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영문과의 장영희 교수님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신문에서 그분의 칼럼을 읽고 고개를 끄덕인 것이 여러 번이었기 때문에 눈 여겨 보았습니다. 그 기사의 내용인즉, 어느 일간 신문에 ‘장영희의 영미 시 산책’이라는 인기 칼럼을 연재하던 중에 척추암이 발견되었고, 혹독한 암 투병을 하는 중에도 예정된 연재를 끝냈다는 기사였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저는 그 칼럼을 접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시모음집이 책으로 엮여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사다 놓고, 시간이 되는대로 몇 편씩 읽었습니다. 다 읽고, 또 읽고, 또 틈틈이 들춰보다가, 문득 교우들께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생일>과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이 책은 네 개의 선물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엮은이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뽑은 원문의 시가 백 여 편 실려 있습니다. 영미 문학사에 빛나는 시인들의 시들 중에서 엮은이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시들이 뽑혔습니다. 두 번째 선물은 원문 옆에 제시된 장 교수님의 번역시입니다. 공들여 번역한 흔적이 뚜렷합니다. 세 번째 선물은 시에 덧붙여진 엮은이의 사색입니다. 불과 열 문장 내외의 글인데, 때로는 가슴을 찡하게 하고, 때로는 빙긋이 웃게도 만들고, 때로는 정신이 번쩍 들게도 합니다. 네 번째 선물은 서양화가 김점선씨의 그림입니다. 그림책은 어린이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주, 독자들이 자신의 글을 읽고 실제의 자신보다 매우 확대된 이미지를 얻게 된다는 사실 때문에 곤혹스러움을 느낍니다. 저에게도 작지만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사색을 읽으면서, ‘참 좋은 문학가가 계시구나!’ 혹은 ‘참 좋은 학자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세상과 인생을 보는 눈이 매우 따뜻하고, 삶에 대해 매우 겸손하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결코 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으려는 점이 또한 좋았습니다. 수다스럽지 않은 점도 좋았습니다.

좋은 문학가는 능력 있는 설교가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재주로는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이 녹아든 글, 그리고 대장장이와 같은 노력으로 선택하고 연마하고 광을 낸 것 같은 깨어있는 글은 한 편의 설교보다 미치는 힘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장 교수님의 글에서 그런 힘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런 구도적인 문학가들은 영 사라지고 없고, 글 솜씨로 자신을 가리고 험하게 몸을 굴리는, 괴팍한 문학가들만 남은 것 아니냐고 한탄했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이 더 반갑고 기뻤습니다.

딸아이가 영어 시간에 난해한 시를 공부하고 있는가 봅니다. “아, 싫다, 싫어. 왜 시가 있어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나?”라고 푸념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한 마디 던집니다. “네가 시를 모르고야 어찌 인생을 알 수 있겠니? 시와 친해지도록 해라.” 진실로 그렇게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네 가지 선물을 포장한 이 책을 추천합니다. 분주하고 메마르기 쉬운 일상에 휴식처가 만들어지기를 빕니다. 그리고 그 휴식처에서 문득 다가와 마음을 만지시는 주님의 영을 만나시기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