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새벽예배. 한국교회 부흥의 첫 번째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척교회부터 대형교회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의 신앙성숙과 더불어 부흥을 소망하는 곳에는 새벽예배의 열기가 더욱 뜨겁다. 이에 기독일보는 남가주 한인교회들의 새벽 설교를 집중 조명하여 새벽제단에서만 내리는 특별한 은혜를 나누고 개교회를 넘어 지역과 미주 전역의 부흥을 함께 소망하고자 한다.

한 주간 세상에서 바빴던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거룩한 주일을 준비하는 세리토스장로교회(담임 김한요 목사)의 새벽예배는 눈물의 바다를 이룬다. 십자가로 말미암은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또한 십자가 앞의 회개로 인하여. 개인의 경건은 물론이요 직분자들의 훈련, 특별히 자녀들과 함께 기도하는 토요새벽예배는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 스스로 목숨 걸고 지키는 예배가 되었다. “새벽기도가 힘들지만 하고나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김한요 목사의 간증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확실한 은혜의 자리임을 모든 성도가 알고 있었다.

<본문: 열왕기상 14:1~20>

본문에 나오는 여로보암은 불행한 왕입니다. 이민자들에게 왜 미국에 왔느냐고 묻는다면, 열의 아홉은 자녀교육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이민의 목적과 의미가 다음세대의 삶을 위한 소망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 왕의 자녀들은 다 저주를 받았습니다. 모두 죽어 무덤이 어디있는지도 모르게 말입니다. 그나마 유일하게 남은 아비야는 여로보암의 자녀 중 유일하게 묘실이 있는 자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비극적인 인생입니다.

구속의 은총을 말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예정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구원이 달려 있다는 차원에서 예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잘못 적용하면 팔자라는 운명론적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예정은 팔자나 운명론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여로보암의 비극은 운명이 아닙니다. 팔자소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복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동차가 도로 중앙선을 넘으면 충돌하게 돼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나 있으면 비극적인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읽으면서 도전을 받습니다다.

여로보암은 유일하게 남은 아들이 아프니까 걱정이 되어서 자기 아내를 변장시켜 선지자에게 보냅니다.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예언했던 아히야 선지자에게 가서 아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마치 점쟁이를 찾듯이 그런 마음입니다. 그런데 왜 변장해서 보냅니까? 선지자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겁니다. 은혜를 입고 왕에 등극했지만 말씀에서 벗어나자 선지자로부터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탐탁지 않았을 것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처음에는 그 목사 너무 좋았는데 이제는 싫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물론 원인 제공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은, 선지자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이 말씀을 벗어나 순종하기 싫어하는 마음의 원인, 죄를 밝혀주셨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늙어서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지만 자신을 찾아온 여인이 여로보암의 변장한 아내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이 미리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죄로 자녀들이 죽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중 아비야가 가장 복된 아이라고 할 정도로...여러보암은 말씀을 어긴 죄 값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잘못 한만큼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벌하셨다면, 자녀들이 없는 부모가 됐을 것이 틀림없다고 말입니다. 섬뜩할 정도로 무서웠습니다.그렇듯 우리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분명히 경고를 주십니다. 잘못한 것을 깨닫게 하시는 계기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내 경험으로 노하우로 인생을 꾸려갈 수 있다고, 또는 은혜 없이도 교회 다니고 비즈니스도 하고 다 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것에 속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깨닫게 하십니다. 머리에서 가슴의 길이 가장 멀다고 했습니다. 왜 이렇게 먼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내 안의 모든 것이 깨끗이 지워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생각 군데군데 하나님의 말씀을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상태에서 정확히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잘 바뀌지 않습니다.

어느 목회자들을 위한 제자훈련 세미나에는 50세 이상은 등록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목사라도 자기의 생각이 바뀌지 않아서랍니다. 혹시 50세 이상의 분들이라면 생각해 보십시오. 또 내 생각의 나이가 50세는 아닌지 돌아보십시오. 내가 언제 생각을 완전히 바꿔본 적이 있었던지. 단지 문화나 철학적인 것을 바꾸는데도 어려운데 그것이 ‘진리’의 문제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살아가는 분들이라면 분명 하나님께서는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각을 바꾸라. 정도(正道)를 가라. 신앙의 유익한 길을 가라. 파괴하는 길이 아니라 세우는 길로 가라. 쪼개는 길이 아닌 하나 되는 길로 가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깨닫지 못하면 분명 충격이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 앞에 깨닫게 해 달라고 마음의 빗장을 열 때 우리 영혼은 소생합니다.

여로보암의 아들을 쳐 가시는 장면을 보면서 나의 죄 때문에 내 아들을 쳐도 벌써 쳤겠다...라고 깨닫게 될 때, 그러나 인내로 기다리시며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 예수를 쳐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는 대속의 은혜를 깨닫게 될 때...우리는 회개치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입니까? 독생자 아들 예수님이 대신 저주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깨달았다면 가슴을 쓸어내리시고 빨리 은혜의 길로 돌아오십시오.

우리는 이런 은혜를 받으면서 사는 자들입니다. 왜 깨닫지 못하고 착각하고 살고 있습니까? 살펴보십시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면 우리 앞에 홍해를 가르시고, 시온의 대로를 열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