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의 희망으로 떠오른 이승훈이 행운의 금메달을 추가했다.

23일(현지시간) 이승훈은 캐나다 밴쿠버의 리치먼드 올림픽 오발에서 벌어진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0미터 결선 레이스에서 12분58.55초의 올림픽신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날 이승훈은 같이 레이스를 돈 네덜란드 선수를 한 바퀴 이상 따돌릴 정도로 역주를 거듭했다. 그럼에도 금메달은 힘들어보였다. 마지막 조 주자 네덜란드의 스벤 크라머가 월등한 기량으로 이승훈에 4.05초차 앞선 기록으로 골인했다.

그런데 비로 이 대목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판정이 내려졌다. 레이스 도중 코스를 잘못 탄 크라머에게 실격처리가 내려진 것이다. 전광판에는 한동안 1위 선수가 발표되지 않아 긴장감이 고조됐고 심판들이 모여 상의한 결과 크라머의 최종실격이 결정되면서 이승훈은 행운이 깃든 값진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5,000미터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금메달을 땄던 크라머는 10,000미터에서도 다른 선수들을 크게 앞지른 기량임에 틀림없었지만 코너에서 아마추어도 잘 범하지 않는다는 어이없는 코스 진입실수를 저질러 스스로 자멸하고 말았다. 아웃코스에서 인코스로 진입하는 지점에서 경계선에 오른발을 살짝 걸치는 모습이 TV중계화면에 수차례 포착됐다.

이로써 이승훈은 5,000미터 은메달에 이어 10,000미터 금메달로 멀티메달(2개 이상 메달획득) 대열에 합류, 동기이자 친구인 모태범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스피드스케이팅의 마라톤으로 일컬어지는 남자 10,000미터에서 아시아선수가 금메달을 따기는 이승훈이 처음이다. 이승훈은 아시아선수들에게는 불가능한 종목으로 여겨지던 5,000미터에서도 첫 메달을 신고한 바 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올림픽의 새 역사를 연신 창조 중인 이승훈은 올해 나이 불과 만 21세다.

또한 이승훈은 지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요쳄 우이트데하게(12분59.92초)가 세운 올림픽기록을 0.37초차로 넘어서 한동안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0,000미터의 최고기록 보유자는 이승훈의 이름으로 새겨지게 됐다.

개인기록에서도 종전 13분21.04초를 무려 22초차 앞당긴 그야말로 기적의 금빛 레이스였다.

정재호 기자, kemp@uko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