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선교는 협력이다. 공동사역이다. 연합사역이다. 네트워킹을 해야 한다. 미래의 전략사역이다. 요즘 많은 선교 지도자들이나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협력에 대한 주문을 하고 공문을 하달하며, 전략 세미나를 통하여 팀 사역을 하라는 열변을 토하고 공동 선언문을 채택한다. 협력의 중요성으로 말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무엇인가 허전함을 떨칠 수가 없다. 대부분의 외침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랄까? 현장에서 협력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협력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협력할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한국인들이 협력은 왜 어렵고 만나면 싸우고 혼자 하면 영웅처럼 잘 하는지, 이러한 실제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조절하는 이야기를 하면 더욱 발전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는 좀더 한 단계 수준을 높여서 대안을 가지고 이야기하여야 한다. 한 실례로 선교 지부가 협력을 하여야 하는 것이 기본인데, 왜 안 되는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살피고 분석해 볼 수 있는 검증 자료를 만들어 제시하면 어떨까?
모두가 우두머리인 사람들, 모두가 내로라는 사람들, 모두가 무엇인가 탁월하고 개성이 독특하여 이방인의 땅에 서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협력하라고 주문하면 막연하게 듣는 사람들 짜증만 날 것이 아닌가? 협력을 못하는 이들에게는 죄책감만 가중되고, 하기는 하여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원수 아닌 웬수 같은 동역자들과 무엇을 협력하며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필자는 협력이라는 정의를 새롭게 내려야 한다고 본다. 인격의 수준도 안 맞을 경우가 있다. 다 상대적인 입장에서 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나 만인의 상식의 수준에서 볼 때도 그렇다.
또한 기본적인 협력의 관계는 인간관계이다. 관계중심으로 맞추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관계만 좋게 형성한다면 그것이 친목회이지 거룩한 사역을 목표로 나가는 사명자는 아닌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적당한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 협력을 위하여 실력이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경우이다. 협력은 나름대로 은사를 활용하는 것이기에 자기의 분야에서 성실함으로 노력하면 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가 있다. 모두에게 기본기는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어 있는 경우가 의외로 심상치 않다. 그래서 고민인 경우가 많다.
협력하면 좋다. 능력이 나타난다. 서로에게 덕이 되고 서로를 붙잡는 힘이 된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이러한 상식적인 이야기는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선교사 15-20년을 하면서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한 이야기를 지금도 끓임 없이 들어주어야 하니, 어떤 때는 답답하다는 생각을 한다.
러시아에서 실제적으로 멋진 협력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은 듯 하다. 필자의 경우에 4년간 서로 다른 교단 선교사들이 모여서 협력을 시도해 보았다. 해마다 서약서를 작성하고 다짐을 하지만 복병으로 인하여 결국은 실패로 끝나버린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St.피터스버그에 미르 선교회가 다른 교단의 사역자들이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비교적 사역을 잘 하고 있다고 본다. 신 시베리아 지역에서 협력으로 사역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런 경우에도 생각할 문제가 있다. 팀 사역을 생각하기를 너는 고려인 교회하고, 나는 한인 유학생 교회하고, 다른 사람은 러시아인 교회하고, 설교 돌아가면서 하고, 공동으로 회비 내고, 이런 정도로 이해하고 협력을 말한다. 이것도 못하는 한국인 들에게 매우 귀감이 되는 일이다. 그러나 보다 폭발력을 낼 수 있는, 혼자서 할 수 없는 공동의 일, 전략적인 사역을 찾는다면 더없이 귀한 사역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러시아에서 미국 교회의 선교가 쇠퇴기에 들어가고 사역도 별 것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깊이 들어가보면 한국인들의 선교와는 차원이 다른 것을 보게 된다. 너무나 조직적이고, 협력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매우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추진한다. CCC의 러시아 전국 프로젝트는 엄청난 일이다. 각 도시를 돌면서 1개월씩 예수영화 상영을 한다. 이 일을 위하여 동원하는 현지교회와 연관을 보면 얼마나 세밀하고 전략적인지 모른다. 감탄이 나온다. 모스크바 기독대학 RAI는 크리스천 이라는 이름을 빼고 다시 교육부에 등록되어 운영하고 있다. 모스크바 북쪽에 학교를 지어서 기독교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교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협력의 묘미를 보게 되는 일이다.
현장에서 제시하는 대안1
한국 선교훈련원에서 협력 이론을 공부하여야 한다. 미국인들의 팀 사역은 비교적 잘 하고 있다. 팀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 한국은 과거사회에는 품앗이라든가 여러 방법으로 팀을 경험하였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오면서 문화적으로 모래알 사회가 되고, 유치원부터 혼자서도 잘해요 교육을 시켜서인지 팀이 잘 안 된다.
