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인간의 공통적 관심사 중 하나는 고난의 문제입니다. 고난 중에서도 성도가 이 세상에서 믿음 때문에 겪는 저항 또는 괴로움을 시험 또는 환난이라고 말합니다. 똑같은 음식물 쓰레기를 땅 속에 묻을 때 어떤 땅은 더 나빠지기도 하지만, 어떤 땅은 오히려 거름이 되어 더욱 기름지게 되기도 하듯이, 환난 자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대하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1. 성도가 이 환난을 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때때로 정면 대결을 각오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생의 시련들로부터 도피나 면제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인내와 소망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예수님(요 16:33)도 바울(행 14:22)도 강조한 바 있습니다.

2. 환난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반드시 그것이 가져다 주는 축복이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성도는 내세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할 뿐 아니라 현재의 모든 환란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롬 5:3~4). 하나님의 은혜는 때때로 고난이라는 보자기에 싸여서 우리에게 배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고통의 신학자 C. S. Lewis는 환난을 가리켜 '변장된 축복(Blessing in disguise)'이라고 말합니다.

3. 성도가 환난을 통과할 때 그 환난은 우리에게서 왕겨와 같은 불순물들을 제거시켜 순화시키는데 도움을 줍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

4. 또한 아무리 극심한 환난이라도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롬 8:35~39) 정원사가 병든 가지를 치기 위해 가위를 나무에 대는 순간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나무와 가장 가깝게 있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평안할 때보다도 고통의 시간에 더욱 가까이 계시는 분이십니다.

5. 환난을 통과할 때 아무리 힘들어도 너무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현상하기 전에 빛이 철저하게 차단된 암실을 거쳐야 합니다. 혹시 지금 하나님이 나 자신을 어두운 암실로 데려가셨다고 생각되십니까? 절망하지 마십시오. 지금 하나님이 작업 중이십니다. 다 될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삶에 새겨져 있는 그분의 형상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로 흑음에 거하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래된 자 같게 하셨도다. ...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6, 26)"

오랜 질병, 실직, 사랑하는 이의 죽음,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등과 같은 시련을 겪을 때 당신의 믿음을 잃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 시련 때문에 당신은 더 성숙해지고, 굳세게 될 것입니다.

강연: 허연행 목사(안디옥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