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돈과 하나님의 나라, 돈을 하나님게 드리는 것에 대해 상당히 많이 언급하고 있다. 성경엔 믿음과 기도에 관한 구절이 대략 500절 가량 나오는데 반해 돈에 관해서는 2000구절 이상 언급되어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38개의 비유 중에 무려 16개가 돈에 대한 것이다. 성경에도 주님도 돈에 대해 많이 언급하신 것은 돈 문제를 바로 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주님이 지속적으로 채워주심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놀라운 복을 누리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게 있다. 신앙생활에서 돈의 사용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누구든지 돈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 살기 어렵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드림에 대해 예수님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한 과부 여인이 동전 두개를 헌금하는 것을 보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셨다. 이건 또 무슨 계산법인가? 오 달러를 헌금한 사람이 오백 달러를 헌금한 사람보다 많이 했다고?
사람들은 드린 액수로 판단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얼마나 드렸는가 보다 드리지 않고 남겨둔 것이 얼마나 되는가를 보고 평가하셨다. 통장에 천달러를 가진 사람이 오백달러를 드렸다면, 자기를 위해 오백달러가 남아 있는 것이다. 이사람은 절반을 드린 것이다. 반면에 지갑에 오 달러가 전부인 사람이 오달러를 드렸다면 자기를 위해 남아 있는 게 없다. 가지고 있는 전부를 드린 셈이다.
하나도 남겨두지 말고 다 드리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를 일깨워준다. 하나님께 얼마나 힘껏 드리느냐를 생각할 때 드리지 않고 남겨 둔 것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드리지 않고 나중을 위해 쌓아 놓는 것이 많아지면 주님이 지속적으로 체워주시는 기쁨을 누리기 어렵다.
예수님이 연보궤 옆에 앉아 계시는 모습은 상상이 안가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셨다. 매번 그렇게 하셨을리 없지만, 이번에는 누가 얼마를 내는지 지켜보신 듯하다. 주님이 그날 그렇게 하신 것은 누가 돈을 많이 드리는지 보려는 게 아니고 제자들에게 드리는 삶을 바로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었다. 헌금함에 드릴 때마다 주님이 곁에 앉아 보고 계시다고 생각하면 헌금생활이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주님이 지속적으로 채워주심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놀라운 복을 누리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게 있다. 신앙생활에서 돈의 사용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누구든지 돈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 살기 어렵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드림에 대해 예수님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한 과부 여인이 동전 두개를 헌금하는 것을 보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셨다. 이건 또 무슨 계산법인가? 오 달러를 헌금한 사람이 오백 달러를 헌금한 사람보다 많이 했다고?
사람들은 드린 액수로 판단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얼마나 드렸는가 보다 드리지 않고 남겨둔 것이 얼마나 되는가를 보고 평가하셨다. 통장에 천달러를 가진 사람이 오백달러를 드렸다면, 자기를 위해 오백달러가 남아 있는 것이다. 이사람은 절반을 드린 것이다. 반면에 지갑에 오 달러가 전부인 사람이 오달러를 드렸다면 자기를 위해 남아 있는 게 없다. 가지고 있는 전부를 드린 셈이다.
하나도 남겨두지 말고 다 드리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를 일깨워준다. 하나님께 얼마나 힘껏 드리느냐를 생각할 때 드리지 않고 남겨 둔 것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드리지 않고 나중을 위해 쌓아 놓는 것이 많아지면 주님이 지속적으로 체워주시는 기쁨을 누리기 어렵다.
예수님이 연보궤 옆에 앉아 계시는 모습은 상상이 안가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셨다. 매번 그렇게 하셨을리 없지만, 이번에는 누가 얼마를 내는지 지켜보신 듯하다. 주님이 그날 그렇게 하신 것은 누가 돈을 많이 드리는지 보려는 게 아니고 제자들에게 드리는 삶을 바로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었다. 헌금함에 드릴 때마다 주님이 곁에 앉아 보고 계시다고 생각하면 헌금생활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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