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남가주에도 가을의 정취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한낮의 기온이 90도를 오르내리고 있지만 뜨거운 열기 속에서 감지되는 가을의 풍취가 코끝을 간질입니다. 사계절을 분간하기 어려운 곳이 남가주라 하지만 따뜻한 열대성 나무의 대표 격인 팜트리(종려나무)도 가을의 문턱에서는 특유의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있습니다. 한여름의 열기가 만들어 내었던 텁텁한 공기도 가을 특유의 산뜻함으로 새로이 단장되고 있음이 감지됩니다.

어린 시절 저는 봄이 좋았습니다. 따스한 봄의 온기는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고, 어린 마음속에 훈훈한 동심의 꽃을 피울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2,30대를 거쳐가며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여름을 저는 좋아했습니다. 특별히 사막성 기후가 가져다주는 캘리포니아 여름의 강한 열기는 열정의 삶을 추구하는 저에게 가장 이상적인 계절이었습니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바라보는 모든 것은 약동하는 꿈틀거림 바로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중년기를 통과하는 지금은 가을이 좋습니다. 청명한 하늘, 진한 갈색조의 나뭇잎들, 선선한 비... 무언가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가을의 정취. 그 속에서 저는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을을 표현하면 사색의 계절이라 했는데, 40줄에 들어서며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조화로우신 분이십니다. 사물을 창조하시되 사계절과 더불어 창조해 주신 것을 저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가을을 창조해 주신 것에 대해서는 감사에 감사를 드려야 할 부분입니다. 가을과 더불어 진지한 사고의 자리에 설 수 있으니 말입니다. 서서히 깊어가는 가을의 한복판에서 저는 인생의 의미, 그리고 방향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심리학과 신학을 통해서 인간과 하나님의 속성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지만, 이 가을의 문턱에서 저는 두 학문의 연결고리가 바로 나 자신이 됨을 깨닫습니다.

참된 인생의 의미는 하나님 안에서만 해석될 수 있으며, 인생의 가치 또한 하나님 안에서만 드러날 수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더 의미 있는 삶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더 생명력 있는 삶을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은 가을이라는 계절만이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닐까요?

정말 가을은 인생을 진지하게 만들어 주는 신비한 힘이 있나봅니다. 이 중년을 넘어서 노년기로 접어들면 아마도 겨울을 좋아하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