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에도 추수감사절을 맞아 그로서리 카드를 모았습니다. 약 4천 5백 달러 어치의 카드를 모아 DC 노숙자들을 위해 일하는 ‘평화나눔공동체’와 라티노 형제 자매들을 섬기는 ‘굿스푼 선교회’ 그리고 구제 기관인 SHARE에 각각 전달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참여해 주신 교우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매 년 이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난의 현실을 잊지 말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교우들이 드리는 헌금에서 일부를 떼내어 구제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 현실을 외면하거나 잊게 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가장 관심하시는 문제 중 하나가 ‘가난’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 26:11). “가난은 해결할 수 없으니 신경쓰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가난의 문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난은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무참히 손상시키는 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난의 문제로 인해 근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가난의 문제에 대해 잊지 말고 할 일을 찾기를 기대하십니다.

가난은 ‘불편한 진실’입니다. 내가 겪는 가난은 나의 삶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이 겪는 가난은 나의 양심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잊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가난의 현실을 잊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가난의 현실을 늘 인식하고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새 교우 환영 만찬에서 어느 교우께서 제게, 넥타이를 매지 않는 이유를 물으셨습니다. 약 15년 전쯤의 일입니다. 방글라데시에 선교 여행을 갔는데, 그곳에서 저는 지독한 가난의 현실을 목격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겪었던 가난과 같았습니다. 저는 그 가난으로부터 빠져 나가기 위해 분투했고, 그 일에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의 가난의 현실을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그 사실을 그곳에서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귀국하면서 저는 ‘어떻게 하면 이 가난의 현실을 늘 기억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며 살 수 있을까?’를 질문했습니다. 그 때부터 넥타이를 매지 않고 삽니다.

그런 이유로 월드 비전을 초청하여 결연 행사를 가지기도 하고, 그로서리 카드 모으기도 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가족을 돕는 엔젤트리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혹시나 이것이 ‘이만하면 책임을 다했다’면서 불편한 양심을 위로하는 수단이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더 큰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쓰고 남은 돈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데서 더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나의 살림을 줄여서 나눌 것을 만들기 원하십니다. 더 가지기를 원하고 더 누리기를 원하는 나의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그 나눔은 하나님의 성에 차지 않습니다. 만일, 이같은 행사를 하면서 가난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어떻게 더 많이 나눌 수 있을까를 묻고 씨름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같은 취지가 저와 교우들께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2010년 1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