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역이다. 처음 교회 나올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한결 같은 사람을 보면, “저 한 사람도 변화시키지 못하고 뭐하나” 답답할 때가 있다.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기도 밖에 없다. 기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여 표적과 능력이 나타나고 그것이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기도하면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도 바뀌고, 인생의 목적도 바뀌고, 습관도 바뀐다. 그래서 기도해야 산다.
교회를 ‘소원성취하기 위해 비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 나오는 사람에겐 어쩌면 당연한지 모르겠다. 사실 종교가 그런 것 아닌가. 기도에 하나님께 비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은혜받아 복음을 깨닫고 교회가 뭔지 알만한 분들이 계속 그런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새해엔 충성된 제자로 변화되길 기대한다.
세상이 너무 막나간다고 걱정하는 교인들이 있다. 괜한 걱정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어디 요즘 세대만 갑자기 그런 것인가. 아담이 범죄한 이후 사람들은 쭉 그래왔다. 이 세대가 더 악하게 보인다면, 이 세대의 교인들이 그리스도인답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가 교회당에 찾아오는 사람들조차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걸 반성해야 한다.
반성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한 때 죄의 종노릇하며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사기치고 훔치고 술에 취해 방탕하게 살며, 세상의 영광과 돈과 출세를 위해 부정을 저지른 사람들이 교회 나와 변화되면 세상도 변할 것이다. 그들이 또한 세상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데는 학문적 지식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교회당 안에서 조차 설교나 교육만 가지고는 교인들이 잘 변하지 않는다. 뒤 따르는 표적이 말씀을 증거해줘야 한다(히2:4). 표적은 지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겐 유치한 것 같아도 이 유치한 것이 교회를 살리는 힘이다. 복음이 선포될 때 성령께서 개입하셔야 강팍한 사람들이 굴복한다.
잠자는 사람에게 칼빈이나 루터가 와서 강의한다고 잘 알아듣겠는가? 소경에게 김홍도의 진경산수화를 보여준다고 감동하겠는가? 먼저 잠을 깨우고 눈을 뜨게 해야 듣고 볼 수 있다. 성령님을 통해 나타나는 표적과 기적은 영적으로 잠든 소경을 깨어나게 만든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목회에서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영적으로 침체된 교회 현실을 보고 탄식하며 부르짖는 사람들이 일어나야 한다. 교회사를 보면, 영적부흥기 마다 성령의 개입을 간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들면 돌아오는 건 절망뿐이다. 한 쿼러가 지났는데 목장에 새가족이 한 명도 늘지 않은 목자들은 엎드려 기도부터 해야 한다. 죽어라고 변하지 않는 양을 둔 목자도 하나님께 나와 기도해야 한다. 목장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게 다가 아니다.
새해 우리 교회의 화두는 기도, 성령의 능력, 변화다. 주님 만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왜 교회 나오나? 기도회에 나와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다면 천국은 뭐하러 가려는가? 천국은 자기 맘대로 사는 곳이 아니라 한 순간도 빠짐없이 주님과 함께 하나님 뜻대로 사는 곳이다. 주님과 함께 하는 덴 관심 없고 그냥 천국의 복락만 누리려는 얌체를 누가 천국 들여보내주겠는가?
제대로 된 교회라면 기도회에 교인들이 몰려와야 한다.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이 모이질 않아 기도회를 중단할지 고민하는 목회자가 있다고 한다. 전에 우리 교회에서도 주중에 셀모임을 하기 때문에 금요기도회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다른 요일로 옮기는 건 몰라도 기도회를 없애자는 건 마귀의 속삭이다.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의 특징을 하나만 들라면 ‘기도하는 사람’이다.