그래서 팀 이론에 대한 기초부터 지식을 쌓아 체계적인 이론(理論)을 확립하고 의식화(意識化)하는 작업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선교 후보생들이 상식의 수준을 넘어서 구체적이고 분명한 이론을 세우되, 적어도 기본적으로 1,500페이지 이상을 책을 읽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룹을 구성하여 함께 논쟁하며 이론을 확립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고 훈련하여야 한다. 한두 과목 강의로는 상식의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목표 있는 강의를 하라. 이미 나가 있는 사람들에게,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팀 사역하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잘 되겠는가? 그래서 한국 선교 훈련원의 책임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일인 것을 현장 측면에서 바라보며 강력한 훈수를 둔다.
현장에서 제시하는 대안2
협력의 문제는 역시 비행기 타기 전에 해결하여야 한다. 이미 현장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협력을 외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여러 모양으로 협력을 하고 있고, 협력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거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선교의 형태(形態)를 협력체제로 나가도록 하려면 선교 훈련생을 모집할 때부터 협력 사역에 대한 서약을 하고, 분야별(分野別)로 인재 양성 팀, 한국인이 좋아하는 교회 개척 팀, 교육선교 팀, 사회봉사 구제사역 팀 등 몇 가지 큰 주제로 구분하여 훈련생을 모집하는 것이다. 파송 교회에도 이러한 사실을 주지하고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훈련생으로 받을 수 없다는 각서까지 받아놓고 해보는 것이다.
한번 해볼 만한 일이 아닌가! 돈이 더 많이 들 수도 있지만, 한국 선교의 미래를 결정짓고 패턴을 바꾸는 중요한 일인데 말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훈련과정을 수정 보완하여 나간다면 좋은 방법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나는 본다.
협력에 대한 현장 사례들을 찾아보라. 국제 OM같은 단체는 현장을 돕고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협력해 나간다. UBF 사역자들은 현장에서 대학생들에게 도전하며 협력해 나간다. 선교 역사 속에 팀을 잘 이루어갔던 내용들을 찾아서 장단점의 문제점들을 미리 살펴보면서, 또는 팀으로 묶어 훈련을 받으면서 발생하는 갈등과 고민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있다면 이것이 팀 사역의 출발이고 실제적인 교육이 아닐까? 이러한 일은 연구하고 고민해 볼 만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각 훈련원에 제안한다.
이렇게 고도로 훈련 받은 특공대들이 현장에 들어와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도전을 준다면, 이미 늙고 타성에 젖어버린 현장 선교사들은 부끄러움에, 아니면 왕따 되지 않기 위해서 함께할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선교, 성패는 훈련원이다.
Sergei Lee(모스크바 선교사)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무엇인가 허전함을 떨칠 수가 없다. 대부분의 외침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랄까? 현장에서 협력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협력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협력할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한국인들이 협력은 왜 어렵고 만나면 싸우고 혼자 하면 영웅처럼 잘 하는지, 이러한 실제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조절하는 이야기를 하면 더욱 발전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는 좀더 한 단계 수준을 높여서 대안을 가지고 이야기하여야 한다. 한 실례로 선교 지부가 협력을 하여야 하는 것이 기본인데, 왜 안 되는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살피고 분석해 볼 수 있는 검증 자료를 만들어 제시하면 어떨까?
모두가 우두머리인 사람들, 모두가 내로라는 사람들, 모두가 무엇인가 탁월하고 개성이 독특하여 이방인의 땅에 서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협력하라고 주문하면 막연하게 듣는 사람들 짜증만 날 것이 아닌가? 협력을 못하는 이들에게는 죄책감만 가중되고, 하기는 하여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원수 아닌 웬수 같은 동역자들과 무엇을 협력하며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필자는 협력이라는 정의를 새롭게 내려야 한다고 본다. 인격의 수준도 안 맞을 경우가 있다. 다 상대적인 입장에서 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나 만인의 상식의 수준에서 볼 때도 그렇다.
또한 기본적인 협력의 관계는 인간관계이다. 관계중심으로 맞추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관계만 좋게 형성한다면 그것이 친목회이지 거룩한 사역을 목표로 나가는 사명자는 아닌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적당한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 협력을 위하여 실력이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경우이다. 협력은 나름대로 은사를 활용하는 것이기에 자기의 분야에서 성실함으로 노력하면 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가 있다. 모두에게 기본기는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어 있는 경우가 의외로 심상치 않다. 그래서 고민인 경우가 많다.
협력하면 좋다. 능력이 나타난다. 서로에게 덕이 되고 서로를 붙잡는 힘이 된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이러한 상식적인 이야기는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선교사 15-20년을 하면서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한 이야기를 지금도 끓임 없이 들어주어야 하니, 어떤 때는 답답하다는 생각을 한다.
