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사람이 자원이다. 선교의 중요한 사명을 천사들이 아닌 사람들에게 주셨다는 사람을 찾아내어 훈련하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몫이다.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 안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저들을 구분해 내는 일과 저들에게 훈련의 기회를 주어 일꾼으로 만들어 내는 일은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저들을 따로 세워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회중들을 목회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다.

선교지를 찾아온 서울의 한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화제는 한국 교회의 부목사에 대한 예우문제였다. 재정적 예우도 중요하지만 부목사들을 대하는 담임목사의 관심을 이야기했다. 부목사가 담임목사를 위한 조력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저들의 미래 발전을 위한 담임 목사의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했다. 부목사도 목회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ㅡ는 것이다. 아니, 목회 대상 제 1순위에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지하는 바이지만 한국은 교회가 포화상태에 있다. 교회 수가 너무 많아 교회의 힘이 약하기만 하다. 작은 교회들은 목회자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여유가 없다. 다른 일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제는 부목사들이 한 교회의 전문 분야에서 평생을 섬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돕는 것이라 생각된다. 담임목사는 부목사를 잠시 있다 가는 인턴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만들어야 한다. 신학교는 그런 교육을 시키지 못한다. 나중에 저들이 개척 교회를 한다든지, 선교사가 되려고 할 때 축복하고 파송하고 돌보는 대상이 될 수 있다면, 그들은 담임목사에 대해 끊을 수 없는 동역자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사실 예수님의 관심 대상은 대중보다는 제자들이었다고 봐야 한다. 그분은 대부분의 공생애를 제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셨고, 저들을 훈련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셨다. 저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켰을 때 세상을 변화시킬 중요한 인물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결국은 저들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셨다. 사도행전 17장 6절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Turned world upside down)"이라는 말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저들의 영향력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은 신학교를 졸업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지금 대학들은 학생이 모자라는 형편인데도 신학교만은 입학생들이 넘친다.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학원이 있다는 이야기는 한국만 가지고 있는 진풍경이다. 그런데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 많다. 이들은 갈 데도 없고 일할 곳도 없다. 교회를 안 세워 주는 것만도 고마울 정도로 교회가 많이 있다. 이제는 개교회에서의 봉사보다 우주적 교회를 봉사해야 할 사람들로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은 목회자들로 차고 넘친다. 갈 곳이라고는 세계밖에 없다. 세계의 수용능력은 무한정하다. 문제는 신학교에서 무한정한 세계에서 일할 사명과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만들어 내고 있느냐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의 신학교육은 지나치게 편협적이고 개교회 성장주의적이라고 본다. 이제는 세계를 향한 선교적 신학으로 바꾸어야 한다. 문화 인류학, 커뮤니케이션, 언어학, 국제학, 사회학 등을 커리큘럼에 대대적으로 넣어 국제적 감각이 있는 목회자, 선교사로 길러내야 한다. 세계는 그러한 사람들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해 가고 있기 때문에 이 변화에 부흥하는 커리큘럼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