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와 같이 길가는 것
맥스 루케이도/윤종석 | 복있는 사람 | 124쪽 | 6,500원

맥스 루케이도의 글을 읽을 때마다 항상 받는 느낌이 있습니다. ‘남성이 어쩌면 그렇게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을까?’입니다.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의 속박이 없는 그분은 우리 모두를 보신다. 사실 그분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를 보셨다. 그리고 그 보이는 모습을 사랑하신다. 별을 지으신 분이 자랑에 겨워 격한 마음으로 우리를 일일이 한 사람씩 보시며 말씀하신다. 너는 내 자녀이다. 내가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인생의 새 출발을 계획할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 속에서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항상 힘겨운 인생길을 걷지요. 이때에 저자는 책의 제목처럼 ‘주와 같이 길가는 것’이 행복한 것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공 약도를 따르기만 하면 평안한 길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섯 개의 소주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1.인생 여정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성공 약도), 2.서서 보고 듣기(좋은 여행을 위한 좋은 습관들), 3.갈림길에서(갈 길 정하기), 4.위험과 우회로(속도를 늦춰 사고를 피하라), 5.둘이면 더욱 좋다(당신의 길동무).

매 장마다 의미가 담긴 아름다운 그림과 짧지만 깊은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는데, 제가 가장 도전 받은 이야기를 두 개만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제목은 ‘네 청각을 잃었느냐?’입니다.

감히 하나님께 말싸움을 건 사람이 있었다. 모세한테 한 것처럼 떨기나무에 불을 붙여 보십시오, 하나님. 그러면 따르겠습니다. 여호수아한테 했던 것처럼 성벽을 무너뜨려 보십시오, 하나님. 그러면 싸우겠습니다. 갈릴리에서 했던 것처럼 파도를 잔잔케 해보십시오, 하나님. 그러면 듣겠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떨기나무 옆에, 성벽 근처에, 바닷가에 앉아 하나님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하나님은 과연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응답하셨다. 그분은 불을 보내셨다. 떨기나무에 붙일 불이 아니라 교회에 붙일 불이었다. 그분은 벽을 무너뜨리셨다. 돌로 만든 벽이 아니라 죄의 벽이었다. 그분은 폭풍을 잔잔케 하셨다. 바다의 폭풍이 아니라 영혼의 폭풍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사람의 반응을 기다리셨다. 기다리시고…, 기다리시고…, 기다리셨다. 그러나 그 사람은 마음이 아니라 떨기나무를, 삶이 아니라 벽돌을, 영혼이 아니라 바다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단정지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을 보며 물었다. 당신의 능력을 잃으셨나요?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네 청각을 잃었느냐?

두 번째 글의 제목은 “네 선택은 무엇이냐?”입니다. 한쪽에는 군중이 있다. 야유한다. 유혹한다. 다그친다. 다른 쪽에는 한 시골사람이 서 있다. 입술이 부어 있다. 눈도 불거져 있다. 그러나 약속은 고상하다. 한쪽은 수용을 약속한다. 다른 쪽은 십자가를 약속한다. 한쪽은 육체와 쾌락을 내놓는다. 다른 쪽은 믿음을 내놓는다.

군중은 도전한다. “우리를 따르라. 우리 하는 대로만 해라.” 예수님은 약속하신다. “나를 따르라. 굴복하지 말라.” 그들은 즐거움을 약속한다. 하나님은 구원을 약속하신다. 하나님이 당신을 보며 물으신다. “네 선택은 무엇이냐?”

우리는 하나님을 전능하신 분(엘 샤다이, God Almighty)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강하신 분인가?’를 묵상하지 않고, ‘내가 얼마나 강한 자인가?’를 고민하며 삽니다. 하나님을 선택(Choice)한다고 말은 하는데, 우리의 삶은 하나님만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택하는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연단의 시간이 계속 되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지치면 이런 질문을 하지요. “하나님 당신의 능력을 잃으셨습니까?” 그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청각을 잃었느냐?”

서늘한 가을, 청각을 잃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님만 바라보는 시선, 주님을 향한 귀 기울임(청각)을 회복하셔서 항상 응시하시고 말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훈 하늘뜻섬김교회 담임목사(www.servingod.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