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마지막 목요일은 미국의 추수 감사절이다. 1620년 102명의 사람들이 메이 플라우워(May Flower) 호를 타고 영국 플리머드(Plymouth) 항구를 떠나 미국에 내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땅을 갈고 씨를 뿌려 농사를 지었다. 농사력(農事曆)이 없는 미지에서 한발과 가뭄, 태풍과 토네이도, 메뚜기 떼와 새 떼들의 공격과 싸우면서 간신히 일구어낸 햇곡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이 추수 감사절의 기원이 된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금년 추수감사절에는 대부분은 잘 모르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메이풀라우어 호를 타고 미국에 상륙한 102명이 모두 청교도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청교도가 아니고, 그 중 35명만이 청교도였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청교도라 부르지만, 정확히는 ‘순례자의 조상들’(Pilgrim's Fathers)이라 부른다. 35명 외에 나머지 67명은 청교도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었다.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강요하는 국가 종교인 성공회의 강압을 거부하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의 이민을 결행했다. 그러나 청교도가 아닌 나머지 노동자, 농민, 퇴역군인, 상인 등 다양한 사람들은 신대륙에 건너가 한밑천 마련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메이풀라우어 호가 현재 보스톤 근처 이름없는 바닷가(Plymouth)에 닻을 내리고 상륙했을 때 미국에는 두 가지 이데올로기(이념)가 동시에 상륙한 것이다. 청교도들의 청교도주의(Puritanism),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온 일반인들의 세속주의(Secularism)이 그것이다.

미국 초기부터 이 두 가지 이념은 상호 교차되면서 그 역사의 맥을 이어 온다. 그들이 도착한 이듬해인 1621년 가을에 어렵게 얻은 수확으로 청교도들이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이 추수 감사절의 효시가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지난해 겨울 그들에게 거처할 천막과 먹을 양식 그리고 덮을 것을 가져다 준 인디언들을 초대해서 함께 음식을 나누고, 달리기, 씨름 등 다양한 운동경기를 통해 감사와 우의를 다지기도 하였다. 비록 종족, 피부색, 언어, 문화, 전통, 풍습이 달랐지만, 청교도와 인디언이라는 서로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형제요 자매요 한 가족이었다. 도움과 감사, 협력과 배려, 우정과 봉사라는 값진 명제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오늘에 이르게 했고, 세계 제일의 강국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청교도들이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그리고 사랑을 베풀었던 이웃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친선을 하는 동안, 한편에서, 비청교도들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는 물론 없었고, 생명을 보존해준 인디언들을 초대해서 함께 음식을 나누고, 우의를 다지는 등의 일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옥수수와 감자 등으로 술을 빚어 잔뜩 퍼마시고, 세속적 노래를 부르면서, 반쯤 옷을 벗은 여인들과 더불어 거친 춤을 추면서 난잡한 페스티벌을 벌이고 있었다. 이 두 모습은 미국의 두 얼굴이다.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말씀 중심의 흐름과 돈과 명예, 향락, 음란의 문화가 미국 역사 최초부터 교차되면서 이어져 내려왔다.

초창기에는 청교도 정신이 강하게 문화를 지배해 왔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그 세력은 수세에 몰리고, 세속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서 청교도의 정신이 훼손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 있다. 예를 들면, 전에는 감히 거론조차 할 수 없었던 진화론, 동성연애, 낙태 등의 문제가 요즘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거침없이 횡행하고 있고, 창조론을 주장한다거나, 동성연애를 반대한다거나, 낙태를 거부하면, 꼴통 보수요, 전근대적인 사람으로 치부하는 세속주의의 물결이 범람하고 있는 게 오늘 미국의 현실이다.

다른 하나는 메이풀라우어 호가 미대륙에 상륙하기 전에 승선하고 있던 남자 장정들이 모여 협약을 맺었다. 이것이 소위 “메이풀라우어 협약”(Mayflower Compact)이다. 이 협약은 앞으로 신대륙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특히 권력 구조를 어떻게 형성, 지속하느냐 하는 문제가 초점이었다. 이 협약에 앞으로 지도자는 선거에 의해 선출하고, 선출된 지도자는 일정한 기간 동안 일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선출이라는 말은 세습이라는 말에 대치되는 말이다. 권력의 세습은 왕권 시대에 있었던 용어이다. 소위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이다. 왕의 권력은 하늘이 내리신 것이라는 뜻이다. 하늘이 내린 권력은 당연히 세습되게 되어 있었다. 왕이 죽으면 세자가 그 왕권을 이어 받고 또 그 권력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세습 제도이다. 그 누구도 왕의 자리에 앉을 수 없고, 왕족만이 왕이 되는 제도이다. 마치 다윗왕의 자리에 아들 솔로몬이 앉은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러나 이런 왕권신수설은 중세 시대의 유물이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주권재민(主權在民) 즉 모든 권력은 민초(民草)들에게 있다는 것이 보편적 원리이다. 이 민초들의 소박한 권리가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이제는 지배자가 아닌 지도자를 뽑는 것이다. 왕은 종신토록 권력을 누리지만, 지도자는 일정한 기간, 즉 대통령은 4년, 하원의원은 2년 상원의원은 6년 등으로 그 기간을 정했다. 그리고 기한이 끝나면 다시 선거를 통해 그 자리에 앉거나, 아니면 내려와야 한다. 메이풀라우어 협정은 이렇게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위대한 협정이었다. 미국의 강력한 힘은 물론 경제력이나 군사력에 있겠지만, 실은 이 민주적 투표 제도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주민들의 뜻에 어그러진 의견을 개진하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하는 제도로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제도라는 정도는 이제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추수감사절에 우리가 알아야 할 두 가지는 앞으로 미국의 앞날에 크게 영향을 미칠 요인이다. 민주적 절차에 따른 선거 제도는 이제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제도로 정착되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선거 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요, 그 제도 자체가 미국의 힘이다. 그러나 다른 하나 즉 세속주의의 극복은 진실로 미국의 앞날을 좌우할 중차대한 문제라 여겨진다. 만일 미국이 이렇게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의 청교도주의가 쇠해가고, 물질과 향락이 넘실대는 세속주의 속에 매몰된다면 미국의 앞날에는 희망이 없다.

하나님을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땅으로 목숨 걸고 이주를 감행했던 청교도들의 정신이 다시 재현되기 위해 금년 추수 감사절에 우리 모두 기도해야겠다. 여기에 미국의 살길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