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간 지내오는 동안 올해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2009년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 것입다. 그러나 왜 고통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2010년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내 마음이 항상 0에서 시작할 때 0+1이 돼도 기쁜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고 겸손하게 다음 해를 맞이 하고 싶습니다."
PGA 최경주 프로가 밝힌 새해 다짐이다. 최경주 프로는 29일 GKYM선교대회에서 미국에 와서 겪은 어려움과 그동안의 신앙여정을 간증했다. "선교대회에 와달라는 제안을 받고 어제까지 새벽기도로 준비했다."는 최 프로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유머 넘치는 언변으로 청중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고달프고 운동이 힘들 때 지켜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기도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보답하고자 일하니까 지치지 않는다."며 "다음 해 더 좋은 성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전했다.
최경주 선수는 간증 후 10승을 기원하는 참석자들의 안수 기도를 받았다. 최경주 선수는 우승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했고, "축복 기도 해주기 원하는 사람들은 다 강단위로 올라오라"는 김혜택 목사의 말에 2백명에 가까운 참가자들이 올라가 최 선수를 위해 뜨겁게 기도했다.
다음은 소그룹 선택 강의에서 최 프로가 참석자들과 나눈 문답이다.
-양용은 선수를 전도할 생각이 있는가?
예수를 믿을 수 있나 없나 한 번 찔러 봤는 데 돌이다. 감자면 조금이라도 들어갈텐데 아직은 아니다. 기도 중에 있다. 같이 있으면서 좋은 시간을 가졌다. 어느 순간 양 선수의 마음이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기다리고 기도하고 있다. 확실하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타이거 우즈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다.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전화 한 통 못하는 게 더 마음이 아프다. 몇 년 전 전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는 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 친구가 골프계를 이정도로 세워놓은 것이기 때문에, 빨리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운동선수들은 슬럼프를 겪기도 하고 굴곡이 있을텐데 어떻게 극복하나?
심리적으로 내 마음의 상태를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중요하다. 보다시피 내 인상이 괴팍하다.(웃음) 카메라가 오면 웃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얼굴을 확 피면 상대가 말을 걸지만, 말을 걸면 골프에 집중이 안된다.
상대방이 말을 하고 싶어도 내게 말을 못거니까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계속 경기를 진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할 때 그 마음을 그대로 18홀까지 간다. 가다가 (마음이)산만해지거나 올라가면 문제가 된다.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동일한 마음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주와 가는 길' 같은 찬송을 한다든지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잘될 때가 있고 안될 때도 있고 그런 거지. 항상 기도하라는 싸인이구나' 하는 마음을 가진다. 안될 때도 그렇게 속상하지 않다. 계속해서 노력을 하고 답을 찾으려고 하고 더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운동 선수들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한다.
-연습은 얼마나 오래 하는가?
보통 노동법을 생각하면 8시간 일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8시간 공을 칠 때 '8시간을 넘긴 연습은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따지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다.
무엇보다 연습할 때 집중해서 한다. 공치다가 커피마시고 공치다가 나무 그늘에서 쉬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또 공이 내려올 때 (어딘가에)걸릴 수도 있고 쳐박힐 수도 있고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 한 샷을 위해 4-500개 친다. 하나를 터득하기 위해 많은 연습을 거친다.
경기를 위해서는 세 가지 믿음이 필요하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연습하는 것, 지인들이 주는 믿음과 격려, 하나님이 주는 특별한 믿음이다. 이 세 가지가 나를 지켜주는 믿음이다.
이 세 가지는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나 적용이 되는 것 같다.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할 것은 안하고 기도만 하면 들어주지 않으신다. 세 가지가 다 필요하다.
이 세 가지가 딱 하나가 되어 내 생활에 흡수되면, 아무리 큰 어려움이 와도 회복력이 굉장히 빠르다.
-기억에 남는 라운딩이 있는지?
