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회는 ‘다양성이 강조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복음의 유일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빠져 있다. 우리 주변에 복음의 순수성을 무너뜨리려는 세속주의(secularity)의 도전이 무척 강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최근 한국에서도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 재입법을 추진하려 하자 이 법안의 근간이 된 동성애 차별금지법안을 반대하는 여러 단체들이 공동연대로 대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교회는 ‘다양성’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하나’의 진리(복음)를 가르치고 전수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것은 지난달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제3차 로잔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3차 로잔대회에서 핫이슈 중의 하나가 바로 ‘도그마와 다양성’(dogma and diversity)이란 주제였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직면한 교회가 복음의 유일성을 어떻게 유지하는 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다문화 사회에서 성장한 4명의 발제자들, 테리 스미스(Terry Smith), 로버트 칼버트(Robert Calvert), 스테판 구스타브슨(Stefan Gustavsson), 아테프 겐디(Atef Gendy)는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발표하였지만 공통주제는 ‘복음주의적 진리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효과적으로 세속주의와 맞서 싸울 수 있는가?’였다. 응답은 ‘그렇다’이다. 필자 역시 이에 동의한다.

세번째 발제자로 나선 구스타브슨은 유럽에서 세속주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기독교와 인본주의를 비교하였다. 그는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하여 300년경에 로마제국을 통해 전세계로 확산되었고 1500년경에 종교개혁을 맞이하더니 1800년경에 영적부흥을 경험하였다가 1900년 이후부터 교회는 강하게 성장하였다. 하지만 이와 달리 포르투갈에서 발전한 인본주의(Humanism)는 1400년경에 르네상스로 발전하여 1700년경에 계몽주의로, 2000년부터 세속주의로 발전하여 교회를 심히 어지럽히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유럽에서의 세속주의는 근대 과학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세속주의의 특징은 ‘인간이 모든 것을 측정한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세속주의는 신(神)이 필요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필자가 작년 여름 영국을 방문하였을 때 버스에 쓰인 글귀를 잊을 수 없는데, 그것은 “신은 없다. 인생을 즐겨라”(There is no God, enjoy your life!)였다. 전형적인 세속주의 문구이다. 유럽사회에서 세속주의가 확대되어 가는 한 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유럽교회가 세속주의와 부딪히면서 두가지 면에서 큰 실수를 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첫번째가 ‘타협’(compromise)이다. 유럽교회의 가장 큰 실수라면 자유주의 신학과 타협한 것이다. 사실 자유주의 신학은 선교나 초자연주의를 부정하고 있다. 기독교 절대주의를 거부하고 종교적 상대주의를 주장한 에른스트 트뢸츠(Ernst Troeltsch)는 “영감된 성경에서 영원한 교리를 발견할 수 없다”며 복음의 유일성을 거부하였다.

두번째 실수는 ‘철회’(withdrawal)이다. 유럽교회는 경건주의와 카리스마적 신학을 철회한 실수를 범하였다. 그렇다 보니 17, 18세기의 경건주의 운동이나 모라비안 교도들과 같이 뜨거운 신앙이나 선교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 버렸다. 구스타브슨은 “유럽은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첫번째 지역”이라며 경건주의 운동을 회복할 것을 촉구하였다.

아직도 유럽을 다니다 보면 계몽주의의 도전이 온 도처에 깔려 있어 아직 끝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유럽은 세속주의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이러한 현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된 유럽 도시를 재건키 위해 터키나 북아프리카에 있는 무슬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부터 더욱 심화되었을 것이다. 런던과 파리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값싼 노동자들이 필요하였고, 그들이 바로 터키, 북아프리카, 중동의 무슬림들이었다. 더욱이 유럽인들의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퇴와 무슬림 이주의 확대는 세속주의를 앞당기게 하였다. 그렇다 보니 현재 영국의 무슬림은 비공식적으로 전체 인구의 5%이며, 프랑스에서는 10%(600만명), 독일에서는 4%(400만명)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사회에서 무슬림의 증가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경건주의 운동을 점차 버리게 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과의 타협과 무슬림 증가에 따른 경건주의 신앙의 철회는 유럽교회로 하여금 선교 열정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렸고 교회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였다. 예를 들어 최근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종교가 당신의 생애에 중요합니까?”라는 질문에 세네갈이 98%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폴란드가 33%, 독일이 25%, 영국이 19%, 헝가리가 15%, 스웨덴이 8%로 나타났다. “신학은 그저 한밤중에 울리는 휴대폰과 같다”고 말한 한 유럽 학자처럼 유럽인들은 대체적으로 신에 대한 갈급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유럽교회는 심각할 정도로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영국교회의 경우 지난 30년 동안 5천 개 교회가 문을 닫았는데, 1985년부터 2005년 사이에는 매주 1,100명의 신자가 감소하였다고 한다. 통계적으로 보면 영국이 30%, 스코틀랜드가 42%, 웨일즈가 53% 교인이 감소하였다.

세속주의 현상에 따른 유럽교회의 심각성은 유럽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도 세속주의에 빠르게 노출되고 있다. 최근 한국에 유입된 외국인만 해도 120만명을 넘어서면서 외국인 숫자가 전체 인구 중 2%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우즈베키스탄이나 파키스탄과 같은 이슬람국가에 온 무슬림이 20만 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음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 숫자가 증가하는 것은 한국경제를 위해서 감사한 일이지만, 한편으로 다양한 종교를 지닌 외국인 유입은 세속주의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2050년이 되면 한국은 약 10%가 외국인이 살게 되어 영국처럼 다문화복합국가가 된다고 한다. 더욱이 과학과 IT 발달에 따른 한국사회는 점차 세속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살고 있는 자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이 더 이상 우리의 앞길을 환하게 밝혀 주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는 과학을 중요시하고 동성애를 찬성하는 자들도 생기며 새로운 무신론자들이 많이 생겨나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세속주의, 불확실성, 다원주의 시대에 우리는 복음만이 진리가 되며, 예수 그리스만이 우리의 구세주 되시며 구원자 되신다는 사실을 고수해야만 한다. 이번 3차 로잔대회에서 우리의 안전(security)을 보호해 주는 것은 오직 복음뿐임을 다시 한 번 각인 시켜 준 것은 감사한 일이다. 한국교회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세속주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 되십니까?’라는 질문에 당당히 ‘그렇다’라고 답변할 수 있는 유일주의 신앙을 고수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유럽교회와 같은 뼈아픈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다.

안희열 교수

- 침례신학대학교 선교학 교수
- 세계선교훈련원(WMTC) 원장
- 한국복음주의선교신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