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들어선 우리들은 지난 사반세기를 돌아볼 때 엄청난 새 역사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기록되어졌음을 깨닫게 되며, 너무나 빠른 문명 발달 속도에 위축감마저 느끼며 살고 있다.

생존을 위한 대립의 시대를 넘어 오늘날에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 오래전에는 나의 생존을 위해 환경 파괴에 대한 개념이 없이 경쟁하고 누르고 이기고 이익을 추구하며 개인의 안락과 행복만을 추구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환경 파괴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게 되었고, 산업화와 문명의 발달로 생태계의 불균형이 낳은 피해를 직접 당함으로 말미암아 공존이라는 개념도 배워가는 것 같다. 더욱이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던 공산권이 점차 붕괴되면서 이제는 온 인류가 어떻게 하면 연합하여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유엔의 문제로만 더 이상 머무르고 있지 않음을 우리 모두가 실감하고 있지 않은가?

물질보다는 생명이 더 중요하고, 명예와 권력보다는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날이 밀려오는 정보화와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려 인간의 생활은 정신없이 바빠지게 되었고, 우리의 어린 자녀들에게도 그 영향력이 크게 미치고 있다.

'빨리 빨리'에 떠밀려가는 아이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빨리 일어나!", "빨리 밥 먹어", "빨리 학교 가자!", ""빨리빨리……."

나는 이 말을 얼마나 자주 쓰는지 모른다. 시간을 쪼개어 쓰다보니 꾸물거린다거나 늑장을 부리면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져 야단을 안 칠 수가 없다. 식당에 가도 마찬가지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해야 할 일이 많기에 여기저기서 "빨리 가져와……. 어이, 뭘 그렇게 꾸물대고 있어? 빨리 하라니깐……'하는 소리가 들여온다. 어찌 보면 '빨리병'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하고 냉정, 냉담한 사람들로 만들어 버리는지도 버리겠다. 어느새 '속도 지상주의'가 되어버려서 방향을 잃은 채, 아니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떠밀려가는 아이들로 만들어놓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에는 '엎질러진 물' 격이 될 수 있다. 향방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휩쓸려 가다보니 결과가 없고 피곤하기만 하다.

장애인 올림픽에서의 감동 스토리

워싱턴 주 시애들에서 개최된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특수 올림픽 때 실제로 일어났던 아름다운 일이다. 100m 달리기를 하려고 참가자들이 출발선에 서 있다가 신호와 함께 출발했다. 그런데 한 어린 소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주자들은 출발선 근처에서 나는 소리에 달리기를 멈추고 차례로 고개를 돌렸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이가 발을 헛디뎌 넘어진 것이었다. 주자들은 경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모두 넘어진 소년을 향하여 방향을 바꾸어 돌아왔다. 그들은 그 소년이 일어서도록 도왔고 우는 아이를 달래며 위로했다. 그러고 나서 모든 참가자들은 서로 손에 손을 잡고 결승선에 함께 걸어 들어갔다. 이 장면을 목격한 관람자들은 그 순수한 사랑의 광경에 오래도록 감동 어린 박수를 보냈다.

속도교육보다 방향교육이 더 중요하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경쟁 위주의 속도 지상주의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며 고귀한 면인 사랑을 배격해 버리기 쉽다. 자기만을 위한 이기주의적 사고방식과 성공은 끝내 죽음과 파괴를 초래한다. 우리는 장애인들이 보여준 이 고귀한 사랑의 실천과 방향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만의 승리가 아닌 모두의 승리가 되도록 공존을 염두에 두고,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도가 추구하는 방향이 더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새해에는 목표 뿐 아니라 우리의 방향 설정이 올바르게 디도록 더욱 사려 깊게 생각하면 좋겠다. 우리의 방향이 생명을 살리고 사랑하는 것이 되며 모두에게 덕이 되고 빛이 된다면, 함께 더불어 사는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유익함을 주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