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에 잘 아는 어떤 분이 감과 사과가 있는 과일 모양의 수제품 하나를 이 가정에 많은 감사가 넘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시면서 주셨다. 받고 보니 감 모양에는 '감'이라는 글씨가 수놓아져 있고, 사과 모양에는 '사'라는 글씨가 수놓아져 있었다. '감사과' 넘치는 가정, 곧 '감사'가 넘치는 가정에는 감사의 열매가 탐스럽게 맺혀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겠구나 하는 진리가 나에게 오랜 여운을 남겨주었다.
누가복음 17장 11-19절에는 열 명의 문둥병자 이야기가 나온다. 열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멀리 서서 자기들을 긍휼히 여겨 달라고 소리를 지르니, 예수님이 보시고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열 명 중 하나인 사마리안 사람만 자기의 몸이 깨끗하게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께 엎드려 사례했다. 예수님은 열 명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보며 아이들에게 감사의 자세를 이렇게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일 먼저, '감사는 즉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찮은 물건 하나를 받아도 그 자리에서 즉시 감사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혹은 부모님에게, 여러 사람들에게 즉시 감사의 표시를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은 것을 깨달았으면 즉시 감사를 해야 된다. '다음에 해야지'하고 미루면 끝내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하려면 어색할 수도 있다. 감사할 일이 생기면 즉시 감사할 줄 아는 아이들이 되도록 가르쳐야겠다.
둘째,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도록 이해시켜야 한다. 나의 지성과 이성에 맞지 않아도 일단 말씀이 떨어지면 그대로 따르고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열 문둥병자가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치료나 특별기도도 받지 않았지만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는 말씀에 그대로 했더니 다 나음을 입었다. 자기의 경험이나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최고의 권위를 둘 줄 아는 자녀들로 양육하기를 바란다.
셋째, '절대 감사의 자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남과 비교를 많이 하게 된다. 나 자신을 보면서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남과 비교해서 감사의 조건과 자세를 취하게 된다. 내가 지금 잘 먹고 잘사는 것이 감사하다가도 더 좋은 집에 더 좋은 차를 가진 더 잘 사는 사람을 보면 자신의 감사가 무색해지며, 어느새 자신의 처지를 초라하게 생각하게 되어 지금까지 감사했던 것도 접어버리고 한숨을 쉬게 된다. 상대적인 감사의 제사로 돌아가는 것이다. 남보다 조금 나으면 감사요, 그렇지 않으면 긴 한숨이다. 이것은 참된 감사의 자세가 될 수 없다. 상황을 비교해서 나오는 감사는 항상 변하는 감사이다. 아니, 오히려 원망으로 바뀔 수도 있다.
지난 여름 휴가 중에 있었던 일이다. 모처럼 한가히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큰아이가 그네를 탄다고 밀어 달라고 해 아빠가 그네를 한참 밀어주었다. 행복해 하는 아이의 모습에 우리 부부는 함께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후에 작은애가 그네를 밀어달라고 해서 또 아빠가 밀어주었다. 똑같이 해준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아이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불평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자기보다 동생을 더 많이, 더 높이 밀어준다는 것이었다. 행복해 하던 모습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It's not fair!"하는 불만과 불평의 볼멘소리로 완전히 분위기를 깨고 있었다.
이것은 어느 집에서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남과 비교하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빠가 밀어준 것에 감사한 것으로 끝났으면 되는 일인데, 동생에게 해준 것까지 헤아려 비교하고 속상해 하니 감사가 오히려 불평과 원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상대적 감사에 익숙해 있다. 절대적으로 감사하는 것이 오히려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거나 어색하기가지 하다. 극한 고난 중에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결같이 감사의 조건을 작은 것에서부터 찾을 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참으로 은혜를 많이 받은 복된 사람이다.
