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비가 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커피와 베이글을 먹자니 행복감이 밀려옵니다. 비오는 날에 퍼지는 커피 향내는 좋다 못해 아름답다고 느껴집니다. 베이글 집을 나오는데 어떤 차가 기다립니다. 제가 가게 바로 앞에 주차를 했었기 때문에 제가 나오면 그 자리에 파킹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후진을 해야 해서 뒤를 돌아 보는데 그 차 안에 있는 여자 운전사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 얼굴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모릅니다. 비도 오는데 멀리 차를 대지 않고 가게 앞에 댈 수 있으니 그게 그렇게 행복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이 자리에 주차할 때 기분이 좋았던게 생각납니다. 킹수퍼에 갈때도 우연찮게 맨 앞자리에 주차할 공간이 있으면 괜히 그날은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사실 별거 아닌 걸로 기분이 좋아질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행복은 거창한게 아닌가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리 만큼 거창한 것을 원하곤 합니다. 거창해야 무엇을 한 것 같고, 성공한 것 같고, 대접한 것 같고, 행복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삶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소소한 것들이 얼마나 우리를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사소한 것들 때문에 얼마나 쉽게 삐지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싸우는 아이들을 말려 놓고 “너희들 왜 싸웠니?” 하고 물어 보면 진짜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울구 불고 난리였습니다.

인생에서 행복하려면 일상에서 행복해야 합니다. 일상을 잃어버리고 꿈만 좇아가거나, 성공하기 위해 죽도록 고생해도 결국 행복하지 못하다면 마치 무지개를 좇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까운데 있습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도 우리를 울리는 사람도 다 가까운 사람들 입니다.

그렇기에 먼저 가족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어야 합니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행복은 가족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거꾸로 가족의 행복은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상속에서 건강하고, 행복해야 합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걸어 가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배가 고프셨나 봅니다. 주변을 살피니 무화과 나무가 보입니다. 얼마나 잎사귀가 무성한지 모릅니다. 잘 자란 나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무를 아무리 살펴도 과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화가 나서 저주하시고 결국 그 나무는 말라서 죽어 버립니다. 사랑이 충만하신 예수님을 생각할때 잘 이해가 안됩니다. 제자들도 그렇게 느꼈는지 예수님께 왜 나무가 말라 죽었냐고 물어 봅니다. 왜 그랬을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수님이 찾은 것은 무화과 열매였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에게서 무엇인가 특별한 다른 열매를 원한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평범한 것을 원하셨습니다. 무화과 나무에게서 그냥 무화과 열매를 원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것에 충성을 다하지 못하면 아무리 풍성한 잎사귀로 옷입고 있어도 결국 허상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평범한 곳에서, 평범한 것을 찾으십니다. 지극히 평범한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지극히 평범한 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백마 타고 빵빠레와 함께 특별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온 것이 아니라, 어느 겨울날 그 일상속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일상이 거룩해야 합니다. 일상이 소중해야 합니다. 일상이 행복해야 합니다.

사무실에 앉아 창문 너머로 보이는 주차장에 비가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평온해 보입니다. 사실 저는 비오는 날보다 맑은 햇살이 비치는 날이 훨씬 좋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을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자니 행복이 더해지나 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순간 순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을 가장 소중하게 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평범한 것 하나 하나에 담겨 있는, 소소한 것 하나 하나에 숨겨 있는 그 즐거움을 만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상이 거룩하고, 즐거우며, 행복하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