2004년도 라운딩이 있다. 그 전날 탑에 있다가 11번 홀로 내려오는 데 중간에 부인이 편하게 치라고 괜찮다고 그러더라. 그런데 내 자신이 편하지 않았다. 샷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위로해주는 사람은 와이프 밖에 없네' 하며 내려갔다.
약간 축축한 곳이라서 공에 흙이 묻을 것 같았다. 내려가면서 '주님, 오늘만 공이 깨끗하게 해주세요' 기도했는데, 보니까 공이 깨끗하더라. '오늘은 파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캐디와 거리를 재는 데, 218야드인가 그랬다. 5번을 쳤다. 가장 자신있는 샷으로 쳤다. 그 홀은 물 쪽으로 흐르게 기울어져 있었는데 똑바로 들어갔다.
-골프선수가 꿈이었나?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는 학교 선생님이 굉장히 단순하게 "역도할 사람 나와라" 해서 나왔더니 "너는 이쪽으로 가 저쪽으로 가" 해서 '이 쪽은 골프부다'해서 골프부가 됐다. 그것이 내 운명이다.
반강제였지만 돌아보면 하나님의 선택이었다. 공 주울 사람이 없으니까 공만 주웠다. 채를 하나씩 주고는 '잘 치면 공 줍는 것에서 열외'라는 말에 굉장히 열정이 생겼다. 딱 쳤는 데 내 공만 넘어가 버렸다. 개울을 넘어서 한참 가서 공동묘지 앞에서 공이 멈췄다.
공을 치는 순간 내 마음 속에 불씨 하나가 왔다. 그 처음 샷의 느낌, 감동이 아직도 마음 속에 살아있다. 그랬기 때문에 골프를 하느냐 마느냐 말이 필요없었다. 그 불을 꺼뜨리고 싶지 않았다. 내 스스로가 골프에 빠져서 미쳤던 것이다.
지금까지 그 마음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고 유지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 많은 동료들에게도 그것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누가 시켜서 하면 절대로 안된다. 그것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혜가 있어야 가능하다.
-미국에서 골프를 시작할 때 에피소드가 있는지
2000년도 시작할 때, 밤 11시 공항 떨어지자 마자 종이 하나를 주면서 골프장을 찾아가라고 했다. 영어도 못하고 길도 모르는 데, 등에 땀에 나고 머리가 서는 것이 느껴졌다.
1시간을 찾아가도 안나와서 물어보니까 내가 반대로 왔던 것이다. 겨우 길을 찾았는 데 골프장 입구를 못 찾아서 한참을 헤맸다. 길이 다 나와있는 한국 길이랑 다르더라.
그 때 영어도 못하고, 길도 못 찾고, 공도 안쳐지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너는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다 도와주실 것이다' 라는 말씀만 붙들고 살았다. 신앙이 없었다면 이미 한국에 돌아가서 이렇게 저렇게 살면서 PGA에 남아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은 1%도 없었다. 힘들 때가 있었지만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잡아주셨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해야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신앙이 뜨겁게 된 계기가 있나
난, 지금의 아내를 만날 때 교회를 가지 않으면 데이트를 안해준다고 해서 따라간 사람이다. 종교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고, '그냥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슬비에 옷 젖듯이 그렇게 신앙이 생겼다. 성찬식을 하려고 하는 데 아내가 옆구리를 찌르면서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먹으면 부정탄다'고 그러는 바람에 7년 동안 먹지 않았다.
97년 미국에 가겠노라고 선포하고 나서 작정했다. 교회에서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는데, 세례를 받는 순간부터 내 마음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사실, 아시아에서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우승을 한번도 안주셨다. 세례를 받고 나서 처음으로 일본에서 우승하게 됐다. 그리고 일주일 지나고 또 우승했다. 징검다리 우승을 하니까 갑자기 6위로 뛰게 됐다. 그 때가 첫번째 신앙의 돌파구였다. 당시 일본에서의 우승이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다.
