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서 흔히 쓰는 용어 중 잘못된 것 가운데 하나가 “종교개혁”이다. 영어의 Reformation(개혁)이라는 말을 누가, 언제 ‘종교개혁’이라고 번역했는지 모르지만, 이는 잘못 번역한 것이다. 종교하면 모든 종교를 통칭하는 말이다. 즉 기독교, 힌두교, 불교, 이슬람, 조로아스터교 등 무수한 종교를 포함하는 말이다. 마르틴 루터가 16세기 독일에서 일으킨 개혁 운동은 종교개혁이 아니고 교회개혁이다. 루터 당시 구라파에는 오직 로마 가톨릭밖에 없었다. 따라서 루터는 부패한 로마 교회를 개혁한 것이지 종교를 개혁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이라는 용어는 교회개혁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사용해야 한다.

금년은 루터가 교회 개혁을 일으킨 지 493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 7년만 있으면 500주년이 된다. 루터가 부패한 교회에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든 것이 500년이 되어 가는데, 오늘 교회는 얼마나 개혁되었을까? 교회는 정말 루터가 원했던 그런 교회로 거듭났을까? 아니면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까?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그가 성서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던 독일 비텐베르그대학 성당 동쪽 문에 95개 조항의 면죄부에 대한 항의문을 게시한 것이 교회 개혁의 봉화가 된 일은 주지의 사실이다. 루터가 고발했던 면죄부는 무엇이며, 왜 이 문제가 루터 공격의 초점이 되었을까?

면죄부(免罪符: Indulgence)는 문자 그대로 죄를 면해 주는 증표이다. 개신교에는 세례, 성찬 두 가지 성례가 있는데 반해, 가톨릭에는 7가지 성례(영세, 견진, 성찬, 고백, 종부, 혼배, 서품)가 있다. 그 일곱 가지 성례 중 고백 혹은 고해 성사가 있는데, 고백은 신자들이 자기들이 지은 죄를 신부에게 고백하는 성사이다. 가톨릭 신자는 누구나 1년에 적어도 두 번(부활절 전, 성탄절 전)의 고백 성사를 해야 되고, 또 수시로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 고백을 해야 한다. 이 때, 신부는 신자의 고백을 듣고 바로 그 죄의 용서를 선언하지 않고, 그 죄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그것은 대개 기도문을 외우게 하는 것이다.

면죄부가 처음 등장한 것은 11세기 십자군 운동 때이다. 주후 622년 시작된 이슬람 세력은 파죽지세로 중동 여러 지역을 빠르게 점령하면서 급기야 638년 성도 예루살렘을 점령하였다. 성도 각지에 있던 성당의 십자가가 떨어져 나가고, 이슬람의 초승달 모양의 표식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면서 기독교도들의 분노는 높아갔다.
이 때 교황 우르반 2세가 성지 탈환을 주창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원하신다.”(Deus Vult)며 성도 탈환을 위한 십자군을 호소한다. 십자군에 나간 사람에게는 ‘대사면’(Plenary Indulgence)을 선언했다. 일생동안 짓는 모든 죄를 사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순진하고 순수하게 시작된 면죄부 제도가 세월이 가면서 점점 그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로마 바티칸에 짓고 있던 베드로 대성당(내부 면적만 3만평)의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 교황 율리우스 2세는 1507년, 대사면을 시행하였다. 여기서 거두어진 돈은 실상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의 빚을 탕감하는데 쓰였다.

교회가 부패하는 원인은 두 가지이다. 즉 돈과 성적 타락이다. 중세 로마 교회는 이 둘 모두에 걸려 있었다. 고위 성직 자리와 수도원장 자리는 돈을 버는 자리였다. 강제로 징수되는 십일조세, 그리고 교회의 각종 행사에 일반 신자로부터 많은 돈이 징수되었다. 심지어 연옥에 가 있는 영혼을 위해 면죄부를 사면 그 영혼의 죄가 사해지고,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속여 자손들의 효성을 자극하여 돈을 수탈했다.

마땅히 순결을 지켜야 하는 신부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니까, 정부(情婦)를 두고 살림을 하면서 사생아를 낳아 기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록에 의하면 네델런드 지역 성직자 1/4이, 남부 라인 지방의 1/3이 정부를 두고 살았다. 이렇게 신부들이 사생아들을 낳고 살림을 하게 되므로 생활비가 들게 되고 또 무도회와 사냥 등 호화로운 생활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 면죄부를 파는 것이었다. 개혁을 일으켰던 루터의 고국 독일의 1년 총생산의 40%가 이탈리아로 흘러들어 갔다. 불쌍한 농부들이 1년 내내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이 면죄부를 사는 데로 빨려 들어갔으니, 민족주의 의식이 강했던 루터나 당시 독일 지도자들에게는 덮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역사는 이를 라티족에 대한 튜톤족의 반란이라고 묘사한다.

면죄부는 이렇게 교회에 돈과 성적 타락이라는 도구로 전락되면서 철저히 악용되었고, 교회 부패의 원흉이 되고 말았다. 이런 타락한 교회에 루터가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물론 이런 교회의 부패상에 대해 루터가 처음으로 반기를 든 것은 아니다. 소위 “개혁 전의 개혁자들”이라는 영국의 윌리엄 위클리프, 체코의 얀 후스 같은 선각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시대가 성숙되지 못하여 루터와 같은 주장을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위클리프는 사후 묘지가 파헤쳐져 그 유골이 불태워졌고, 후스는 화형으로 분살되는 비극적 운명을 맞았다.

루터가 게시한 95개 조항의 항의문 첫 조항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외치셨을 때(마 4:17), 신자의 전 생애가 회개 되어야 함을 의미하셨다. 신약의 회개란 심정의 변화를 의미 하는 것이지 고행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셨다면 왜 이에 대한 벌이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가?” 즉 회개는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사는 것으로 정당화 되지 않고, 오직 철저한 참회, 즉 과거 자기의 삶이 청산되고 새로운 삶으로 나가는 심령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죄가 돈으로 해결된다면 돈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죄를 지어도 되는 것이고, 돈 없는 사람은 죄의 용서도 받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 루터는 이에 대한 철저한 거부로 개혁을 시작하였다. 루터 개혁의 3대 원리 중 첫 번째가 ‘오직 믿음’(only faith)이다. 우리가 구원 얻는 것은 믿음이지, 면죄부를 삼으로 죄가 사함 받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가 ‘오직 성경’(only scripture)이다. 성경만이 절대 유일의 법칙이요, 교황청이나 교회는 결코 절대일 수 없다고 선언했다. 마지막이 ‘오직 은혜’(only grace), 우리의 구원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루터가 교회 개혁을 외칠 때, 중세 교회는 돈과 성적 타락이라는 두 가지 마귀의 덫에 걸려 신음하고 있었다. 루터가 개혁의 봉화를 올린 지 4세기가 지난 오늘 교회는 이 두 덫에서 자유로운가? 물량주의와 향락주의에서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고 있는가? 오늘 교회 지도자들은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개혁은 항상 이루어져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