러시아에서 실제적으로 멋진 협력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은 듯 하다. 필자의 경우에 4년간 서로 다른 교단 선교사들이 모여서 협력을 시도해 보았다. 해마다 서약서를 작성하고 다짐을 하지만 복병으로 인하여 결국은 실패로 끝나버린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St.피터스버그에 미르 선교회가 다른 교단의 사역자들이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비교적 사역을 잘 하고 있다고 본다. 신 시베리아 지역에서 협력으로 사역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런 경우에도 생각할 문제가 있다. 팀 사역을 생각하기를 너는 고려인 교회하고, 나는 한인 유학생 교회하고, 다른 사람은 러시아인 교회하고, 설교 돌아가면서 하고, 공동으로 회비 내고, 이런 정도로 이해하고 협력을 말한다. 이것도 못하는 한국인 들에게 매우 귀감이 되는 일이다. 그러나 보다 폭발력을 낼 수 있는, 혼자서 할 수 없는 공동의 일, 전략적인 사역을 찾는다면 더없이 귀한 사역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러시아에서 미국 교회의 선교가 쇠퇴기에 들어가고 사역도 별 것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깊이 들어가보면 한국인들의 선교와는 차원이 다른 것을 보게 된다. 너무나 조직적이고, 협력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매우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추진한다. CCC의 러시아 전국 프로젝트는 엄청난 일이다. 각 도시를 돌면서 1개월씩 예수영화 상영을 한다. 이 일을 위하여 동원하는 현지교회와 연관을 보면 얼마나 세밀하고 전략적인지 모른다. 감탄이 나온다. 모스크바 기독대학 RAI는 크리스천 이라는 이름을 빼고 다시 교육부에 등록되어 운영하고 있다. 모스크바 북쪽에 학교를 지어서 기독교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교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협력의 묘미를 보게 되는 일이다.
현장에서 제시하는 대안1
한국 선교훈련원에서 협력 이론을 공부하여야 한다. 미국인들의 팀 사역은 비교적 잘 하고 있다. 팀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 한국은 과거사회에는 품앗이라든가 여러 방법으로 팀을 경험하였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오면서 문화적으로 모래알 사회가 되고, 유치원부터 혼자서도 잘해요 교육을 시켜서인지 팀이 잘 안 된다.
그래서 팀 이론에 대한 기초부터 지식을 쌓아 체계적인 이론(理論)을 확립하고 의식화(意識化)하는 작업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선교 후보생들이 상식의 수준을 넘어서 구체적이고 분명한 이론을 세우되, 적어도 기본적으로 1,500페이지 이상을 책을 읽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룹을 구성하여 함께 논쟁하며 이론을 확립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고 훈련하여야 한다. 한두 과목 강의로는 상식의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목표 있는 강의를 하라. 이미 나가 있는 사람들에게,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팀 사역하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잘 되겠는가? 그래서 한국 선교 훈련원의 책임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일인 것을 현장 측면에서 바라보며 강력한 훈수를 둔다.
현장에서 제시하는 대안2
협력의 문제는 역시 비행기 타기 전에 해결하여야 한다. 이미 현장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협력을 외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여러 모양으로 협력을 하고 있고, 협력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거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선교의 형태(形態)를 협력체제로 나가도록 하려면 선교 훈련생을 모집할 때부터 협력 사역에 대한 서약을 하고, 분야별(分野別)로 인재 양성 팀, 한국인이 좋아하는 교회 개척 팀, 교육선교 팀, 사회봉사 구제사역 팀 등 몇 가지 큰 주제로 구분하여 훈련생을 모집하는 것이다. 파송 교회에도 이러한 사실을 주지하고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훈련생으로 받을 수 없다는 각서까지 받아놓고 해보는 것이다.
한번 해볼 만한 일이 아닌가! 돈이 더 많이 들 수도 있지만, 한국 선교의 미래를 결정짓고 패턴을 바꾸는 중요한 일인데 말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훈련과정을 수정 보완하여 나간다면 좋은 방법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나는 본다.
협력에 대한 현장 사례들을 찾아보라. 국제 OM같은 단체는 현장을 돕고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협력해 나간다. UBF 사역자들은 현장에서 대학생들에게 도전하며 협력해 나간다. 선교 역사 속에 팀을 잘 이루어갔던 내용들을 찾아서 장단점의 문제점들을 미리 살펴보면서, 또는 팀으로 묶어 훈련을 받으면서 발생하는 갈등과 고민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있다면 이것이 팀 사역의 출발이고 실제적인 교육이 아닐까? 이러한 일은 연구하고 고민해 볼 만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각 훈련원에 제안한다.
이렇게 고도로 훈련 받은 특공대들이 현장에 들어와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도전을 준다면, 이미 늙고 타성에 젖어버린 현장 선교사들은 부끄러움에, 아니면 왕따 되지 않기 위해서 함께할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선교, 성패는 훈련원이다.
Sergei Lee(모스크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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