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돌은 견고함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산상보훈에서 주님은 반석 이야기를 하시면서 단단함의 이미지를 내보이신다. 또한 돌의 이미지는 불변하는 것,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이미지화하면서 변하지 않는 사실, 신념, 진실, 믿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성경에 돌에 대한 이야기는 야곱이 벧엘에서 비무장 상태로 들에서 잠을 잘 때 의지하였던 돌 베개가 단연 기억에 남는다. 그는 두려움 속에 의지하고 밤을 지냈던 그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언약을 세웠던 것이다. 이 돌은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언약을 세운 증거의 돌로, 단단한 돌처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고백을 하게 된 것이다.

야곱의 외삼촌 라반이 분노하여 야곱을 잡으려 쫓아갔으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 속에 돌무더기를 쌓고서 화해를 선언한 화해의 돌 갈르엣이 나온다. 돌을 증거로 삼은 것이다. 여호수아는 요단을 건넌 후, 제사장들이 선 곳에 열두 돌을 세우고 이스라엘 도강을 기뻐하며 기념비를 세워 후대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념하도록 하였던 돌도 나온다. 아간이라는 자가 전리품 중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덩이 하나를 탐내어 장막에 감추어 두었다가 발각이 되어 아골 골짜기로 가서 돌로 치고 불사른 후에 돌무더기를 쌓고 아골 골짜기라고 칭한 돌도 기억에 남는다.

사무엘 선지자는 미스바에 부흥집회를 열고 영적 대각성 운동을 벌인 후에 블레셋과 전투하여 승리를 한 다음 돌을 세우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칭하니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신앙을 고백한 것이다. 우리도 종종 에벤에셀의 신앙을 고백하고 즐겨 사용하는 말이다.

신약의 마태는 “돌들로 아브라람의 자손이 되게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리쳐 예수를 환영 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칠 것이라”고 하면서 택한 자, 혹은 사명자의 가치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면 돌로 대체할 것이라는 경고가 아닌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돌들의 행세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 죽어가는 씨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생명의 성장을 방해하고, 식물들의 삶을 해하고 있는 방해꾼인 것이다.

마 18장의 연자맷돌은 불충성한 종들을 위하여 준비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신분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으로 바로 행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메고 물속에 기어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인데, 부정적으로 차라리 죽으라는 말이 아닌가? 긍정적으로 근신하고 정신차려 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하라는 것이다.

행 4장의 머릿돌은 기준점이 되는 돌이다. 그리스도가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시점을 알리는 돌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배로운 산 돌로 나타낸다. 그리고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머릿돌이 되라고 하신다. 이외에도 부딪히는 돌, 거치는 돌이 나온다. 가는 곳마다 이리 저리 부딪히고 깨고 부수는 것이다. 관계를 파괴하고, 거치는 돌이 되어 다른 사람을 넘어지고 실망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조약돌, 짱돌, 자갈, 운석, 수석 등 돌의 역할과 기능에 의하여 많은 이름을 붙여 놓았다. 이제는 돌들이 간판석, 교훈석, 시비석, 조경석, 휘호석 등으로 이용되어 사람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돌들도 많다. 자갈도 콩자갈, 흑자갈, 해미석, 백자갈 등으로 그 성질과 역할에 따라서 다양하게 구분되고 있기도 한다.

이제 현장으로 돌아와 적용해 본다. 먼저 필자의 경우 어떤 종류의 돌에 속하는 것일까? 보배로운 산 돌인가? 에벤에셀인가? 아니면 라반과 야곱간에 세운 갈르엣의 화해의 돌인가? 모퉁이 돌이 되어 사람들에게 삶과 도덕적인 기준점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을 지워주고, 실족케 하며, 나가는 길을 방해하고 막아 버리는, 걸림돌의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돌아본다.

짱돌이 되어 이리저리 다니면서 찍어대는 것이 아닌가? 내 기준에 맞지 않고 내 기분에 틀리면 찍어 버리는 해머에 맞을 돌은 아닌가? 공적인 일에 있어서 신앙 양심을 팔고, 자신의 유익과 이름을 내기 위하여 타인에게는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는가? 자신과의 이해관계에 얽히면 목회자의 양심도 던져버리고 오직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공공의 질서를 깨고 하나님의 영광을 파괴해 버리는 일들을 하지는 않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이지만, 나 스스로에게 책망하고 돌아본다. 그러한 돌은 세상에 여기저기 널려있는데…….

누구에게는 산 돌이었을 것이지만, 혹자에게는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짱돌이 되어 많이 찍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을 것인가도 생각해 본다. 레위기 14장에서는 색점 있는 돌이 나온다. 부정한 돌이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빼어다 밖에 내버려졌다. 쓰임에 합당하지 못할 때에 밖에 버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의 판단과 관계를 내려놓고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떠할까?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 선교사의 양심이고, 목회자의 양심이 아닐까? 우리의 공적인 행위는 역사가 시비를 가리고 판단할 것이다. 적어도 하나님의 일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물맷돌이 되어야 한다. 거대한 골리앗을 넘어뜨린……, 적용해 보면 우리 앞에서 거대한 사탄의 세력과 마귀의 권세, 세속의 영향력을 파괴하는 물맷돌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종들이 아닌가? 세상의 정신과 보이지 않는 악의 권세에 물맷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선교사의 역할이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을 바라보며 한 해를 돌아보아야 할 때가 오고 있다.

Sergei(모스크바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