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힘으로 홍해를 건너서 자기 나라를 향하여 달려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녀는 두려움을 갖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던 것 같다. 그 결과 하나님은 라합을 살리기 위하여 스파이를 그녀의 집으로 보내셨고 라합은 구원을 받게 되었다. 내가 믿기로는 그때부터 그녀는 하나님에 의하여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라합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삶을 살므로 다윗왕의 조상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조상이 되었다. 몸을 팔던 여인이 왕족이 되었고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이 되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보며 기생집에서도 거룩하고 귀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루어질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누구든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기회를 구하고 믿음으로 살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그를 들어 써주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준 사실이다. 그러므로 청년들은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 돌아와서 믿음으로 사는 일을 할 때 기회가 주어짐을 믿고 살아야 할 것을 권하는 바이다.
베이사이드 장로교회 이종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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