그 때 그 불씨가 없었다면, 그리고 PGA투어에서 신앙이 없었다면 미국 생활을 못했을 것이다. 만약에 그때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골프장 입구도 못찾는 나의 존재가 PGA 살아남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그 때 약이 올랐다. '무조건 살아남아야 되는데'라는 약 말이다. 그 특별한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말씀으로 기도하면서 이기고, 집회라는 집회는 꼭 찾아가서 예배드리고 시합했다.
주일예배는 못드리니까 수요예배는 꼭 참석하려고 했다.
-2010년 목표는 무엇인가
10승을 채우는 것이 목표다(현재까지 7승).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최경주 선수 간증
중학교 체육 시간에 역도부와 골프부를 나누는 줄에서 우연히 골프부 줄에 선 나는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 처음 골프공을 때린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골프 연습장에 깔린 5천여개의 공을 다 주어담아야 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갑자기 "공을 쳐서 망을 넘기면 공 줍기를 빼준다"고 말씀하시는게 아닌다. 그 말에 난생 처음으로 휘두른 골프채, 그것에 맞은 공의 느낌이 내 마음 속에서 꺼지지 않고 타고 있는 '불씨'로 남았다. 골프가 돈이 많이드는 운동이라 모두 말렸지만 '돈 안들이는 골프'를 하겠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삭막한 곳, 절망을 뼈져리게 느끼게 하는 그 곳에서 절망을 뚫고 일어서는 것은 비로소 '부활의 통로'가 된다. 나에게는 '광야'가 결국 '부활의 통로'가 된 것이다.
1999년 세례를 받고 2주 후에 일본투어 기린 오픈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가방에 묵직하게 든 현금 3천만원을 들고 버스를 탔다. 일본 여관은 방이 작다. 그렇게 작은 방에서 집사람과 나는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너무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궁리 끝에 돈가방을 침대 아래 넣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잤다.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미국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영어가 아니예요. 골프장 정문을 찾는 것입니다."
그 우베고산 오픈 우승 후 미국 PGA투어 테스트를 통과했다.
2000년까지 성적이 나빠 한국에 들어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경기 중에 아내와 함께 가까운 한인 교회를 찾아 기도를 드렸다. 좋은 성적을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 마음을 비우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마지막 홀에서 몸이 떨려 칠 수 없는 상황에서 전날 한 기도를 기억했다. 그리고 다시 시도했다. 기적처럼 긴장이 풀리며 공은 홀로 들어갔다. PGA 티켓을 딴 것이다. 그 날 난 큰소리로 울었다. 아내도, 캐디도 같이 울었다. 그 때의 한 타는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나는 모태신앙의 크리스천은 아니다. 아내 덕분에 믿음을 갖게 되었다. 1993년 처음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연애 당시 교회에 안가면 데이트를 안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1999년 온누리교회에서 하용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동안 7승을 올렸다. PGA투어에는 정말 많은 선수가 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일곱번 우승을 했나 싶을 정도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건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래도 기도의 소중함을 일찍이 깨우쳤다. 모두 아내 덕분이었다. 아내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는 대로 그냥 했을 뿐인데 시간이 흐르자 '기도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번은 시합을 치르고 숙소로 돌아와 누웠다. 아내가 "듣고만 있어라. 기도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제 엄지발가락을 잡고는 침대 밑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나에겐 쉬라고 하고 말이다. 그 때 마음이 편안해 지는 걸 느꼈다.
스프링은 늘어났다가 '탁' 놓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스프링은 이제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내가 기분이 나빴든 좋았든 항상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나 자신을 낮추면서 말이다. 이것이 바로 프로골퍼로서는 '마인드 컨트롤'이고, 신앙인으로서는 '마음의 평안'이라는 것이다.
'최경주 재단'을 통해 어려운 여건의 아동과 청소년 후원, 북한에 나무심기, 주니어 골퍼 육성, 자선 파티를 통한 새로운 기부 문화 형성 등을 위해 애쓰고 마련하고 있다.
이런 나눔을 통해 나는 에너지를 얻는다. 나눔을 통해 내가 좀 더 가난해 지는 것 같다. 내가 더 낮아지는 것 같다.