우리 교회가 이 만큼 유지해온 것은 금요일에 나와 기도하는 사람들 덕이다. 지금 우리가 가진 재산은 기도 뿐이다. 늘푸른교회는 기도해야 산다. 우리는 기도로 여기까지 왔다. 교회당에 출석하는 사람조차 변화시키지 못하는 무기력한 교회가 되지 않도록 기도하자.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하고, 성령이 역사하면 잠든 영혼들이 깨어 나게 될 것이다. 개인도 가정도 목장도 교회도‘기도해야 산다’
교회를 ‘소원성취하기 위해 비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 나오는 사람에겐 어쩌면 당연한지 모르겠다. 사실 종교가 그런 것 아닌가. 기도에 하나님께 비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은혜받아 복음을 깨닫고 교회가 뭔지 알만한 분들이 계속 그런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새해엔 충성된 제자로 변화되길 기대한다.
세상이 너무 막나간다고 걱정하는 교인들이 있다. 괜한 걱정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어디 요즘 세대만 갑자기 그런 것인가. 아담이 범죄한 이후 사람들은 쭉 그래왔다. 이 세대가 더 악하게 보인다면, 이 세대의 교인들이 그리스도인답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가 교회당에 찾아오는 사람들조차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걸 반성해야 한다.
반성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한 때 죄의 종노릇하며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사기치고 훔치고 술에 취해 방탕하게 살며, 세상의 영광과 돈과 출세를 위해 부정을 저지른 사람들이 교회 나와 변화되면 세상도 변할 것이다. 그들이 또한 세상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데는 학문적 지식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교회당 안에서 조차 설교나 교육만 가지고는 교인들이 잘 변하지 않는다. 뒤 따르는 표적이 말씀을 증거해줘야 한다(히2:4). 표적은 지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겐 유치한 것 같아도 이 유치한 것이 교회를 살리는 힘이다. 복음이 선포될 때 성령께서 개입하셔야 강팍한 사람들이 굴복한다.
잠자는 사람에게 칼빈이나 루터가 와서 강의한다고 잘 알아듣겠는가? 소경에게 김홍도의 진경산수화를 보여준다고 감동하겠는가? 먼저 잠을 깨우고 눈을 뜨게 해야 듣고 볼 수 있다. 성령님을 통해 나타나는 표적과 기적은 영적으로 잠든 소경을 깨어나게 만든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목회에서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영적으로 침체된 교회 현실을 보고 탄식하며 부르짖는 사람들이 일어나야 한다. 교회사를 보면, 영적부흥기 마다 성령의 개입을 간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들면 돌아오는 건 절망뿐이다. 한 쿼러가 지났는데 목장에 새가족이 한 명도 늘지 않은 목자들은 엎드려 기도부터 해야 한다. 죽어라고 변하지 않는 양을 둔 목자도 하나님께 나와 기도해야 한다. 목장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게 다가 아니다.
새해 우리 교회의 화두는 기도, 성령의 능력, 변화다. 주님 만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왜 교회 나오나? 기도회에 나와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다면 천국은 뭐하러 가려는가? 천국은 자기 맘대로 사는 곳이 아니라 한 순간도 빠짐없이 주님과 함께 하나님 뜻대로 사는 곳이다. 주님과 함께 하는 덴 관심 없고 그냥 천국의 복락만 누리려는 얌체를 누가 천국 들여보내주겠는가?
제대로 된 교회라면 기도회에 교인들이 몰려와야 한다.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이 모이질 않아 기도회를 중단할지 고민하는 목회자가 있다고 한다. 전에 우리 교회에서도 주중에 셀모임을 하기 때문에 금요기도회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다른 요일로 옮기는 건 몰라도 기도회를 없애자는 건 마귀의 속삭이다.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의 특징을 하나만 들라면 ‘기도하는 사람’이다.
우리 교회가 이 만큼 유지해온 것은 금요일에 나와 기도하는 사람들 덕이다. 지금 우리가 가진 재산은 기도 뿐이다. 늘푸른교회는 기도해야 산다. 우리는 기도로 여기까지 왔다. 교회당에 출석하는 사람조차 변화시키지 못하는 무기력한 교회가 되지 않도록 기도하자.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하고, 성령이 역사하면 잠든 영혼들이 깨어 나게 될 것이다. 개인도 가정도 목장도 교회도‘기도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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