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위기는 청년(靑年)의 위기, 좀 더 정확히 말해 「청년지식인(靑年知識人)」의 위기이다. 북한정권과 함께 대한민국 허물기로 먹고 사는 친북좌파보다, 이들의 깽판을 넋 놓고 방관하는 한나라당보다 심각한 것이 바로 청년지식인이다.

내가 지금껏 만나 본 20~40대 소위 엘리트들은 대부분 극단적인 개인주의자, 웰빙(well-being)주의자들이었다. 많이 배우고, 많이 누리고, 많이 가질수록 심하다. 그들은 국가(國家)-안보(安保)-법치(法治)-통일(統一)과 같은 개념이 결핍돼 있다.

친북좌파를 경멸하면서도, 어떤 경우에도 이들과의 「더러운 싸움」은 피하려든다. 자유통일(自由統一)을 주장하면, 그 같은 고비용-저효율 선택을 왜 하느냐고 되묻는다. 북한동포의 고통을 말하면 무감각한 눈빛으로 『남한서 사는 것도 녹녹치 않다』고 피식 댄다. 이들은 좌파(左派)도 친북(親北)도 아니요 어떤 때는 보수(保守)나 우파(右派)를 자칭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참칭(僭稱)일 뿐이다. 애국심 있는 청년(靑年) 판사·검사·변호사·교수·기자·정치인·과학자·의사가 드믈다. 좌경화돼 있거나 개인주의자, 웰빙주의자들이다.

시청 앞 노병(老兵)이 사라진 후 청년지식인들이 끌고 갈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면 절망에 빠질 때가 많다. 많이 배우고, 많이 누리고, 많이 가진 자들은 자가용 비행기 몰고 다니는 남미(南美)의 어떤 나라가 될지 모른다. 어차피 그렇게 된다 해도 자신은 피해볼 것 없다는 생각 탓인지 국제화된 이들 청년(靑年)지식인들은 기껏해야 경제적 자유주의 수준에 머물 뿐이다. 자유(自由)를 지키기 위해, 자유(自由)를 전하기 위해 싸우진 않는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150여회 이상의 군부대, 교회를 돌면서 강연했다. 차비도 안 나오는 도서산간 지역을 돌면서 발견한 것은 의외로 「희망(希望)」이었다.「청년지식인」에 대한 기대는 접었지만, 「청년」에 대한 기대는 새로워졌다. 배운 게 짧거나, 가진 게 없는 절대다수 청년은 희망이 있다. 좌경화된 문화권력(文化權力)에 세뇌돼 있지만, 의식화 정도가 유치(幼稚)해 한 두 시간 교육으로 정상화된다. 땀 흘리며 살아 온 그들은 지식인의 허무맹랑한 관념론에서 벗어나 있었다. 공동체에 대한 애정도 깊었다. 장교단 역시 상무(尙武)정신이 살아 있었다.

대한민국의 건국, 근대화, 민주화 과정의 「신바람」이 북한해방과 자유통일을 향해 한번만 더 불어준다면 이들은 거대한 세력이 돼 역사를 바꿀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남은 과제는 소수(少數)의 지도자 그룹을 만드는 일이다. 청년을 깨우고 모아줄 소수(少數)의 초인(超人). 모든 이해관계(利害關係)를 초월해 있으면서도 그 모든 이해관계에 관심을 가진 소수(少數)가 나오는 것이다.

소수의 지도자 그룹은 기성(旣成) 정치권을 벗어난 이들이 될 것이다. 강연을 하다보면 「뒷맛」이 개운치 않을 때가 많았다. 국가, 안보, 법치, 통일을 강조하면, 정치적 선택은 한나라당으로 귀결되는 탓이다. 한나라당 역시 중도세력과 좌파세력이 연합한 집단에 불과하지만, 민주당·민노당이 북한정권과 이른바 「공조(共助)」하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이들의 선택의 폭은 극단적으로 좁아져 버렸다. 자유선진당마저 국가이익(國家利益) 대신 지역이익(地域利益)에 천착하면서 대한민국 헌법체제를 수호하는 보수정당의 성격을 버린 지 오래다.

어이없게도 국가, 안보, 법치, 통일을 말하는 애국투사들의 헌신적 노력은 보수로 위장한 기회주의-웰빙-부패-반역분자의 혼성집단인 한나라당이 독식(獨食)해온 것이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전주, 강릉, 속초 백령도를 돌면서 만나는 수많은 愛國지사, 愛國군인, 愛國관료, 愛國시민들은 영혼도 이념도 전략도 없는 한나라당에 절망해왔다. 하지만 차선(次善)도 아닌 차악(次惡)의 선택으로 이 무기물(無機物) 집단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이 반(反)국가 세력과 싸우는 대신 타협해 버리고, 법치와 질서를 망각한 채 깽판세력에 끌려 다니며, 북한동포를 해방하고 자유통일하라는 헌법의 명령을 방기하는 모습에 분노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선택의 여지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정치적 어부지리(漁父之利)는 북한의 핵무장(核武裝)과 2012년 한미연합사 해체와 같은 안보불안 속에서 더욱 견고해간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이 비정상적 무임승차(無賃乘車)는 역사의 격변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 시시각각 죽어가는 김정일의 낯빛은 복선(伏線)처럼 들린다.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변화는 어쩌면 김정일 사후 남한정치에서 시작돼 북한사회를 바꾸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통일의 영웅은 바로 그때 가진 게 없고, 배운 게 적고, 누린 게 없는 우리 청년(靑年) 대중을 이끌고 혜성처럼 나타날 것이다. 답답하지만 그날이 머지않았다. 남북한 모두에게 새벽은 온다. 희망의 이유는 바로 청년(靑年)이다.

리버티헤럴드 김성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