"여러분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요. 그리고 여러분이 가진 비전을 바라보세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비전 속에서 반드시 여러분은 길을 찾으실 것입니다."
PGA 최경주 프로가 밝힌 새해 다짐이다. 최경주 프로는 29일 GKYM선교대회에서 미국에 와서 겪은 어려움과 그동안의 신앙여정을 간증했다. "선교대회에 와달라는 제안을 받고 어제까지 새벽기도로 준비했다."는 최 프로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유머 넘치는 언변으로 청중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고달프고 운동이 힘들 때 지켜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기도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보답하고자 일하니까 지치지 않는다."며 "다음 해 더 좋은 성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전했다.
최경주 선수는 간증 후 10승을 기원하는 참석자들의 안수 기도를 받았다. 최경주 선수는 우승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했고, "축복 기도 해주기 원하는 사람들은 다 강단위로 올라오라"는 김혜택 목사의 말에 2백명에 가까운 참가자들이 올라가 최 선수를 위해 뜨겁게 기도했다.
다음은 소그룹 선택 강의에서 최 프로가 참석자들과 나눈 문답이다.
-양용은 선수를 전도할 생각이 있는가?
예수를 믿을 수 있나 없나 한 번 찔러 봤는 데 돌이다. 감자면 조금이라도 들어갈텐데 아직은 아니다. 기도 중에 있다. 같이 있으면서 좋은 시간을 가졌다. 어느 순간 양 선수의 마음이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기다리고 기도하고 있다. 확실하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타이거 우즈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다.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전화 한 통 못하는 게 더 마음이 아프다. 몇 년 전 전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는 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 친구가 골프계를 이정도로 세워놓은 것이기 때문에, 빨리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운동선수들은 슬럼프를 겪기도 하고 굴곡이 있을텐데 어떻게 극복하나?
심리적으로 내 마음의 상태를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중요하다. 보다시피 내 인상이 괴팍하다.(웃음) 카메라가 오면 웃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얼굴을 확 피면 상대가 말을 걸지만, 말을 걸면 골프에 집중이 안된다.
상대방이 말을 하고 싶어도 내게 말을 못거니까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계속 경기를 진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할 때 그 마음을 그대로 18홀까지 간다. 가다가 (마음이)산만해지거나 올라가면 문제가 된다.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동일한 마음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주와 가는 길' 같은 찬송을 한다든지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잘될 때가 있고 안될 때도 있고 그런 거지. 항상 기도하라는 싸인이구나' 하는 마음을 가진다. 안될 때도 그렇게 속상하지 않다. 계속해서 노력을 하고 답을 찾으려고 하고 더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운동 선수들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한다.
-연습은 얼마나 오래 하는가?
보통 노동법을 생각하면 8시간 일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8시간 공을 칠 때 '8시간을 넘긴 연습은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따지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다.
무엇보다 연습할 때 집중해서 한다. 공치다가 커피마시고 공치다가 나무 그늘에서 쉬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또 공이 내려올 때 (어딘가에)걸릴 수도 있고 쳐박힐 수도 있고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 한 샷을 위해 4-500개 친다. 하나를 터득하기 위해 많은 연습을 거친다.
경기를 위해서는 세 가지 믿음이 필요하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연습하는 것, 지인들이 주는 믿음과 격려, 하나님이 주는 특별한 믿음이다. 이 세 가지가 나를 지켜주는 믿음이다.
이 세 가지는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나 적용이 되는 것 같다.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할 것은 안하고 기도만 하면 들어주지 않으신다. 세 가지가 다 필요하다.
이 세 가지가 딱 하나가 되어 내 생활에 흡수되면, 아무리 큰 어려움이 와도 회복력이 굉장히 빠르다.
-기억에 남는 라운딩이 있는지?
2004년도 라운딩이 있다. 그 전날 탑에 있다가 11번 홀로 내려오는 데 중간에 부인이 편하게 치라고 괜찮다고 그러더라. 그런데 내 자신이 편하지 않았다. 샷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위로해주는 사람은 와이프 밖에 없네' 하며 내려갔다.