바른 감사를 한 사마리아인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는 축복의 말을 들었다. 건강하라는 육신의 축복뿐 아니라 평안하라는 영혼의 축복도 함께 받았다. 곧 영육간의 복을 받은 것이다. 부모된 나부터 이러한 바른 감사의 자세를 갖기를 다시금 조용히 다짐해 본다. 또한 우리 자녀들이 바른 감사의 태도와 자세를 익혀 영육간에 강건한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기를 기대하며 기도한다.
누가복음 17장 11-19절에는 열 명의 문둥병자 이야기가 나온다. 열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멀리 서서 자기들을 긍휼히 여겨 달라고 소리를 지르니, 예수님이 보시고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열 명 중 하나인 사마리안 사람만 자기의 몸이 깨끗하게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께 엎드려 사례했다. 예수님은 열 명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보며 아이들에게 감사의 자세를 이렇게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일 먼저, '감사는 즉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찮은 물건 하나를 받아도 그 자리에서 즉시 감사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혹은 부모님에게, 여러 사람들에게 즉시 감사의 표시를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은 것을 깨달았으면 즉시 감사를 해야 된다. '다음에 해야지'하고 미루면 끝내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하려면 어색할 수도 있다. 감사할 일이 생기면 즉시 감사할 줄 아는 아이들이 되도록 가르쳐야겠다.
둘째,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도록 이해시켜야 한다. 나의 지성과 이성에 맞지 않아도 일단 말씀이 떨어지면 그대로 따르고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열 문둥병자가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치료나 특별기도도 받지 않았지만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는 말씀에 그대로 했더니 다 나음을 입었다. 자기의 경험이나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최고의 권위를 둘 줄 아는 자녀들로 양육하기를 바란다.
셋째, '절대 감사의 자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남과 비교를 많이 하게 된다. 나 자신을 보면서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남과 비교해서 감사의 조건과 자세를 취하게 된다. 내가 지금 잘 먹고 잘사는 것이 감사하다가도 더 좋은 집에 더 좋은 차를 가진 더 잘 사는 사람을 보면 자신의 감사가 무색해지며, 어느새 자신의 처지를 초라하게 생각하게 되어 지금까지 감사했던 것도 접어버리고 한숨을 쉬게 된다. 상대적인 감사의 제사로 돌아가는 것이다. 남보다 조금 나으면 감사요, 그렇지 않으면 긴 한숨이다. 이것은 참된 감사의 자세가 될 수 없다. 상황을 비교해서 나오는 감사는 항상 변하는 감사이다. 아니, 오히려 원망으로 바뀔 수도 있다.
지난 여름 휴가 중에 있었던 일이다. 모처럼 한가히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큰아이가 그네를 탄다고 밀어 달라고 해 아빠가 그네를 한참 밀어주었다. 행복해 하는 아이의 모습에 우리 부부는 함께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후에 작은애가 그네를 밀어달라고 해서 또 아빠가 밀어주었다. 똑같이 해준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아이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불평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자기보다 동생을 더 많이, 더 높이 밀어준다는 것이었다. 행복해 하던 모습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It's not fair!"하는 불만과 불평의 볼멘소리로 완전히 분위기를 깨고 있었다.
이것은 어느 집에서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남과 비교하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빠가 밀어준 것에 감사한 것으로 끝났으면 되는 일인데, 동생에게 해준 것까지 헤아려 비교하고 속상해 하니 감사가 오히려 불평과 원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상대적 감사에 익숙해 있다. 절대적으로 감사하는 것이 오히려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거나 어색하기가지 하다. 극한 고난 중에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결같이 감사의 조건을 작은 것에서부터 찾을 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참으로 은혜를 많이 받은 복된 사람이다.
바른 감사를 한 사마리아인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는 축복의 말을 들었다. 건강하라는 육신의 축복뿐 아니라 평안하라는 영혼의 축복도 함께 받았다. 곧 영육간의 복을 받은 것이다. 부모된 나부터 이러한 바른 감사의 자세를 갖기를 다시금 조용히 다짐해 본다. 또한 우리 자녀들이 바른 감사의 태도와 자세를 익혀 영육간에 강건한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기를 기대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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