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업 중 가장 신학답다고 여겨졌던 과목은 조직신학 이었습니다. 조직신학이란 성경의 여러 곳에 퍼져있는 신학적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신학의 각론적 학문입니다. 조직신학 중 인간에 관하여 설명하는 부분을 인간론이라 합니다. 신학은 하나님에 대하여 공부하는 학문인데 조직신학에서 인간에 대해 공부하니까 참 신기했습니다. 신학의 중심에 자리 잡은 조직신학에서 공부하는 인간은 참 오묘한 존재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절대적 대상임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신학 전체에 대하여 공부해야 할 인간에 대한 부분은 참 적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역시 신학은 온 우주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목회의 현장에서는 정작 하나님보다 사람이 주요한 존재로 다루어집니다. 목회를 위해 사용되어지는 절대적 시간은 사람을 위함입니다. 사람 때문에 고민하고, 사람 때문에 가슴 아파하며, 사람 때문에 기뻐하고, 사람 때문에 우울해 지는 것이 목회의 현장입니다.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며 4년 내내 인간에 대해 씨름했었습니다. 심리학은 인간 사고체계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심리학을 공부하다 보니 인간의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아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학부를 졸업하면서 이정도면 사람에 대하여 통달했을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람에 대하여 너무도 자신만만했지만, 목회의 현장에서 접하는 사람은 여전히 새로운 연구의 대상이 됩니다.

저는 여전히 사람에 대해 고민합니다. 심리학적 개념으로 신학적 개념으로 사람을 바라봅니다. 어느 정도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이내 접어버려야만 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양파껍질처럼 깊은 내면에 자리 잡은 진정한 자아가 무엇인지 파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알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람입니다. 복잡한 사고체계로 이루어진 존재가 사람임을 느끼게 됩니다.

상담학을 공부할 때 내면을 파악하라고 배웠습니다. 겉으로 표현되는 모든 언어와 행동은 내면의 자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에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한 사람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목양의 대상인 성도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많은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내면에 이중의 창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들여다보면 더 깊은 내면을 가리고 있는 또 하나의 창, 그리고 드리워 있는 내면의 커튼... 목회는 또 다른 창에 드리워 있는 내면의 커튼 너머 자리 잡은 성도의 진정한 자아를 파악할 때만 감당이 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시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인 사람... 그래서 목회는 영광스럽습니다. 동시에 목회는 사람의 내면을 읽어야만 감당될 수 있는 고도의 종합기술이라는 점에서 부담스럽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