약간 축축한 곳이라서 공에 흙이 묻을 것 같았다. 내려가면서 '주님, 오늘만 공이 깨끗하게 해주세요' 기도했는데, 보니까 공이 깨끗하더라. '오늘은 파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캐디와 거리를 재는 데, 218야드인가 그랬다. 5번을 쳤다. 가장 자신있는 샷으로 쳤다. 그 홀은 물 쪽으로 흐르게 기울어져 있었는데 똑바로 들어갔다.
-골프선수가 꿈이었나?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는 학교 선생님이 굉장히 단순하게 "역도할 사람 나와라" 해서 나왔더니 "너는 이쪽으로 가 저쪽으로 가" 해서 '이 쪽은 골프부다'해서 골프부가 됐다. 그것이 내 운명이다.
반강제였지만 돌아보면 하나님의 선택이었다. 공 주울 사람이 없으니까 공만 주웠다. 채를 하나씩 주고는 '잘 치면 공 줍는 것에서 열외'라는 말에 굉장히 열정이 생겼다. 딱 쳤는 데 내 공만 넘어가 버렸다. 개울을 넘어서 한참 가서 공동묘지 앞에서 공이 멈췄다.
공을 치는 순간 내 마음 속에 불씨 하나가 왔다. 그 처음 샷의 느낌, 감동이 아직도 마음 속에 살아있다. 그랬기 때문에 골프를 하느냐 마느냐 말이 필요없었다. 그 불을 꺼뜨리고 싶지 않았다. 내 스스로가 골프에 빠져서 미쳤던 것이다.
지금까지 그 마음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고 유지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 많은 동료들에게도 그것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누가 시켜서 하면 절대로 안된다. 그것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혜가 있어야 가능하다.
-미국에서 골프를 시작할 때 에피소드가 있는지
2000년도 시작할 때, 밤 11시 공항 떨어지자 마자 종이 하나를 주면서 골프장을 찾아가라고 했다. 영어도 못하고 길도 모르는 데, 등에 땀에 나고 머리가 서는 것이 느껴졌다.
1시간을 찾아가도 안나와서 물어보니까 내가 반대로 왔던 것이다. 겨우 길을 찾았는 데 골프장 입구를 못 찾아서 한참을 헤맸다. 길이 다 나와있는 한국 길이랑 다르더라.
그 때 영어도 못하고, 길도 못 찾고, 공도 안쳐지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너는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다 도와주실 것이다' 라는 말씀만 붙들고 살았다. 신앙이 없었다면 이미 한국에 돌아가서 이렇게 저렇게 살면서 PGA에 남아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은 1%도 없었다. 힘들 때가 있었지만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잡아주셨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해야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신앙이 뜨겁게 된 계기가 있나
난, 지금의 아내를 만날 때 교회를 가지 않으면 데이트를 안해준다고 해서 따라간 사람이다. 종교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고, '그냥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슬비에 옷 젖듯이 그렇게 신앙이 생겼다. 성찬식을 하려고 하는 데 아내가 옆구리를 찌르면서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먹으면 부정탄다'고 그러는 바람에 7년 동안 먹지 않았다.
97년 미국에 가겠노라고 선포하고 나서 작정했다. 교회에서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는데, 세례를 받는 순간부터 내 마음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사실, 아시아에서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우승을 한번도 안주셨다. 세례를 받고 나서 처음으로 일본에서 우승하게 됐다. 그리고 일주일 지나고 또 우승했다. 징검다리 우승을 하니까 갑자기 6위로 뛰게 됐다. 그 때가 첫번째 신앙의 돌파구였다. 당시 일본에서의 우승이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다.
그 때 그 불씨가 없었다면, 그리고 PGA투어에서 신앙이 없었다면 미국 생활을 못했을 것이다. 만약에 그때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골프장 입구도 못찾는 나의 존재가 PGA 살아남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그 때 약이 올랐다. '무조건 살아남아야 되는데'라는 약 말이다. 그 특별한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말씀으로 기도하면서 이기고, 집회라는 집회는 꼭 찾아가서 예배드리고 시합했다.
