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광저우 하늘 아래의 박태환은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가 부럽지 않다. 박태환은 17일(현지시간) 제16회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100미터에서 또 하나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400미터에 이은 2회 연속 대회 3관왕의 위업을 이뤘다. 박태환의 100미터 우승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래 박태환은 수영의 마라톤으로 불리는 1,500미터를 주종목으로 했던 선수다. 정점을 찍었던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기점으로 200미터와 400미터 등 중거리의 절대강자로 도약했다.

그러나 100미터는 또 차원이 다른 분야다. 50미터와 100미터의 경우 육상으로 치면 가장 빠른 스프린터를 가리는 단거리의 최고봉이다. 일테면 마라토너출신 이봉주가 단거리최강자 유세인 볼트와 200미터에서 맞붙어 이긴 격이 되니 그의 놀라운 재능과 집념에 세상은 다시 한 번 놀란 혀를 내두르기 바쁘다. 오로지 박태환이기에 가능한 스토리다. 단거리의 절대지존 볼트가 마라톤을 꿈도 꾸지 못하듯 수영황제 펠프스 역시 400미터 이상의 중장거리 레이스를 견뎌내지 못한다.

그러나 박태환은 다르다. 먼저 마라톤으로 시작했고 서서히 스프린터로의 재능을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박태환의 가치는 어떤 의미에서 펠프스를 능가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아시아무대에 국한된 결과지만 박태환은 이제 21살의 어린 선수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이미 어린 나이에 한 차례 큰 시련을 딛고 일어서는 모양새이기도 해 자만과 나태만 조심한다면 그의 미래가 과연 어디까지 뻗어갈지 누구도 섣불리 예상할 수 없다. 박태환은 18일 저녁 원래 주종목인 1,500미터에서 꿈의 4관왕에 도전하게 된다. 단단히 설욕을 벼르고 있는 중국수영의 두 주자 쑨양과 장린이 버티고 있는 종목이어서 쉽지 않다. 특히 쑨양과 장린은 박태환의 기록보다 10초가량 앞선 이 종목 세계최고의 선수들로 성장해있다.

마이클 볼 코치를 만난 박태환은 그동안 지구력의 장거리보다는 스피드 향상을 바탕으로 한 단거리 종목에 주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00미터의 기적 같은 역전 레이스만 봐도 쉽게 짐작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여러 정황상 이번 1,500미터는 가장 우승이 힘들 것으로 보이는 종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창 물오른 박태환이라면 또 모른다. 연일 기적을 연출하고 있는 박태환이기에 언제든 변수는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박태환이 1,500미터마저 휩쓴다면 이건 세계수영 역사에 길이 남을 일대사건 중 하나다. 앞서 밝혔듯 육상으로 비유하자면 100미터와 마라톤을 동시에 석권하는 역대 유일의 혼합형 스프린터가 탄생하는 순간과 다를 바 없다. 이미 박태환은 아시아의 마이클 펠프스로 우뚝 섰다. 이제부터는 '타도 펠프스'가 목표다. 심지어 남자 100미터는 무려 8관왕의 신화가 쓰여졌던 베이징올림픽 당시 펠프스도 못 밟았던 고지다. 사실 8관왕 펠프스의 순수 개인종목(혼영제외)은 남자 200미터 자유형, 100미터 접영, 200미터 접영 등 세 개가 전부였다.

다시 말해 박태환에게도 펠프스와 같이 뛰어난 팀동료들이 있어 릴레이 종목을 병행 우승할 수 있었다면 7-8관왕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펠프스는 자유형, 접영, 배영, 평영 등 모든 영법을 고루 잘하는 수영천재라는 점에서 박태환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단 그걸 자유형 하나로만 좁히자면 박태환은 단거리와 중장거리를 넘나드는 역대 최고의 아시아선수로 발돋움했고 나아가 앞으로는 세계를 무대로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 확실시된다. 두 수영천재 박태환과 펠프스를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재호 기자, kemp@uko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