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손가락을 빠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뭐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라고 줄기차게 빨아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번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과학박람회”가 열려서 많은 학생들이 “신(新) 문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현미경”이었습니다. 사물을 몇 백 배 이상 확대시키는 능력을 가진 현미경을 보려고 시골 학교 촌놈들이 마치 식사 배급을 기다리는 “거지새끼들” 마냥 운동장에 길게 늘어섰습니다. 얼굴에는 버짐이 피고, 머리는 기계충이 먹어서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다 뜯긴 개구쟁이 놈들, 콧물이 흘러내리다가 허옇게 굳어서 입술 위에 큰 도랑을 만든 아이들 그리고 머리를 양 갈래로 따고 검정치마에 검정 고무신을 콤비로 맞추어 입은 여자아이들이 두 줄로 길게 서서 곧 있게 될 현미경과 망원경 등 서울에서 내려온 과학 장비들을 구경하려고 상기된 얼굴로 재잘 재잘대며 기다리고 서 있었습니다.

데이빗 카퍼필드(David Seth Kotkin)의 “마술쇼”를 관람하려고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과학실 밖에 서 있다가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함께 들어간 저는 난생처음 “현미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담당 선생님이 유리판으로 특수하게 설계된 넓은 현미경 렌즈 위에 저의 “땟국물”이 잘잘 흐르는 손을 올려놓도록 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손을 유리판 위에 올려놓았다가 기절할 뻔 했습니다. 벽에 설치한 스크린에 온갖 병균들이 득시글거리는 손이 등장한 것입니다. 수풀들이 무성한 정글 같은데, 그것이 제 손바닥이랍니다. 보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혐오스러운 벌레들이 스물 스물 거리며 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다시는 손가락을 빨지 않았습니다. 한 동안 시간만 생기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손을 박박 씻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존심 상했던 것은 함께 과학실에 들어갔던 당시 한 미모(?)하던 나의 영원한 짝사랑 “현미”에게 나의 더러운 손이 포착된 것입니다. “아! 쪽 팔려!” 그 이후로 자연스럽게 그 아이만 보면 피해 다녔습니다. 40여 년 전의 어느 시골 깡촌 학교에서 그려진 저의 풋풋한 유년기 초상화입니다.

나중에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는데도, 가끔 그때의 영상이 되살아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이 지금 당장 당신의 현미경에 나를 비추어 보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거룩한 주의 종”이랍시고, “경건질”을 떨다가 사람들 앞에서 정나라하게 들어 날 저의 죄악 된 모습을 생각하면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모골이 송연합니다. 우리의 속마음까지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현미경으로 다 잡아내신다면, 과연 그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예수님이 “너희는 도무지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충고하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비판하는 사람이나, 비판을 당하는 사람이나 거기가 거기 아니겠습니까? “나는 똑바르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다른 사람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다가는 훗날 하나님의 현미경 앞에서 큰 낭패를 보는 날이 있지 않을까요? 정말 겸손하게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이 가을에 다시 한 번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