주일예배는 못드리니까 수요예배는 꼭 참석하려고 했다.
-2010년 목표는 무엇인가
10승을 채우는 것이 목표다(현재까지 7승).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최경주 선수 간증
중학교 체육 시간에 역도부와 골프부를 나누는 줄에서 우연히 골프부 줄에 선 나는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 처음 골프공을 때린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골프 연습장에 깔린 5천여개의 공을 다 주어담아야 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갑자기 "공을 쳐서 망을 넘기면 공 줍기를 빼준다"고 말씀하시는게 아닌다. 그 말에 난생 처음으로 휘두른 골프채, 그것에 맞은 공의 느낌이 내 마음 속에서 꺼지지 않고 타고 있는 '불씨'로 남았다. 골프가 돈이 많이드는 운동이라 모두 말렸지만 '돈 안들이는 골프'를 하겠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삭막한 곳, 절망을 뼈져리게 느끼게 하는 그 곳에서 절망을 뚫고 일어서는 것은 비로소 '부활의 통로'가 된다. 나에게는 '광야'가 결국 '부활의 통로'가 된 것이다.
1999년 세례를 받고 2주 후에 일본투어 기린 오픈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가방에 묵직하게 든 현금 3천만원을 들고 버스를 탔다. 일본 여관은 방이 작다. 그렇게 작은 방에서 집사람과 나는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너무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궁리 끝에 돈가방을 침대 아래 넣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잤다.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미국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영어가 아니예요. 골프장 정문을 찾는 것입니다."
그 우베고산 오픈 우승 후 미국 PGA투어 테스트를 통과했다.
2000년까지 성적이 나빠 한국에 들어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경기 중에 아내와 함께 가까운 한인 교회를 찾아 기도를 드렸다. 좋은 성적을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 마음을 비우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마지막 홀에서 몸이 떨려 칠 수 없는 상황에서 전날 한 기도를 기억했다. 그리고 다시 시도했다. 기적처럼 긴장이 풀리며 공은 홀로 들어갔다. PGA 티켓을 딴 것이다. 그 날 난 큰소리로 울었다. 아내도, 캐디도 같이 울었다. 그 때의 한 타는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나는 모태신앙의 크리스천은 아니다. 아내 덕분에 믿음을 갖게 되었다. 1993년 처음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연애 당시 교회에 안가면 데이트를 안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1999년 온누리교회에서 하용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동안 7승을 올렸다. PGA투어에는 정말 많은 선수가 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일곱번 우승을 했나 싶을 정도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건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래도 기도의 소중함을 일찍이 깨우쳤다. 모두 아내 덕분이었다. 아내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는 대로 그냥 했을 뿐인데 시간이 흐르자 '기도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번은 시합을 치르고 숙소로 돌아와 누웠다. 아내가 "듣고만 있어라. 기도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제 엄지발가락을 잡고는 침대 밑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나에겐 쉬라고 하고 말이다. 그 때 마음이 편안해 지는 걸 느꼈다.
스프링은 늘어났다가 '탁' 놓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스프링은 이제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내가 기분이 나빴든 좋았든 항상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나 자신을 낮추면서 말이다. 이것이 바로 프로골퍼로서는 '마인드 컨트롤'이고, 신앙인으로서는 '마음의 평안'이라는 것이다.
'최경주 재단'을 통해 어려운 여건의 아동과 청소년 후원, 북한에 나무심기, 주니어 골퍼 육성, 자선 파티를 통한 새로운 기부 문화 형성 등을 위해 애쓰고 마련하고 있다.
이런 나눔을 통해 나는 에너지를 얻는다. 나눔을 통해 내가 좀 더 가난해 지는 것 같다. 내가 더 낮아지는 것 같다.
"여러분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요. 그리고 여러분이 가진 비전을 바라보세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비전 속에서 반드시 여러분은 길을 찾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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